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새벽지기1 2016. 4. 7. 07:13


우리들은 끝없이 일어나는 마음의 다툼으로 힘들어할 때가 많습니다. 그 다툼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큰 문제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합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이 말씀의 키워드는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입니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남들로부터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로부터도 배워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 곧 겸손입니다. 겸손은 삶의 전 영역에서 가장 귀한 덕목입니다. 베스트셀러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도 말합니다. “겸손은 실로 덕목의 어머니입니다. 겸손은 우리를 우두머리가 아닌 그릇, 대리인으로 만듭니다. 겸손은 온갖 배움과 성장과 과정을 낳습니다. 겸손으로만 과거로부터 배우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며, 지금 확신 있게 행동할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자랑스러운 자녀요, 존경받는 생명의 리더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겸손이 필수입니다. 겸손이 있는 곳에 창조와 성장이 있고, 겸손은 언제나 오만을 이깁니다. 그러나 겸손 자체가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덕’에 해당되는 헬라어는 두 가지입니다. ‘아레테’와 ‘디카이오수네’인데, 이 두 단어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레테’는 인간 자체의 능력과 성취를 강조합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는 사람 가운데 힘이 잔뜩 들어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 이런 어려운 일들을 성취했다고 생각하는 ‘아레테’의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므로 남들을 판단하고 가르치려고 듭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리새인들입니다.

   

반면 ‘디카이오수네’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영혼의 온전함을 중시합니다. “남을 괴롭게 하면 하나님께서 슬퍼하시고 내 영혼은 파괴된다. 내가 올바로 살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슬퍼하신다. 그러므로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며 겸손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날이 갈수록 밝고 따뜻해진다는 것입니다. 디카이오수네는 ‘영적으로 철이 드는 것’을 말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 분을 기쁘시게 할 일을 감사함으로 행합니다.

   

사도바울이 당부합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 2:4) 사도바울의 기쁨은 곧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사탄이 한 말 중에, 매우 의미심장한 말이 있습니다.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 4:6) 입니다.

   

하나님은 영광과 권세의 원천이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인 인간만이 영광과 권세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광과 권세를 받은 적이 없는 사탄이 현재는 천하만국의 영광과 권세를 거의 다 가지고 있습니다. 사탄은 스스로 그 영광과 권세의 출처를 밝히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사탄에게 넘겨주었다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영광을 넘기는 경우는 부지불식간에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인들까지도 너무나 쉽게 저지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 5:44) 어떤 일을 행하고 생색을 내거나, 그 일이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한 것이면, 서로 영광을 취하는 것이 되고, 그가 아무리 훌륭한 일을 했다고 할지라도, 그 순간 영광은 사탄에게 돌아갑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말합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3)

   

이사야서에서 사탄의 정체를 정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중략)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사 14:12-14) 자꾸 높아지려는 마음을 품는 순간, 천사나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지라도 사악한 존재로 돌변합니다. 높아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파괴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자신을 높이려는 사탄의 말로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서 찍혔는고....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사 14:12,15) 이는 교만한 자가 필연적으로 가게 되는 결과를 뜻하기도 합니다.

   

사도바울은 생명을 얻고 그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길을 보여줍니다. 너무나 명쾌하고 간결한 길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빌 2:5)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한 분입니다. 그러나 그 높으신 분이 인간으로, 종으로, 그리고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빌 2:6-8) 낮아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에게 일어난 일을 사도바울이 말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람들을 살리기 위하여 스스로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는 최고로 높아지셨고, 스스로 높아지려는 사탄은 가장 낮아졌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높입니까? 그렇다면 사탄의 조종을 받고 있으며, 영광을 사탄에게 넘겨주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높이려는데 비례하여 낮추십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낮추려는데 비례하여 높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