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복음주의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Ⅱ |
영혼을 움직인 설교자 8 |
|
|
설교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설교관’이다. 설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결핍될 때 설교 이외의 것에서 부흥을 꾀하려고, 힘과 시간과 예산을 소모하는 현상이 생긴다. 설교자는 모든 일에서 조화와 균형이 있어야 한다. 로이드 존스가 자신의 모든 삶을 설교자로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확고한 ‘설교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성경 권위와 설교의 우위성 로이드 존스는 성경 메시지를 사도와 같은 담대함을 가지고 증거했다. 단순히 그것을 말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가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 말씀으로 선포할 때 자신에게 임하는 성령을 힘입어 설교할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그는 교회에서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이 바로 설교라고 말한다. 이 말은, 그가 어떤 정신으로 설교했는지를 역설한 것이다. 로이드 존스는, 교회의 첫째 임무는 당연히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고 분명한 입장을 피력한다. 계속해서 교회의 일차적 임무가 말씀전하는 일임을 강조한다. 그의 사도행전 강해에서 분명한 어조로 밝히고 있다. “오늘날 세상의 가장 큰 필요는 바로 이 메시지를 듣는 것이라고, 설교는 지금도 예전처럼 세상에 필요한 일이라고, 아니 더 절실히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 인간의 가장 큰 필요이자, 최고 필요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그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는 곳은 교회뿐입니다”(『승리하는 기독교>』, p.391). 교회가 말씀에 최우선 순위를 둘 때, 사람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일, 육신보다 영혼에 관심을 두는 일, 유한한 시간보다 영원을 중시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로이드 존스는 목회생활 40년 동안,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와 그가 고수한 설교의 우위성은 항상 간직하고 사수한 설교철학이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한 부흥 로이드 존스가 성령 사역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대에 말씀 사역이 직면한 안타까운 현실 때문이었다. 그는 그 시대에 무기력한 강단을 보았다. 부흥시대의 설교자들과 같은 진정한 설교자들은 사라지고, 강단꾼만이 설교단을 점령한 시대였다. 로이드 존스 설교에서 성령이 중요한 이유는,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영이기 때문이다. 그는 성령의 사역에 중심점을 둔 설교를 강조한다. 이 말은, 설교자가 성령 세례의 주목적인 주 예수 그리스도와 주님의 인격과 사역을 증언할 수 있는 능력으로 무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진리를 믿게 하는 것은 사람의 논증이나 논리, 유창함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 말씀을 듣는 청중의 말씀 속에서의 성령 사역이다. 내적 증거가 없이는, 어떤 사람도 참으로 성경의 권위를 믿고 거기에 복종하지 않는다. 성령만이 들은 것을 확증하신다. 로이드 존스는 이런 진리를 그 누구보다 터득하고 설교에 적용했다. 로이드 존스는 성령론적인 설교가 효력 있게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설교자가 설교의 전 과정에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계속적으로 추구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사전트(Tony Sargent)에 따르면, 로이드 존스에게 있어서 성령론은 기름부음을 향한 열망과 직접적인 기름부음을 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성령의 기름부음이야말로 설교에서 담대함과 명확성과 능력을 불러일으키는 동인이라고 믿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은 무엇을 말하는가? 로이드 존스는 ‘영감’(Aafflatus)을 ‘기름부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능력의 부갗(Accession of Power) 또는 ‘능력의 부어주심’(Effusion of Power)라고 묘사했다. 이 능력은, 설교자를 자신의 밖으로 이끌어 내어 그가 말할 때 능력들을 주는 효과를 낸다. 로이드 존스가 말하는 성령의 기름부음이란 ‘성령의 의한 세례’(The Baptism by the Holy Spirit)와는 다르다. 그는 ‘성령에 의한 세례’는 중생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분과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반면, 성령세례는 주로 담대함과 큰 확신으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능력을 주시는 활동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성령의 새로운 기름부음은 어떻게 가능하며,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그것은 하나님이 설교자를 향하여 그 얼굴에서 빛을 내실 때 가능하다고 한다. 존스의 말을 빌면, ‘설교자를 향한 하나님의 미소’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나님은 항상 미소를 보내셨고 지금도 미소를 보내시는 설교자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성령의 주권에 사로잡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설교자는 성령의 전적인 주권에 맡기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되는가? 이에 대해 로이드 존스는 설교자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말한다. 첫째, 설교자는 근면한 일꾼이 되어야 한다. 즉, 말씀을 준비하는 도중에 성령을 의지하고 자신의 영혼과 마음을 잘 준비해야 한다. 