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하나님의 창조와 언약

새벽지기1 2015. 12. 17. 08:06

 

행복하고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구조를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끝없이 창조하십니다. 창조의 원동력은 사랑과 진리입니다. 반면 사탄은 오직 파괴에 몰두합니다. 파괴의 수단은 증오와 거짓입니다. 그럴듯하게 들려도 모두 거짓이며 증오심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을 ‘거짓의 아비’(요8:44), ‘밤낮으로 참소하는’(계 12:10) 파괴의 영이라고 규정합니다.

 

이사야는 사탄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사 14:13) 뭇별 위에 군림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려는 그 마음이 바로 증오심의 원천입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의 화두인, 성공지향과 무한 경쟁은 다름 아닌 사탄의 생각과 같습니다. 성공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뭇별 위에 좌정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카피라이터인 정철 씨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비누가 지배하던 욕실에 샴푸가 한자리 차지 할 수 있었던 건, 자신만의 전문 분야를 확실히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샴푸가 지배하던 욕실에서 린스가 한자리 차지할 수 있었던 건, 샴푸의 일을 빼앗지 않고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쓰러뜨려야 내 자리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찾으라는 것이 예수님의 당부입니다.

 

창조의 하나님과 파괴의 사탄의 한 가운데 내가 서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에 속하면 내 생명은 살고 더욱 풍성해지고, 사탄에 속하면 내 삶은 황폐지고 마침내 파멸에 이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내 마음자리입니다. 성공 여부가 아닙니다. 누차 말씀드립니다. 성공과 보상에 대한 강박감을 버리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관심사는 현세적인 성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슨 일을 행할 때 가장 먼저 물어야 하는 것은, 이 일을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냐, 아니면 증오로 하는 것이냐를 물어야 합니다.

 

내 손해와 억울함과 복수심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증오에 의한 것이면 반드시 멈춰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파괴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필요도, 십자가에 달리실 필요도, 또한 그런 기도를 하실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기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직 우리들이 그렇게 기도해서 어떤 일을 당하든지, 선으로 악을 이겨 하나님께 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살고 내 생명이 더욱 풍성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일이 내게 손해가 나는 일이라도 사랑, 즉 내가 살고 남을 살리는 일이면 그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행해야 합니다.

 

마음에 새기고 새겨야 하는 것은, 복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선한 일에 담아놓으셨다는 점입니다.

그 일을 행할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복이 내 삶에 가득하게 됩니다.

이것이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원리이자 유일한 성공의 원리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창조의 하나님이십니다. 동시에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와 언약, 이 둘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언약을 하십니다. 그 언약을 믿고, 하나님을 향해 나갑니다.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이루시며 나를 성장시키며 점점 더 새로운 존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창조해나가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롬 12:19)

 

이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이 언약을 믿고 정말 너무나 힘들지만 내 손의 칼을 내려놓습니다.

분노가 불쑥불쑥 치밀어 오를 때마다 이를 악물고 기도합니다. 그렇게 기도가 더해지노라면 어느새 내 마음에 하나님의 평강과 안식이 자리를 잡았음을 알게 됩니다. 창조의 하나님께서 나를 재창조하신 것입니다.

 

영국 시인 W.H. 오든은 인간에게만 허락된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일, 웃음, 기도입니다. 그가 말합니다. “개인이든 공동체이든 간에, 일과 웃음과 기도 이 세 가지에 적절한 관심을 가져야 만족스러운 삶이 가능하다. 기도와 일이 없으면 사육제의 웃음은 추잡한 것이 되며, 코미디의 유머는 지루하고 외설스러워 지며, 조롱은 순식간에 미움과 잔인함으로 돌변한다. 웃음과 일이 없으면 기도는 지식 중심적이고 변덕스럽고 형식적인 행위로 전락한다. 반면 웃음과 기도 없이 일만 하면 권력에 미친 사람이 되고, 자연을 욕망의 포로로 삼는 폭군이 되고 만다. 그러다 결국 허상의 섬에서 파선하는 배처럼 파멸을 맞는다.”

 

우리들은 연약하고 어리석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최고의 선물들을 주셨습니다. 열심히 자신의 맡은 일을 행합시다.

언제나 기도로 하나님의 뜻과 능력과 지혜를 구합시다. 아무리 어려워도 서로를 향해 웃어줍시다.

그리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이 아름다운 세상을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신나게 누리며 풍성히 베풀며 살아갑시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