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정신의학자 문요한의 「굿바이 게으름」을 하나님께 드리며
‘게으름 탈출’이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미국의 시인 칼 샌드버그가 말했듯이,
우리 안에는 하늘로 날아오르고픈 독수리가 한 마리 있고,
진창에서 뒹굴고 싶은 하마도 한 마리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 같은 삶을 사는데,
어떤 사람은 게으른 하마 같이 진창에서 뒹구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일까요?
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은 「굿바이, 게으름」에서
“게으름은 본성이 아니라, 자라나면서 현실과 부딪히며 상대적으로 학습하게 된 습관” 이라고 했습니다.
게으름은 기질이 아니라 습관입니다.
게으름은 여러 얼굴로 변합니다.
선택의 회피, 시작의 지연, 약속 어기기, 딴 짓 하기, 꾸물거리기, 눈치 보기,
그리고 중독 등, 게으름은 여러 형태로 변신합니다.
그는 먼저 ‘작은 게으름’과 ‘큰 게으름’이 있다고 합니다.
옷을 벗어 놓고 잘 치우지 않거나, 늦잠을 자는 것 등은 작은 게으름이고,
삶의 목표를 발견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내는 것이 큰 게으름이라는 것입니다.
작은 게으름이 문제가 아닙니다.
큰 게으름, 즉 삶의 목적이 없이 유랑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세계적인 명저 「몰입」의 저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또한
“게으름은 천성이 아니라 목표와 관계를 잃을 때 나타나는 상태”라고 보았습니다.
경건한 영성학자 메튜 폭스 또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게으름에 대한 처방은 부지런해 지자! 하는 결심이 아니라, 내 안의 불꽃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삶의 목적을 발견할 때 불꽃처럼 타오릅니다.
그때는 게으르고 싶어도 게으를 수가 없습니다.
목숨까지 바꾸어도 좋을 선한 목적이 있어, 그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은 늘 생기가 넘칩니다.
축제의 인간이 되어 춤을 추듯 삽니다.
주님이 주신 삶의 목적을 깨달아 불꽃같이 달린 바울 사도의 이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사도행전 20장 24절의 말씀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노라.” (행20:24)
인디언들은 말을 달리다가 가끔 말에서 내려 뒤를 돌아본다고 합니다.
행여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 봐 기다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혼이 없는 달려감, 목적이 없는 달려감처럼 큰 게으름은 없습니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바쁘고 열심히 살았다고 해서 최상으로 산 것이 아닙니다.
체력과 개인기가 뛰어난 어느 축구 선수가 전후반 내내 열심히 달렸는데,
자기 편 골대로 골을 넣었다면 어찌하겠습니까.
주님이 주신 목적을 발견하지 못하고 달리면 이와 같습니다.
작은 게으름보다 삶의 목적을 잃은 큰 게으름이 문제입니다.
내가 게을리 허비한 20분이, 또 다른 한 생명에게는 한 생애입니다.
내가 불평하며 보낸 한나절이, 하루살이에게는 일생입니다.
시인 에머슨의 표현처럼, 내가 맞이한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입니다.
오늘을 빛나게 살고, 내일을 푸르게 살기 위해서는, 주의 비전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
신실한 예배와 기도, 그리고 성경 읽기를 통해서 주님이 내게 주신 목적을 깨닫고 달리는 것이
“게으름 탈출!” “굿바이 게으름!” 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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