좋은 말씀/신우인목사

사람을 찾는 하나님

새벽지기1 2016. 4. 10. 21:50


오늘처럼 서늘한 바람이 부는 때에 아버지가 자녀들을 부릅니다. “얘들아! 어디 있느냐?” 그러나 자녀들은 대답이 없습니다. 잎이 무성한 나무 사이에 숨어 아버지의 부름에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 인간의 시작은 너무나 멋졌지만 태초의 인간들은 아버지 되신 창조주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답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에덴을 만드신 후, 6일째 되는 날에 아담을 흙으로 빚어 만드셨습니다. 여러 피조물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던 사이였고, 세상 경영의 권세를 위임받아 함께 일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인간의 출발은 축복 그 자체였습니다. 동산의 모든 것이 인간에게 허락되었습니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단 한 가지만 금지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인간의 마음은 허락된 많은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고, 금지된 한 가지에 관심이 집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그것을 범하면 어떤 결과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아는데도 그렇습니다.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눈과 손이 그 열매를 향하여 갑니다. 결국에는 그 열매를 먹고 맙니다.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갈 때, 가만히 있을 부모는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갈 때에 부모의 마음은 고통에 빠지고, 자녀를 하루 속히 제자리로 되돌리기 위해 온 힘을 기울입니다. 이것이 오늘 자녀를 찾아오신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이 물음은 하나님의 슬픈 탄식의 외침이요, 애타는 부모의 부르짖음입니다. 이 물음은 범죄하고 타락한 인간이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를 깨닫고 회개하기를 바라는 사랑과 은혜의 초청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네가 어디 있느냐?” “어서 오라.” “어서 내게로 오라.”며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초청 앞에서 온전히 대답하지 못합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은 이유는 그 안에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에 범죄한 인간은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이 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한 열매를 먹은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이 죄입니다. 범죄한 인간은 발가벗겨지고 수치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자꾸 어두운 곳에 숨으려고 하고 자신의 수치를 감추려고 합니다. 범죄 이전의 인간에게는 수치가 없었습니다. 죄 없는 인간은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악 가운데 있는 죄인이므로 부끄러워서 옷을 입지 아니하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일렀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하나님께서 물으실 때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부름 앞에 회개하고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질문을 던지시는 이유는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 고백의 기회를 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계속 물으십니다. 그 이유는 죄를 따지고,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깨닫고, 고백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회개 대신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가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들의 잘못과 죄는 슬그머니 빼버립니다.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원인을 돌립니다. 다른 사람들을 질타하면서 자신들의 범죄 사실은 감춥니다. 이것이 죄의 특징입니다. 아담은 자신을 죄에 빠트린 존재가 바로 자신의 아내라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결정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께 죄를 전가시키고 있습니다. 어쩌면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왜 만들어 놓았냐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이 상황을 하나님께서 정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벌을 내리십니다. 뱀은 가장 비천한 삶을 살게 되는 존재가 됩니다. 뱀의 머리는 여자의 후손에 의해 상함을 받는 회복 불능의 미래가 주어집니다. 여자는 생명을 낳을 때마다 해산의 고통을 당합니다. 땅은 저주로 인하여 좋은 식물이 아닌 가시와 엉겅퀴를 자라게 하고, 그 가운데서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 남자는 얼굴에 땀을 흘리며 수고해야 합니다. 인간이 범죄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래의 모습에서 모두가 어긋나버렸습니다. 결국 인생은 생명이 아닌 죽음을 향해 가는 여정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오늘 에덴의 사건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이 너무나도 절망적입니다. 그렇지만 말씀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아오신 것은 아담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아담을 창조의 목적대로 본래의 자리로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회개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 그러나 기회를 날려버린 아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손수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옷을 입혀주는 것은 신분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옷을 입혀주는 것은 관계성을 나타냅니다. 옷을 입혀주는 것은 권세를 주는 것입니다. 옷을 입혀주신 것은 아담, 즉 인간의 죄를 가려주신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하나님은 희생을 감행하셨습니다. 죄인 된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은 아들을 희생양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희생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입어야 하는 옷은 하나님이 희생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옷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갈 수 없는 상태일 때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어디 있든지, 우리가 어떤 모습이든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의 처지, 우리의 상태를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에게 새 옷을 입혀주시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두려워 떨 때에 우리를 포근한 품으로 안아주시고, 우리가 죄악의 고통으로 눈물을 흘릴 때에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일으켜 세우시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의 책임은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응답하는 것이며,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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