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

행복을 누리기 위한 필수 요소가 있습니까? / 신동식 목사

새벽지기1 2026. 5. 16. 06:16

행복을 누리기 위한 필수 요소가 있습니까?

고대로부터 사람들이 가장 소망하는 것은 행복이라고 하였습니다. 행복을 위하여 일하고 전쟁도 감당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26년 5월13일에 있었던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언급하였습니다. 이는 필레포네스 전쟁사를 쓴 저자인 투기디데스를 인용한 말입니다. "아테네의 성장과 그것이 스파르타에게 준 두려움이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즉 이 말은 기존의 강대국과 새롭게 부상하는 강대국 사이에서 긴장과 두려움이 커지면서 결국 전쟁 위험이 높아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투기디데스의 말이 오늘날 G2라 여겨지는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에서 나왔다는 것이 의미있습니다. 역사는 지역만 바꿀뿐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쟁의 목적이 자국의 행복에 있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이웃의 행복을 배제하는 것이 바로 전쟁입니다.
행복을 위한 인류의 도전과 응전은 참으로 치열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인류가 행복을 추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쉽게 말하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그 본성은 창조의 본질입니다. 인류의 행복은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하지만 타락하고 부패한 인류는 참된 행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기적 행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 가운데 이기적 욕망으로 인하여 타자의 행복을 파괴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행복을 누리고 싶어합니다.
특별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명주기가 늘어나면서 가장 많이 준비하는 것이 노년의 삶에 대한 불안입니다. 건강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병들어 고생할 때 필요한 자금에 대한 두려움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빛을 내어서 부동산을 사고 금융에 투자합니다. 모두가 안정된 행복을 위한 몸부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행복이 자본의 준비와 국가의 지정학적 안정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본질적인 준비가 반드시 기반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만족할 만한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을 위한 기반으로서의 다섯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첫째 믿음입니다.

믿음이 행복의 첫째 요소입니다. "주 예수님 제가 예수님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이 삶의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지만 모든 행복을 떠 받들고 있는 기초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만들어 놓은 모든 행복의 건출물이 유지될 수 없습니다. 마치 모래 위에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오면 무너지고 맙니다. 믿음은 반석입니다. 이 위에 지은 집은 비 바람을 견디어 냅니다. 모든 사람은 다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그 누구도 살 수 없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 속에 살아갈 때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에 오늘도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그리고 밤늦은 저녁에도 거리를 활보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행복을 위한 믿음은 인격적이어야 합니다. 창조적이고 윤리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참된 행복의 첫째 요소입니다.

둘째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하루를 살아도 전혀 다르게 살아갑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참된 행복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웃에는 자신도 포함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은 가족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가족의 사랑을 누리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가족의 사랑이 없으면 자존감이 많이 떨어질 수 있기에 이웃을 사랑하는 데 많은 수고와 인내가 더 필요합니다.
사랑은 가족의 사랑만이 아닙니다. 가족을 넘어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의 폭은 매우 넓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사랑하고, 자신의 나라를 사랑합니다. 이러한 사랑이 행복의 기초가 됩니다. 역으로 자신을 불평하고 자신의 일에 불만족하고 공동체를 불신하고 자신의 조국울 무시한다면 행복은 매우 요연합니다.


셋째 소명입니다.

사람이 제일되는 목적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가 분명합니다. 이것은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서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내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이 우연인지, 소명인지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살아갈 삶의 질이 전혀 다르게 나타납니다.
참된 행복은 소명을 가졌는지에 따라 좌우됩니다. 소명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가 분명함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죄짓는 것 외에는 다 거룩한 일임을 알고 살아갑니다. 직업의 귀천이 없다는 말은 실제는 소명의 문제입니다. 죄 짓지 않고 얻는 일의 열매는 최고의 가치가 있습니다.
어디서 부터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행복의 질을 판가름하게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면 그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행복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삶의 목적을 아는 사람입니다. 사랑이 제일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 합니다. 이것이 행복의 원천입니다.


넷째 친구입니다.

친구는 동지입니다. 동지는 함께 길을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아프리카 속담처럼 멀리가려면 함께가야 합니다. 인생이라는 여정에 친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한 지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는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친구는 외롭고 힘들 때 가장 빛이 납니다. 성경은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이 친구가 그런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서로를 빛나게 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입니다.
친구는 빈 공간의 삶을 채워줍니다. 그래서 삶의 위기가 있을 때 의지가 됩니다. 그리고 소명을 향하여 달려갈 때 지치지 않도록 도와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친구를 소중히하고 가까이 하는 사람이 소소한 행복을 오랫동안 누릴 수 있습니다.

다섯째 선생님입니다.

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생이 많지 않습니다. 선생이 없는 시대는 가장 불행한 시대입니다. 선생이 없는 사람은 자기 소견과 욕망이 가득하여 쉽게 길을 잃어버립니다.
모두가 선생이 되지 못합니다. 선생의 조건 가운데 가장 분명한 것은 일관성입니다. 그리고 정감성과 자발적 불편을 사는 사람입니다. 일관성은 변함없이 공부하고 그 생각이 시류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단단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시대를 비판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정감성은 정직함과 겸손함이 몸에 베어 있습니다. 이런 분이 선생으로서 존재합니다. 정직하지 않음은 자기 욕망으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직은 겸손과 함께 할 때 그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발적 불편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식 장사꾼이 되든지, 탐욕을 위한 불나방으로 살아갑니다. 선생이 보여주는 삶을 사표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힘이 살아서뿐 아니라 죽어서도 남아 있습니다. 동시에 담고 싶은 마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바로 선생입니다. 이 마음이 있어야 진짜 선생의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지 외식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저절로 무릎을 꿇을 수 있는 분이 선생입니다. 존경하는 손봉호 선생은 장기려 박사 앞에서는 저절로 무뤂이 꿇어졌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이 있는 사람이 행복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행복이 삶의 목적이라면 행복을 위한 기반을 잘 만들어야 합니다. 다섯가지 요소를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적어도 이 다섯가지가 삶의 자리에 있어서 진짜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