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는 왜 평화일까?
예수님의 오심을 기록한 말씀에는 하늘에는 하나님께 영광이고 땅에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가운데 평화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성탄절의 모든 글귀에는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고 쓰여있습니다. 이 가운데 예수님의 오심이 땅에는 평화라고 기록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참으로 많은 말 가운데 “평화”라는 말을 쓴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평화는 헬라어로 “에이레네”입니다. 이것은 히브리어로는 “샬롬”입니다. 이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에 따라서 삶의 적용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평화는 무엇일까요? 평화는 일반적으로 전쟁과 대립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전쟁과 평화”를 함께씁니다. 평화주의자라는 말에는 전쟁 반대주의라는 의미가 함의되어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좀더 진전된 의미로 본다면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충족의 상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무엇인가 결여가 없는 완전한 상태에서 오는 충족한 상태를 말합니다. 하지만 평화는 여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평화는 불의가 무너지고 정의가 온전하여 질서가 바로 세워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평화의 근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평화라는 말이 주는 안전감과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평화가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결여된 삶이라 할 수있습니다. 정의가 세워지지 않는 무질서의 상태입니다. 여기에 전쟁은 이 모습을 극대화된 모습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전쟁이 없다고 평화는 아닙니다. 평화는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가 온전하게 세워져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의 오심이 땅에는 평화라고 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땅에는 평화가 없음을 함의하기 때문입니다. 평화가 없다는 것은 사람들이 무엇인지 결여된 상태로 살아갑니다. 불안하고 질서가 없고 정의를 볼 수가 없습니다. 동시에 가정에서 이웃에서 나라마다 분쟁과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분명합니다. 바로 죄로 인한 인간의 부패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보느냐, 아니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 달라집니다. 성경은 첫 사람 아담이 타락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담 이후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다 죄악 가운데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모태로부터 죄악 가운데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의인은 없고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한 세상은 전쟁터입니다. 오직 힘 있는 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세상입니다. 얼마나 불합리하고 화가 납니까? 하지만 부패한 세상은 약육강식을 일상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은 지성이 없는 동물의 세계에서 확연하게 나타납니다. 타락한 세상에 공존하는 동물들의 부패가 잔인한 정글세계를 만들었습니다.
세상에 조롱과 무시가 존재하는 이유는 구조 때문이 우선이 아닙니다. 인간이 가진 탐욕이 더 근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탐욕을 가져온 뿌리가 있습니다. 바로 죄로 인한 타락입니다. 이것이 창조 세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습니다. 죄에 대한 인정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과 창조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수천년 동안 이어진 교육과 정치가 있었습니다. 오히려 더 타락하여졌습니다. 분열과 다툼이 더욱 심해지고 거짓과 불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으로 죽이는 기술만 자라고 있습니다.
창조 세계의 이 모습에 가장 슬퍼하시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자기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의 타락은 참으로 끔찍하였습니다. 앞으로 몰고 올 후 폭풍을 모른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가슴을 찢는 일이었습니다.
삼위 하나님은 이러한 사실 앞에 준비하셨던 창조 협약을 작동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 문제의 해결입니다. 그러나 당장 오실 수 없었습니다. 복음의 준비가 필요하였습니다. 그리고 노아를 통하여 신인류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셈의 가족을 준비하셨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과 모세와 다윗과 선지자들에게 망가진 창조세계와 부패한 사람을 회복하고 평화를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이르매 성령으로 잉태된 성자 하나님이 사람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성육신입니다. 이것은 약속의 성취입니다. 그러자 노래가 들렸습니다. 땅에는 기뻐히심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입니다. 이제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부패한 인간은 부패를 멈추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방법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일은 평화를 얻는 길을 알려주심입니다. 평화를 얻는 길은 주 예수를 믿고 회개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설교자를 보내고 전도자와 선교사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온 도들을 삶의 자리로 파송하였습니다.
평화가 임해야 소망이 있습니다. 불안함이 사라지고 참된 행복이 찾아옵니다. 무질서가 지나가고 공의가 세워집니다. 탐욕으로 인한 전쟁이 멈춥니다. 오직 평화가 이 일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육신의 날을 맞이하여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소망이고 평화입니다. 그래서 땅에서는 평화라고 말합니다. 이 평화를 오늘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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