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하나님의 시작 보증 그리고 완성

새벽지기1 2016. 4. 3. 09:23


요즘 사회 전체가 공격적 담론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문제만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의 문제에서도 공격과 보복이 꼬리를 무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굉장히 어렵겠지만, 이 분노의 사슬들을 끊어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것입니다. 최고의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하였으되 원수 갚는 일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 12:19)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오직 자신이 사는 일과 남을 살리는 일에 집중하라는 하나님의 당부입니다. 시작한 좋은 일은 더욱 잘 할 수 있도록 서로 서로 도와주고 격려해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 안에서의 교제’이며, 이를 올바로, 제대로 하면 자연히 하나님의 복을 향유하게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하나님의 부요’는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모두 강건해지는 총체적인 복입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부요에 이르는 길을 알아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첫째. 우리더러 시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시작하셨습니다. 특히 ‘우리 속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착하다’의 헬라어 ‘아가토스’(agathos)마음이 유순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히브리어 ‘토브’와 같은 뜻으로 ‘아름답고, 위대하고, 놀랍다’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고 ‘심히 좋다’는 최상급을 쓰셨습니다. 자신을 보십시오. 위대하지도, 아름답지도, 완벽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속일 리가 없습니다.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실 때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한 가지 씩은 주셨습니다. ‘그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시작하신 첫 ‘착한 일’입니다. 그것을 찾고, 계발하고, 이웃을 위하여 열심히 발휘하면 반드시 위대하고 아름답게 되고, 그렇게 된 자기 자신에 놀랄 것입니다. 폰 휘겔(von Hugel)이 말합니다. “당위(當爲)는 아무리 크더라도 존재(存在) 자체를 절대로 대체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시작하신 우리 안의 ‘착한 일’들이 서로에게 확대되는 것이 바로 ‘우리 안에서 시작하신 착한 일’이 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단어가 ‘시작하다’입니다. 헬라어 ‘엔아르코마이’는 의미심장한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뭔가 해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충동적이고, 변덕스럽고, 무계획하고, 불완전한 것은 철저히 배제합니다. 여기에는 아름다운 조화와 흠 없는 완전으로 향하는 강력한 하나님의 추진력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죽어, 육신을 벗고 나서도 ‘엔아르코아이’는 계속됩니다. 이 하나님의 추진력은 당연히 어떤 것도 막아설 수 없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사도 바울의 확신의 근거는, 사도 바울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구원이 예수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기초에 근거한다면 구원은 대단히 불확실한 것입니다. 구원의 근거는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만약 주님께서 창세전에 친히 우리 모두를 택하지 않았다면, 또 결정적인 시간에 우리 마음을 열어 진리의 말씀과 구원의 복음을 듣고 이해하고 영접하도록 이끄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즉 우리 완성의 보증의 근거는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고후 11:2) 입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처해도, 주변 환경이 아무리 나빠도 소망이 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 게으름, 우매함, 실수, 실패, 시행착오, 단점과 사악함, 나쁜 상황까지도 하나님의 열심 안에서 해결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치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8-9) 그렇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내 안에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셨고, 이를 인하여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빛을 인식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선한 일’ 중 하나입니다.

  

셋째, 그 길은 당연히 최상의 결과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이미 알려주신 하나님의 계획대로 움직이고 계십니다. 피조물의 어떤 방해도 그날을 지연시키지 못합니다. 완성의 그날은 반드시 오고야 맙니다.

  

C.S. 루이스는 소설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에서 하나님의 줄기차신 보증과 완성을 생생하게 그렸습니다. “아직은 우리의 모습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미 내 안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작과 보증과 성취를 믿고 떠나야 합니다. 한탄하지 말고 낙담하지 말고 주저앉지 말고, 힘들면 쉬고, 깜깜하면 기다리고, 초조해 하거나 서두르지 말고, 늦었다 한탄하지 말고, 어떻든 출발하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시고 반드시 완성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과 모든 성도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빌1:9-11)

   

다른 종교에서의 기도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방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기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주신 소통 수단입니다. 기도는 이미 성경을 통해 그분의 뜻과 계획을 밝히신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입니다. 기도에는 각자의 소원과 원망과 탄식과 하소연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는 “내 원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원대로 하옵소서.”로 끝납니다.

   

그래서 바울의 기도 내용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우선, 무엇이든 사랑의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이기심이나 시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다음으로 선한 것을 분별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마침내 부족하고 어리석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 하나님의 포이에마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좋은 말씀 > 신우인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는 것도 내게 유익함이니   (0) 2016.04.05
우리는 왜 기쁘지 않은가?   (0) 2016.04.04
감옥에서 온 편지  (0) 2016.04.02
진짜 경건   (0) 2016.04.01
하나님께서 추천하신 최고의 땅   (0) 2016.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