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좋은 그리스도인들은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 잘못된 생각은 아니다.
구원이란 애당초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걸 고려하면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구원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걸 의미한다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만일 ‘구원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걸 의미한다면 그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이란 금고에 금괴를 넣어 놓는 것처럼,
은행통장에 돈을 예금해 놓는 것처럼 확보해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원이란 본시 금괴나 돈과 같이 주고받거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바람과도 같고, 생명과도 같다.
우리가 바람을 맞을 수는 있지만 바람을 손에 쥘 수 없고,
생명을 살기는 하지만 생명을 확보해놓을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은 살 수 있을 뿐이지 손에 쥐거나 확보해 놓을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던 만나를 다음 날까지 남겨둘 수 없었던 것처럼(출16:20)
하나님의 구원도 손에 쥐거나 확보해 놓을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만나를 거두어 먹어야 했듯이,
우리가 순간순간 바람을 맞고 숨을 쉬며 살듯이
하나님의 구원 또한 매순간 호흡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적잖은 그리스도인들은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다'는
구원의 진리를 ‘구원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잘못 오해하고 있다.
한 번 확보한 구원은 결코 잃지 않는다고 확신할수록 믿음이 좋은 거라고 착각하고 있다.
왜 그럴까? 이유는 분명하다.
구원을 하나님에게 받는 무엇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화된 나,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된 세계를 구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무엇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유하거나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됐든 구원일 수 없다.
소유하거나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전체의 부분에 속한 것이고,
전체의 부분에 속한 것은 무엇이 됐든 구원일 수 없기 때문에
소유하거나 확보할 수 있는 것은 구원일 수 없다. 정말이다.
구원은 결코 주고받을 수 있는 것, 소유할 수 있는 것,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원이란 부분인 내가 전체에 참여하는 것이고, 분열된 내가 온전함에 통합되는 것이다.
부분인 내가 전 생명 ‧ 전 삶 ‧ 전 존재에 참여하는 것,
부분인 내가 전체의 하나 됨과 온전함에 참여하는 것,
개인의 삶에 갇혀 있던 것에서 해방되어 전체를 향한 삶으로 나아가는 것,
다시 말하면 눈에 보이는 세계 내에 유폐되어 살던 것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 소통하며 통합된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바로 구원이다.
즉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구원이라고 하는 특별한 무엇을 받거나 소유하거나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인 내가 전체인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전체 생명을 사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굳이 구원을 확보하기 위해 안달할 필요가 없다.
바람을 손에 쥐기 위해 안달할 필요가 없고,
생명을 확보하기 위해 안달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구원도 굳이 확보하기 위해 안달할 필요가 없다.
첫 사람 아담이 이미 창조된 세계에서 살았듯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주어진 하나님나라에서 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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