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편지

조병수의 목회편지(120)_ 예수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딤전 6:14)

새벽지기1 2016. 11. 18. 07:29


“재림 신앙, 모든 것을 의미 있게 만들어”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삶에 대한 전도서 식의 평가는 초대기독교인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인생에 변화가 있더라도 그것은 허무한 것이며, 순환이 있더라도 그것은 식상한 것이다. 삶이란 비슷한 요철의 반복이며 평범한 굴곡의 연속이다. 인생에서 모든 게 그렇고 그렇다.

인생에서 새로운 것 없어

이런 입장은 신약성경의 기자들이 부와 가난에 대하여 말할 때 아주 선명하게 나타난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약 1:9-10). 심지어 부한 자를 포함하여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고 말할 때(약 1:10; 벧전 1:24) 전도서 식의 견해는 절정에 달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하다는 것 그 자체도 그저 그런 것일 뿐이다. 하지만 부요함이란 것은 그저 그런 것일 뿐 아니라 인생에 엄청난 손해를 끼치는 독소적인 성분도 가지고 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첫째 편지의 끝부분에서 부에 관한 문제를 꽤 끈질기게 다루면서 이 사실을 강하게 표명하였다.


이미 앞에서 사도 바울은 부하려 하는 자들에게 재물이란 시험과 올무에 떨어뜨리며 파멸과 멸망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돈을 사랑하고 탐내는 마음에 주의를 주었고(9-10절), 다시 뒤에서 부한 자들에게 마음을 높이지 말고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말하면서 오직 모든 것을 후히 주시어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마음과 소망을 둘 것을 권면한다(17절). 부요함이란 그저 그런 게 아니라 때때로 삶을 치명적으로 망가뜨리는 무서운 세력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결코 안정되지 않은 재물의 부요함에 의존해서 사는 것은 매우 불안한 삶이다. 사도 바울이 부의 문제를 다루는 이유가 보통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의존할만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재물의 부요함을 의존하는 것이 불안하다는 말은 곧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엇을 의지해서 사는 것이 불안하다는 말로 바꾸어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참된 안정을 줄 수 없다. 오히려 세상에 있는 것을 의지하면 불 속에서 꺼낸 숱 조각을 잡는 것처럼 손이 더럽혀지고, 상한 갈대를 잡는 것처럼 손에 상처를 입는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진정으로 의존해야 할 대상이 세상 밖에 있다고 말한다. 그분은 다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전심을 다해 기다린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대망하는 데는, 그 이유만은 아니지만, 재물의 부요함이 가장 신뢰할만한 것이라고 믿는 세상에 대한 불신이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세상 밖에서 다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참된 안정을 발견할 수 있다.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신앙하는 것만이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산성과 같은 것이며, 폭풍우에도 요동하지 않는 요새와 같은 것이다. 게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확신할 때, 거기에서부터 신자의 윤리가 출발한다. 그런 든든한 믿음에 의하여 신자는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는 삶을 견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림에 대한 신앙은 현실적인 윤리의 동인이다. 예수의 재림이 신자의 현재를 결정한다.


윤리는 신앙의 열매이다. 재림을 믿는 것에서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발생하며, 삶의 새로운 시도가 착수된다. 이렇게 볼 때, 재림신앙은 삶의 대변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사도 바울 자신이 항상 새롭고 항상 역동적이었던 것도 이런 재림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분명히 신자는 삶이란 것이 그렇고 그런 것이며, 삶에 가장 큰 유익을 줄 수 있다고 믿어지는 것조차도 도리어 큰 해악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신자는 세상에 있는 것을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한다.

신자는 재림의 주 소망해

신자는 재림신앙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그렇고 그런 세상이라도, 심지어는 가장 믿을만한 것까지도 손해꺼리가 되는 세상이라도 도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이 세상에서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거룩한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