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

역사를 왜곡할 때 주어지는 위기 / 신동식 목사

새벽지기1 2026. 6. 1. 06:57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16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보았다고 합니다. 일명 ‘왕사남’이라 불리는 이 영화가 이렇게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역사를 알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단종과 엄흥도와의 관계를 통해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으며, 조선왕조실록 한 편에 기록된 역사를 복원하여 바로 잡아 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최근에 방영된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은 연기자들의 연기 호평에도 불구하고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져 씁쓸하게 막을 내렸습니다.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와 왜곡이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비록 허구를 중심으로 쓰여진 영화와 드라마지만 역사 왜곡을 용납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역사 왜곡이 위험한 것은 한 민족의 정체성을 뒤흔들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게 만듭니다. 지금도 진행 중인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 역사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중국과 일본은 고대사 연구에 있어 매우 앞서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아직도 고대사 연구에 있어 부족한 모습이 많습니다. 역사의 뿌리부터 왜곡할 때 시간이 흐르면 자기 정체성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역사 왜곡과의 싸움은 매우 치열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역사는 승자의 기록물로 종종 남게 됩니다. 그래서 참된 역사를 복원하는 일은 어렵고 인내심이 정말 필요한 작업입니다. 그러기에 역사 왜곡은 상상할 수 없는 손실을 가져옵니다.

이번 스타벅스의 마케팅으로 사용된 문구 또한 역사에 대한 비아냥거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처참한 국가 공권력의 행태를 미화시켰고, 역사의 피해자를 조롱했습니다. 이런 비아냥거림과 조롱은 자연스럽게 역사 왜곡을 불러옵니다. 스타벅스의 논란을 이용하여 역사 왜곡을 시도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미 역사 정치적으로 사법적으로 종결된 역사를 이념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역사 왜곡이 가져온 끔찍한 모습은 공동체의 분열입니다. 분열은 역사에 대한 의심과 이념적 옹호에서 시작합니다. 결국 왜곡은 의심으로 이어지고 공동체는 서로 혐오하며 분열됩니다. 그리고 극심한 혼란이 비집고 들어옵니다. 역사 왜곡은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적 유대를 끊어 놓습니다. 역사는 왜곡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는 살아있기에 반드시 자기 자리를 찾아갑니다.

역사는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역사는 권력자에 대한 치료제입니다. 권력에 취하여 헛된 망상을 갖지 말라는 표지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가볍게 여기거나 표면적으로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더더욱 역사적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역사가 탐욕을 위하여 사용된다면 그처럼 천박한 행태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왜곡된 역사와 역사적 조롱에 저항하는 것은 매우 합당한 자세입니다. 저항이 없으면 변화는 없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공동체의 정체성을 허무는 일에도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역사 앞에 모두가 평등해야 합니다. 역사를 자신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반드시 재앙으로 되돌려 받게 됩니다.

역사는 지난 삶의 궤적에 대한 기록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지표이며 미래를 향한 지시판입니다. 그러므로 역사가 왜곡되면 과거가 정리되지 않고 현재를 살아내는 힘이 없고 미래를 향한 표지가 없으므로 삶의 소망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 기술해야 합니다. 이때 역사가들의 위치가 중요합니다. 중국에는 사마천의 「사기 열전」이 있고, 그리스에는 헤르도트스의 「역사」가 있으며, 로마에는 타키투스의 「연대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르메니아에도 5세기에 호렌의 모세에 의해 쓰여진 「아르메니아인의 역사」가 있습니다. 역사가의 임무는 왜곡되지 않고 최대한 사실대로 서술하는 것입니다. 물론 역사가의 해석이 들어갈 수 있지만 그 역시 최소한 해야 합니다. 사실 그대로의 역사를 통해 지표를 삼을 수 있습니다.

한 회사의 상술로서의 역사 비아냥과 왜곡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역사의 해석은 다양할 수 있으나 조롱과 왜곡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공동체를 세우지 못하고 허물게 하는 것은 모두의 슬픔입니다. 역사를 왜곡할 때 분열과 분쟁이라는 위기가 따라옵니다. 그러나 역사를 분별할 수 있는 시각이 있다면 그 공동체는 약간의 부침은 있겠으나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위기는 언제나 기회입니다.

출처 : 로드십매거진(https://www.lordshiplif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