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무상급식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5. 9. 06:10

무상급식

 

그대는 초등(국민)학교 시절에 점심 도시락을 잘 챙겨 다니셨소? 집안이 넉넉했다면 고급 반찬을 갖고 다녔을 거요.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그래봤자 계란 프라이나 장조림이 최고 반찬이었소. 대개는 김치나 무말랭이, 또는 콩자반이나 오뎅이 전부였소. 책과 노트에 김칫국물을 흘린 경험은 누구나 있을 거요. 어떻게라도 점심을 싸오면 다행이었소. 그것도 안 되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으니 말이오. 미군부대에서 점심 때 갖다 준 강냉이 죽을 빈 도시락 통으로 받아먹을 때도 많았소.

 

몇 년 전부터 초중고 전체 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자는 정책이 공론화되고 있소이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시도했다가 교육위원들의 반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오. 정당에 따라서 이에 대한 입장이 제 각각인 것 같소. 큰 흐름으로 볼 때 보수 정당은 반대로, 진보 정당은 찬성으로 가는 것 같소. 이번 지방 선거에 나올 보수 정당에 속한 사람 중에서도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이도 있기 하오만.

 

무상급식을 극빈자만이 아니라 전체 학생에게 확대하자는 정책에 대한 찬반 논쟁을 여기서 반복하지 않겠소. 무슨 정책이든지 절대적으로 옳거나 절대적으로 나쁜 것은 그렇게 많지 않기에 이런 논쟁에 휘말리면 길을 잃기 맞춤이라오. 각자 자기의 생각을 정리하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소. 그래서 나도 개인적인 의견만 말하리다.

 

그대는 내 입장이 무언지를 짐작했을 거요. 무상급식을 찬성하오. 미국 군수사업을 살찌게 하는 전투기나 탱크를 사올 돈으로 학생들에게 양질의 급식을 제공하는 게 마땅하오. 지금 학생들이 패스트푸드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소.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는 추세라 자녀들에게 건강한 식단을 마련해줄 수 있는 부모들이 그렇게 많지 않을 거요. 아이들을 건강한 식단으로 잘 키우는 것은 한민족의 미래를 보더라도 가장 우선되어야 할 정책이 아니겠소?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소이다. 최소한 먹을거리만은 국가가 무한 책임을 지고 국민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말이오. 배급제로 가면 어떻겠소? 아니면 쌀값을 지금의 5분의 1로 내리는 거요. 쌀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는 물론 땀 흘린 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겠지. 소위 이중 곡가제가 괜찮아 보이오.

 

그대는 내 생각이 너무 순진하다고 생각하시오? 지금과 같은 FTA 체제에서는 이런 정책을 밀고 나가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을 거요. 어려움이 많다고 해서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세상을 포기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소. 먹을거리로 비굴해지지 않는 것이 인간다운 삶의 출발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오. 더구나 우리는 성서의 정신으로 살아가겠다고 나선 사람들이라는 점을 명심하시구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경험한 만나 사건을 기억하실 거요. 많이 거둔 자나 적게 거둔 자나 집에 가서 확인해보면 모두 하루치의 만나만 남았다는 거요. 골고루 공평하게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만나 사건의 중요한 의미라오.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에서도 일용할 양식이 나온다오. 일용할 양식은 권리이며, 책임이라오.(2010년 3월4일, 하양 장날, 비, 잔뜩 흐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