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하심과 성실하심(1)
오는 24일 대림절 넷째 주일에 해당되는 시편은 89:1-4, 19-26이다. 여기서 키워드는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다. 이 키워드가 반복된다. 1,2절은 이렇다.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내가 말하기를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니라 하였나이다.’ 24절에서는 주어가 하나님으로 바뀌어서 ‘나의 성실함과 인자함’이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인자하심에 근거하여 시편 기자는 26절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표현된 문장이다. ‘그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루터는 인자하심을 Gnade로, 성실하심을 Treude로 번역했다. 독일어 그나데는 은혜, 자비, 호의, 친절 등등의 뜻이고, 트로이에는 성실, 충실, 신의 등등의 뜻이다. 우리말 성경의 하나인 공동번역은 ‘사랑’과 ‘미쁘심’으로 번역했다. 약간의 뉘앙스에서 차이가 있지만 기본 의미는 같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는 분이시고,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히 믿고 따를만한 분이라는 뜻이다.
이런 고백은 신구약성경 전체의 핵심이다. 예수도 이런 고백에 근거해서 자기 운명을 받아들였다. 제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이런 신앙고백과 경험이 피상적으로 흐르거나 왜곡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우선 성경 본문이 가리키는 그 신앙의 깊이를 단지 문자에 떨어지는 게 아니라 그 심층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는 마치 베르디의 <레퀴엠>의 깊이를 알아야 그 연주에서 영혼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거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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