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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품 안에서의 완전한 보호(출2:1-10) / 신권인 목사

새벽지기1 2026. 4. 6. 19:49

하나님의 품 안에서의 완전한 보호(출 2:1-10)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애굽을 다스리더니"(출 1:8). 이 한마디의 선언 속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암울한 역사의 서곡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히브리적 사고에서 "알다"는 것은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를 담지한 언어다. 결국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은 요셉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왕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의 역사에서 단절된 왕, 더 나아가, 그 역사를 의도적으로 끊어버린 왕을 의미한다. 역사가들은 이런 왕을 연대기적, 학술적 관점에서 기억하겠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서 그는 제국을 확장한 통치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한 자로 기억된다.  

1. 비극의 강가에 선 어머니

하나님의 사람들에겐 이집트 고센 땅의 밤은 더 이상 안식의 시간이 아니었다. 들키지 않으려 입을 틀어막은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히브리인 부모들의 신음이 가득한 '장례식장'과 같았다. 그 비극의 한복판에 요게벳이 서 있었다. 파라오의 명령은 서슬 퍼렜다. "히브리 남자아이는 모두 나일 강에 던져라."는 첫 번째 명령은 산파들을 통해,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죽이고, 여자 아이면 살려두라(출 1:15-16)는 제한적 비밀 정책이었으나, 이제는 노골적으로 온 나라에 공개적으로 내린 두 번째 명령이었다. 요게벳은 아기의 눈부신 아름다움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고, 목숨을 걸고 석 달을 숨겼다. 하지만 아이가 자랄수록 울음소리는 담장을 넘었고, 이웃의 밀고와 병사들의 구두소리는 시시각각 심장을 죄어왔다. 

2. 마지막으로 지은 '작은 관', 갈대상자

결국 요게벳은 결단해야 했다. 그녀는 갈대 상자를 가져와 틈새마다 역청을 바른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했지만, 그 상자는 사실 엄마의 손으로 직접 짠 '아들의 관'이나 다름없었다. 아이에게 마지막 목욕을 시키고 예쁜 옷을 입히지만 그것은 기쁨의 옷이 아니라, 어미가 입히는 눈물의 수의(壽衣)였다. 아이는 엄마가 직접 입힌 수의와 자신이 들어갈 관을 보며 즐거워하고 엄마와 눈을 맞추며 방긋방긋 해맑게 웃는다. 어미는 숨죽여 허물어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천형(天刑) 같은 운명 앞에 맞선다. 그는 절규하며 "하나님, 대체 어디 계십니까? 왜 내 손으로 자식을 죽이게 만드십니까?" 하나님의 침묵 속에 요게벳은 단장(斷腸)의 고통을 안고 새벽안갯속 나일 강으로 향한다.

3. 내 품을 떠나 하나님의 품으로

요게벳은 마침내 아기를 나일 강에 내려놓는다. 죽음의 강, 수많은 히브리 아이들이 던져졌던 곳. 악어가 도사리고 군사가 지키는 곳. 그곳에 요게벳은 자신의 아들을 내려놓는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양도'(Surrender)였다. 내 무능한 품에 안고 있으면 결국 둘 다 죽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품에 맡기면 살 수 있다는 마지막 믿음의 모험이었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 죽음의 강, 악어의 강이었던 나일 강이 하나님의 '보호의 통로'로 변한다. 아이를 실은 상자는 정확한 시간에 파라오의 공주가 목욕하는 장소로 흘러갔고, 흉포한 살인 명령이 지배하던 그곳에서 공주의 마음에는 난데없는 긍휼히 피어오른다. 하나님은 나일 강의 물결마저 당신의 섭리대로 지휘하고 계셨다.

4. 상상할 수 없는 반전의 복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했다. 요게벳은 아침에 아들을 버렸는데, 점심이 되기 전 아들을 다시 품에 안았다. 그것도 죄인처럼 숨어서가 아니라, 공주의 보호 아래 당당히 삯을 받아 가며 말이다. 이집트 군사들은 이제 요게벳의 집을 수색하는 적이 아니라, 왕자를 키우는 집을 지켜주는 '보디가드'가 되었다. 가장 위험했던 대적의 심장부가 모세에게는 가장 안전한 요람이 된 것이다. 내가 쥐고 있을 때는 불안과 고통뿐이었던 인생이, 하나님께 인계되는 순간 가장 완벽한 시나리오로 반전되었다.

요게벳이 아이를 품에 안고 있을 때는 사실 안전하지 않았다. 늘 불안했고 늘 들킬까 두려웠다. 그러나 하나님께 맡긴 순간, 그 아이는 가장 안전한 곳으로 옮겨졌다. 이 장면은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갔을 때와 무엇이 다른가? 동일하다. 사람의 눈에는 죽음의 자리였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보호의 자리였다. 보호는 붙잡을 때가 아니라 맡길 때 시작된다. 가장 귀한 것을 내 품에서 하나님께 양도할 때, 비로소 진짜 보호가 이루어진다. 사람의 품은 불안하지만 하나님의 품은 완전하다. 

당신의 '나일 강'은 어디인가?

오늘 우리도 요게벳처럼 무언가를 꽉 움켜쥐고 있는 그 무엇이 있다. 내 자녀, 내 미래, 이거 놓으면 죽을 것 같고, 명치끝이 아려오도록 붙잡고 있는 그것 말이다. 하지만 기억하자. 우리의 무능한 손으로 붙들고 있는 한, 그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 이제 그 소중한 것을 하나님의 강물에 띄우라. 내가 내려놓아야 하나님이 일하신다. 지금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놓으면 죽을 것 같고, 잃으면 끝날 것 같은 그것, 평생 우리의 명치끝을 붙잡고 내 인생을 휘두르게 방치했던 그것을 놓을 때, 기적은 시작된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네 손에서 내려놓아라. 내가 보호하고 내가 통치하리라"

이제 선택해야 한다. 계속 내 손으로 붙잡고 불안 속에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보호를 누릴 것인가? 보호는 맡김에서 시작된다. 내 품을 떠나보낼 때, 하나님의 품 안에서의 진정한 보호하심이 시작된다. 죽음의 나일 강을 생명의 통로로 바꾸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 우리의 갈대상자를 내려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