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기독교개혁신보컬럼

법이요!”-그 오용과 남용의 현실 / 남웅기 목사(대구 바로선 교회)

새벽지기1 2020. 10. 5. 07:19

2001년 9월 5일

 

소위 `회의법’이란 게 있다. 회의 질서와, 의사 진행의 공평성과, 의사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이 회의법은 교회도 널리 준용하고 있다. 단 하나, 교회만의 독특한 회의 규칙이 있다. 세상에서의 모든 의사 결정은 과반수든, 2/3 의결이든, 전적 다수결에 의존한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 다수결을 따르되 다수결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회의 규칙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법이요!”라는 외침이다. 의안(議案)이 성립되어 표결에 붙여질 무렵,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안(案)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확신하는 어느 한 개인이 법조문을 들고 나와 “법이요!” 한 마디만 외치면, 그 회중의 나머지 모든 사람이 그 안에 찬동한다 할지라도 그 안건은 폐기되어 버리는 것이다.

 

처음 노회에 참석했을 때, “법이요!” 이 한 마디가 주는 충격은 대단했다. 그 충격은 신비감에 가까왔다. `그렇구나 교회의 회의는 세상 회의법과 이렇게 다르구나!’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나 “법이요!”를 외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장로교회 헌법과 권징 조례와, 예배모범과, 과거의 교단 역사와, 지난 회의록들을 꿰뚫고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법이요!”를 자주 외치는 사람을 `법통’이라 부른다. `법통’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대개 교회 법에 통달했거나, 교단의 원로가 되야만 비로소 `법통’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속한 노회는 우리 교단 내에서도 `법통 노회’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소위 `법통’들이 많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법에 통달했다’는 의미로 불리던 `법통’ 이, `법만 내세우는 통속’이란 의미로 변질된 채 불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법이요!”가 교회 회의법에서 남용되거나 오용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오늘날 노회나 총회에서 “법이요!” 이 한 마디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위력이 대단하다. 모든 총대들이 “법이요!”란 발언이 나올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교회 회의법에서 독특하게 “법이요!”란 규정이 있는 것은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차이점을 확연히 드러내는 독특성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교회 회의에서 “법이요!”란 말이 많이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진리를 파수하기 위한 싸움이라면 말이다.

 

세상 모두가 다수결로 달려든다 해도 `다수결로 진리를 거스릴 수는 없음’을 보여주는 게 바로 “법이요!” 정신이다. 그래서 교회가 악한 자들에게 둘러싸여 성경의 진리를 대적하는 결의를 한다든지, 불의한 세력이 악을 도모할 때 소수의 회원이 아니, 단 혼자라도 “법이요!”를 외쳐야만 한다. “법이요!”는 이토록 진리와 의를 파수 할 수 있도록 만든 조처이니 얼마나 귀한 교회법만의 독특성인가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노회나 교단 총회에서 “법이요!”만큼 남용되거나 오용되는 발언이 또 있을까? 필자는 이에 대한 원인을 먼저 목회자들의 잘못된 인식(무지)에서 비롯된 법의 남용이라 생각한다. “법이요!”란 말을 글자 그대로 “법규정 사항” 임을 통보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이미 법에 규정되어 있은 즉 손대지 말라’는 의미로 “법이요!”를 남용한다. 소위 법통들은 `나 혼자서라도 이 법을 지킨다’는 `법 수호자로서의 신성한 사명감’까지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법이란게 대개는 교회 헌법도 아니다. 규칙사항을 갖고 법에 호소하며, 법의 이름으로 회의를 숨막히게 한다. 규칙사항은 다수결로 고치면 그뿐이다. 그러나 작금의 교회 풍토는 규칙 사항만 되도 국가의 헌법 이상으로 개폐가 힘들다. 헌법은 재적 국회의원 3분지 2면 국회를 통과하지만 교회 규칙은 한 사람이라도 “법이요!” 하면 개정이 불가하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법이요!”를 사용하지 않을 때 비로소 가부 투표를 물을 수 있는 것이다. 이토록 성경의 진리를 파수하도록 마련된 “법이요!”란 제도가 지금은 무조건 법 조항을 파수하는데 남용되고 있으니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법이요!”가 파수할 진정한 법은 제정된 인간의 법이 아니라 전해 받은 진리의 법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법이요!”란 나의 한마디 발언이, 단순히 규칙 조항을 파수하거나, 교회 행정 서식에 미비한 상대방을 몰아 세우는데 쓰이는 것으로 오해받지 않도록 해야겠다. 그토록 듣기싫은 “법이요!”가, 모두가 환호하는 “법이요!”로 바뀔 때 한국 교회는 성큼 성장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