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하나님 나라(11)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5. 10. 04:00

하나님 나라(11)

 

교회의 보편적 사명을 제한하거나 종말론적 공동체로서의 성격을 배제하는 것은 교회의 사회적 의미를 훼손하는 결과가 된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오직 일부 사람들의 종교적 요구, 즉 오늘날 대다수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 하나의 제도(imstitution)로 변질되고 만다. 오늘의 교회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그 사명을 축소시키고 하나님 나라를 향한 희망에서 이탈했기 때문에 오늘 생각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한다.(104)

 

그대가 교회에 나가는 이유는 무엇이오? 예수 믿고 복 받아 이 세상에서 잘 살고, 죽어서 천당 가기 위한 것이라고 대답하지는 않을 거요. 물론 이런 대답이 무조건 틀린 것은 아니오. 복의 의미, 잘 사는 것의 의미, 천당의 의미를 바르게 안다면 정답이라고 할 수 있소. 그러나 우리가 한국교회에서 경험하고 있는 일반적인 신앙형태로 말한다면 이런 대답은 신앙의 큰 변질이오.

 

그 이유 중에서 한 가지만 말합시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세상에 대한 두 가지 서로 모순되는 생각을 하오. 한편으로는 신앙이 세상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차원으로 생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세상에서 세속적인 축복을 받고 싶어 한다오. 신앙적으로는 세상 초월적이지만, 실제 삶에서는 매우 세속적이라는 말이오. 이게 사실은 거꾸로 가야 옳은 신앙이오. 신앙적으로는 세상에 두 발을 딛고 있어야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초월적이어야 하오.

 

위의 인용한 글에서 판넨베르크는 오늘의 교회가 종교적 요구를 대행해주는 기구로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소. 옳은 지적이오. 신자들은 교회에 가서 자기의 종교적 구미에 맞은 상품을 사는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거요. 마치 대형 마트에 가서 바구니에 물건을 담듯이 교회에서 종교 쇼핑을 하는 거요. 일반 쇼핑과 종교 쇼핑에서 서로 통하는 점은 상품을 도구로만 여기지 존재의 근본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거요.

 

이렇게 된 데에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지향해야 한다는 사명이 망각되었다는 사실이 놓여 있소. 그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창조한 이 세상 전체에 미치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통치를 가리키오. 하나님 나라에는 종교적인 영역이 따로 있고, 세상적인 영역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오. 그 나라를 지향하는 교회라고 한다면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 세상에 이루어지는 일에 힘을 쏟지 않을 수 없소.

 

그대는 오해하지 않을 거로 믿소이다. 지금 내가 정치 경제 문제에 교회가 간섭해서 어떤 헤게모니를 획득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오. 세상의 복지를 일구고 민주적인 질서를 확장시키기만 하면 하나님 나라가 온다는 말도 아니오. 교회가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할 하나님 나라를 세상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차원으로 내몰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신자들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고 묻고 싶으시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대답할 수 있는 성질의 질문이 아니라오. 신앙의 이름으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경계를 긋기도 쉽지 않소.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소.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이오.(2010년 3월8일, 월, 비, 바람, 흐림, 가는 햇살, 먼 산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