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18일
목회경력도 많고 경건하며 인격도 훌륭하지만 성경을 해석하고 성도들을 가르치는 내용에 있어서 자신의 말이나 설교가 역사적 이단들의 한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목회자들을 흔히 접하게 된다. 순박하고 조그만 목회철학을 가지고 소형교회로 시작하였다가 대형교회로 성장한 목회자들 중에도 초기 가르침이 많은 사람들 앞에 부각이 되면서 이단성 문제로 고생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무지가 죄다. 하물며 노회나 총회와 같은 여러 사람들의 실수들이 걸러지는 객관적인 비판공간에서도 역사적으로 공인된 성경해석에 대한 어떤 무지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오류들을 역사 속에 심어 기독교의 전통적 맥이 끊어지는 위기에 들어설 수 있다.
역사적 성경해석 내용 알아야
처음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유대인들로부터 시작하여 그 하나님의 말씀들이 모든 인류의 소유가 되는 긴 역사를 통하여 신구약 성경이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의 가르침과 신앙 및 삶의 원리와 규범으로 고백하게 된 큰 계기가 된 것은 1520년대 루터의 종교개혁 시대 이후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1529년 4월 19일 루터의 종교개혁 원리로서 오직 성경만의 순수하고 배제적 설교, 모든 교리와 모든 삶의 유일하고 확실한 규범으로 성경, 무오한 성경, 성경 자체해석 원리 등의 오직 성경의 원리가 제후들과 도시들로부터 공적으로 선언되어 동의를 얻은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원리에 따
라 성경에 언급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공적으로 모두 자유롭게 비판이 되었다.
1. 신앙과 도덕에 관한 영권과 돈, 재산, 생명, 명예 등에 관한 세속권 사이의 그 직능의 분리.
2. 설교와 가르침 및 성례 집례에 있어서 모든 성직자들의 황제 위에 동등한 우위성.
3. 교황의 성직임명권의 제한 및 성직임명과 수입에 대한 교구의 독립성.
4. 같은 죄인으로서의 교황.
5. 로마순례 폐지 대신 가정과 생업으로 돌아가는 일.
6. 수도단들의 폐지.
7. 지역 내로 충분한 성직자로서 목사와 주교 및 도시에 의한 그들의 선출.
8. 목사 위에 목사 개념 비판과 성경 상 동일한 말씀 사역자로서 목사와 감독(주교).
9. 기념일, 미사, 죽은 자의 미사 등의 폐지.
10. 보속과 징벌 폐지.
11. 주일성수 이외에 신성한 노동일로서 모든 축제일 폐지.
12. 근친결혼 조건인 촌수폐지.
13. 교구 밖에 기도처와 교구회 폐지.
14. 교황 개인에 귀속된 교회재산의 공동재산화.
15. 구걸행위 금지 대신 사회보장제도의 국가 책임과 국가의 기초생활보조.
16. 교인 없는 성만찬 집례 비판과 미사로 인한 겸직금지.
17. 형제단들의 면죄허용 폐지.
18. 면죄, 면죄부, 버터 허가증, 미사허가증, 특면 등의 폐지.
19. 이단들에 대한 올바른 정죄와 공정한 판결.
20. 이단자들에 대한 폭력수단금지와 논증에 의한 설득방법.
21. 교황의 뇌물청탁, 횡포행위 금지.
22. 성직자 선출에 있어서 일반 회중의 선택과 허락제도.
23. 제복논쟁.
24. 신앙과 성경에 따른 삶의 권리 인정.
25. 평신도들의 검약생활.
26. 지교회 재산권 인정.
27. 교회법으로서 오직 성경.
28. 성경공부 중심으로 신학생 교육.
29. 성경박사로서 신학박사의 개념.
30. 소학교와 여자학교제도.
31. 기독교학교 교육으로서 성경공부.
이상과 같은 1510년대 말과 1520년대 초기의 개혁 내용들은 거의 모든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재확인된 기본적 개혁 내용이다.
개혁은 성경 권위에 순복하는 것
그때부터 미사나 인간의 공로 사상과 연결된 다른 모든 거짓 성례들이 거절되고, 성만찬과 세례만을 허용하되 그 성례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선행하지 않고 신앙 없이 그 자체로는 효력이 없으며, 그 대신 인간의 구원과 칭의는 공로 없이 그리스도 안에 은혜로부터 믿음으로 말미암아 온다는 교리만이 참된 신앙고백으로 남게 되었다. 물론 그 개혁 내용들은 개혁신학의 독특성이라기보다는 루터(신교)의 기본사상이었다. 그래도 그 정도의 루터 신학에 있어서 구원론에 대한 성경적 해석이란 529년 펠라기우스주의를 정죄한 오랑쥐 공의회의 신학적 해석에 겨우 턱걸이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사실 엄밀하게 말해 개혁신학은 역사적 모든 어거스틴주의를 극복하는데 있다. 그렇다면 지금 초기 루터주의보다 못하게 타락했던 17세기 중엽 이후 개혁교회의 역사를 본다면 지금 현존의 개혁교회가 얼마나 타락하였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지금은 초기 개혁 사상에도 못 미쳐
항상 개혁해야 한다는 낙관주의는 금물이다. 개혁된 신학도 지키지 못하는 형편인데 어떻게 좀 더 개혁하자고 할 수 있겠는가? 루터나 칼빈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공의회의 결정이라면 그것은 이미 교회 위에 군림한 무제한의 폭군이요 진정한 이단자들이며 불경건한 분리주의자들이요 성령을 크게 조롱하는 행위라고 비판한 부분을 꼭 기억해야 한다. 그런 결정이 수정되지 않고 남아 있다면 진리에 있어서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있음을 영원히 날인하는 것과 같다. 더 개혁하지 말고 역사적 개혁신학으로 다시 회복하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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