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기에 로마의 집정관으로 활동하다 억울하게 사형 판결을 받은 보에티우스가
옥중에서 쓴 불후의 명작이 있다. [철학의 위안]
[철학의 위안]에서 보에티우스는 철학의 여신을 통해 말한다.
“운명은 호의적일 때보다는 적대적일 때 사람들에게 더 이익이 된다.
운명은 매력적으로 보일 때 행운의 모습으로 속이지만,
변화로써 항구적이지 않음을 보여줄 때는 항상 진실하기 때문이다.
운명은 행운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불행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며,
행운은 거짓 선의 위장된 모습으로 행운을 즐기는 자들의 정신을 옭아매고,
불행은 깨지기 쉬운 행운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준다.
그러니 행운은 바람처럼 흘러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항시
그 자신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지만,
불행은 경고를 하며 명쾌하여 그 불행의 단련을 통해
사람들을 현명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아 두어라.
마지막으로 행운은 매력을 발산함으로써 참된 선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지만,
불행은 대부분 갈고리를 가지고서 사람들을 참된 선으로 돌아오게 이끈다.”
참 놀라운 통찰이다.
운명의 역설, 행운과 불행의 역설을 꿰뚫어본 기막힌 통찰이다.
아니, 온 세상에 가득한, 지금도 변함이 없는 차가운 진실이다.
뜻하지 않은 행운에 넋이 나간 사람, 작은 권력에 취해 있는 사람,
불행의 돌부리에 걸려 아파하는 사람, 운명의 장난에 치여 상처 입은 사람이
꼭 기억해야 할 냉엄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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