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7)
하나님께서 사람의 외모에 이끌리는 사무엘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의 아버지도 인정하지 않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새 왕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소년 다윗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인정하셨을까요?
다윗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울에게도 하나님은 있었습니다. 그는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하나님의 법궤를 앞세웠고, 하나님의 단을 쌓았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사울왕의 그런 태도는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후, 가인과 아벨을 낳습니다. 가인은 농사꾼, 아벨은 목동이었습니다. 각자의 소출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인 일인지 하나님께서 가인의 것은 거부하시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습니다. 여기에는 명심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가인’은 ‘소유’와 ‘획득’이라는 뜻입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목적은 소유와 획득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입니다. 기복을 위한 제사입니다. 자신의 제사가 거부당하자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입니다. 아벨이 없으면 자신의 제사를 받으실 것으로 착각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 동생 아벨은 어디 있느냐?” 그러자 가인이 되묻습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나님의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창세기 3,4장의 내용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왜 인생이 실패하는지 그 근본 원인과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습니다. 하나님의 지위를 ‘획득 소유’하려했습니다. 가인은 제사로 하나님의 복을 ‘획득 소유’하려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하나님 됨을 인정하고 배우자를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 인정하고 “아우를 돌보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소유의 종교’가 아니라, ‘관계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가 최우선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소유’와 ‘획득’이 최우선 순위입니다. 하나님과 그 제사마저 ‘소유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오직 자신의 승리와 업적이 최대 관심사인 사울왕은 대표적인 가인의 후예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중심에 성령이 계셔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왜곡되듯이, 성령 또한 얼마든지 왜곡할 수 있음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초대교회 당시 사마리아에 큰 능력의 마술사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빌립 집사가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전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는 마술사 시몬도 있었습니다. 성경은 시몬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행 8:13)
마술사 시몬은 가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전심으로’ 예수님을 믿었고, 하나님의 표적과 큰 능력에 놀라며, 그에 비하면 자신의 능력은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아, 나도 저런 능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간절한 바람이 생겼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와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안수하자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회중 가운데 방언이 터지고 입신하고 진동하고 병이 낫고 하늘의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마술사 시몬도 그 성령을 너무나 받고 싶었습니다.
당시의 일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제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행 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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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자 베드로가 시몬을 심히 질책하며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도 될 것도 없느니라. 네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행 8:21-22)
시몬의 잘못은 무엇일까요? 왜 성령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을 악한 것이라 하였을까요? 성령을 돈으로 사려고 했기 때문일까요? 그렇더라도 사도로부터 성령을 받는 것을 스승으로부터 사사받는 것과 동일하게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에게 악한 의도는 없습니다.
시몬과 같이 성령받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능력을 행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으려는 마음을 사도들은 ‘잘못된 것’으로 규정함을 마음에 새기셔야 합니다.
성령을 반드시 받으셔야 합니다. 그러나 올바로, 제대로 받으셔야 합니다.
성령을 처음 설명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병 고치는 능력과 귀신을 제압하는 능력이기 이전에, 성령의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을 이해하고 깨닫고 행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시는 영’이라는 점입니다. 당연히 병도 고치시고 귀신을 제압하십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깊은 뜻을 깨닫게 하시는 진리의 영’,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시는 영’, 그래서 죽은 것도 살리시는 ‘생명의 영’이십니다.
소년 다윗은 목동으로서의 하나님 체험을 이렇게 말합니다.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사자)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을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골리앗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삼상 17:35)
목동 다윗은, 위험이 가득한 광야에서 생생한 하나님 체험을 합니다. 그 체험을 자신의 무용담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명백한 증거로 가슴에 새겼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다윗의 별명은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입니다. 곧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고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진정한 성령의 사람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다윗이 가졌던 그 마음을 우리에게서 찾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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