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

역사가 기록할 사람 / 신동식 목사

새벽지기1 2026. 1. 16. 06:42

'虎死有皮 人死有名'(호사유피 인사유명)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고사성어이다. 학창시절에 귀에 따갑도록 들었던 말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온갖 무리한 일을 하기도 했다. 가끔씩 성공한 연예인들이 학창 시절의 불필요한 행동으로 인해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본다. 이것이 연예인뿐이겠는가? 모든 사람이 다 이러한 경험을 하지 않는가? 어린 시절에 일어난 일만이 아니라 마지막 삶의 자리에 설 때도 이러한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사람은 수드룩하다.

2026년을 시작하면서 큼직한 두 가지 사건을 보면서 역사가 기록할 사람이 궁금해졌다. 한 사람은 전직 대통령이다. 내란죄로 인해 재판을 받고 있다. 대통령의 통치권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무리한 게엄을 선포하고 국민들을 혼란에 빠지게 했다. 

그러나 국민은 이러한 시도를 막았고 결국 탄핵으로 감옥에 갇히게 됐다. 결국 내란 죄로 인해 검찰에 의한 사형이 구형됐다. 역사는 윤설열 전 대통령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사형수 윤석열이다. 자기 욕심에 빠져 국가를 혼란에 빠지게 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들에게 윤석열은 전두환·노태우와 같은 반열에 서게 될 것이다. 역사가 무섭다. 역사의 무서움을 알면 헛된 일을 하지않는다. 그러나 역사를 우습게 여기면 자기 권력에 취해 오만에 빠지다 자멸한다.

이것은 정치인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이러한 역사의 단죄가 있다. 그 가운데 한국교회가 서 있다. 한국교회는 유례가 없는 부흥을 누렸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교회가 곳곳에 세워졌다. 그리고 선교사를 각국으로 파송했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은 쪼그라 들고 있는 한국교회를 본다. 교회가 없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주일학교 중·고등부가 사라지고 있다. 저출산의 영향이지만 교회도 한 몫했다. 교회 역시 성공주의에 빠져 신앙교육은 중요하지 않았다. 

주일에 학원가고 시험보는 것은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일들이 교회안에서도 일어났다. 우선순위가 예배가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가는 동안 더 이상 주일의 소중함을 사라지고 교회의 필요성이 무디어졌다. 이러한 외적인 변화는 교회를 작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이러한 현상 뒤에는 목회자의 일탈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교회의 부흥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외치던 이들이 정작 자신의 삶의 문제가 대두되자 자신의 열심으로 탈바꿈했다. 

하나님의 열심을 그렇게 외쳐됐던 목사들이 자신의 몫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이러한 불편함이 나타났다. 물론 여기에는 제도적인 미비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은퇴를 준비하지 못한 교단과 교회의 큰 실수가 슬픈 현실을 만들어 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러한 제도를 모른다. 오히려 목사들의 욕망에 실망했다. 자신들의 입으로 성직자라고 외쳤던 이들의 추악한 욕심이 이곳저곳에서 분출되기 시작했다. 목회가 소명이라고 했던 사람들이 실상은 세속직업인이었다. 이제 목사들은 목회를 하는 이유가 모호해졌다. 두 가지 직업을 가지면서 분투하지만 돈도 못 벌고, 목회도 어렵다. 참 힘들고 고단한 현실이 됐다. 

세상이 먼저 알아차렸다. 교회에 거룩함이 사라졌다. 목사에게 거룩성이 없어졌다. 그러니 더 이상 주일의 거룩함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온라인 시청을 예배라고 하는 무리들이 생겨났다. 

특별한 상황에 허락된 것이 일반적 상황으로 왔다. 그래도 헌금은 한다고 자조섞인 말로 위로 받는 모습이 서글픈 한국 교회의 자화상이 됐다.

역사에 기록될 이름은 무엇일까? 역사가 기록할 한국교회는 어떨까? 사도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친 자에게 의의 면류관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의의 면류관에 합당한 이름인지를 생각한다. 마지막이 부끄럽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런데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오버랩되는 것은 괜한 근심일까?

출처 : 데일리굿뉴스(https://www.goodnews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