그러므로 능력을 갖추는 일은, 철저하게 말씀을 연구하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분석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성령의 기름부음이 더해져야 함을 말한다. 둘째, 설교자는 성령의 능력을 보내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이드 존스는, 설교자는 항상 성령을 구하고 찾으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성령을 기다리는 것이 설교자가 해야 할 일임을 역설했다. 셋째, 설교자는 성령의 자유로움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보았다. 로이드 존스는, 원고를 준비하되 원고에 얽매이지 말고 성령에 의지하여 설교할 것을 역설한다. 원고를 의존하는 것은 성령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령의 기름부음은 바로 이러한 성령의 역사에 개방된 자유로움의 공간을 창조하는 설교자에게 임하게 되는 선물로 보았다. 이때 설교는 예견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기대를 뛰어넘는 흥미로운 ‘로맨스’(romance)가 된다고 말한다(『목사와 설교』, p.390). 성령의 기름부음을 갈망하는 설교자는 성령께서 자신을 쓰실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을 사용해 주시도록 간절히 소망하면서 설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넷째, 성령의 기름부음을 위해 설교자는 성령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의 기름부음은 단지 설교 준비에서의 철저한 준비와 기도, 설교 행위에서의 성령의 자유로움을 인정하는 차원으로 국한될 수 없다는 것이 로이드 존스의 지론이다. 설교자의 삶의 영역까지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는 것과 같이, 로이드 존스는 설교에 있어 설교자의 소망인 부흥을 위해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식하고, 그 부흥이 임하기를 기대하고 갈망하며 간구해야함을 강조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위해 설교자는 ‘철저한 준비’와 ‘철저히 의존’하는 자세를 간직해야 한다”는 것이 로이드 존스의 설교사역의 가장 핵심적인 설교 철학이다. 설교자의 자세 첫째, 설교자의 확실한 소명이다. 그는 설교자의 소명에 대해 “소명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걱정, 즉 그들의 타락을 뼈아프게 생각한 나머지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주어야 하며 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말하고 구원의 길을 알려 주어야겠다는 소원을 포함하게 된다. 이것이 소명의 진수”라고 말한다. 만일, 설교자의 가슴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서 진리를 알고 성령을 모시고 있다면 그 사람은 설교할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 설교자의 준비다. 설교자의 가장 좋은 훈련방법은, 자신이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특징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도와 경건은 설교자의 생활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문제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설교자는 기도의 사람이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설교 속에서 로이드 존스는 자주 하나님의 아들을 지칭할 때 “우리의 복 되신 주와 구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했다. 그의 설교 중에는 이러한 생각을 보여 주는 실례가 있다. 그는 기도자의 태도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 하는 존중의 태도를 언급한다. “하나님을 더 많이 알수록, 설교자는 기도 속에서 ‘친애하는 하나님’(Dear God) 같은 표현을 점점 덜 사용할 것이다. 도리어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거룩하신 아버지’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하여 더 많이 깨달을수록, 더욱 조심스러워야 함을 깨닫는다. 하나님이 불 붙는 가시떨기 속에 나타나시고, 모세가 그것을 조사하기 위하여 다가갔을 때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잘 기억할 것이다.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바로 이것이다. 그분의 장엄으로 인한 경외와 경건한 두려움이다”(『로마서 강해 시리즈: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 p.220). 토니 사전트는 그의 경건한 모습에 대해 “로이드 존스의 얼굴을 보면, 주님에게 도취된 사람 같았다”고 묘사한다. 셋째, 자신에게 설교하는 것이다. 로이드 존스는 설교자의 성향과 삶의 질이 사역을 보완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는 설교자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을 소망으로 삼는 설교자를 통해 말씀하신다. 로이드 존스는 이렇게 고백한다. “이 길로 들어선다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주님이 사신 것처럼 살라는, 점점 그분처럼 되라는 초대이다. 그것은 그분처럼 되는 것이며, 우리가 이 복음서들에게서 읽는 그분의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생각할수록, 그 동기는 더욱 커질 것이다. … 그분을 주목하고 따르라. 주님은 당신과 함께할 것이다. 그분의 복된 얼굴을 보고, 영원히 그분을 즐거워할 수 있을 것이다(『산상설교(하)』- “좁은문”, p.119). |
'좋은 말씀 > 로이드 존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존 스토트가 본 로이드 존스 (0) | 2016.01.26 |
---|---|
참 회심의 증거 - [마틴 로이드존스목사님 설교] (0) | 2016.01.25 |
[스크랩] 최고 복음주의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Ⅰ (0) | 2016.01.23 |
[스크랩] 하나님의 주권 (0) | 2016.01.22 |
[스크랩] 왜 하나님은 전쟁을 허용하실까?-마틴 로이드 존스 (0) | 2016.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