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는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시 소리지르되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막15:12-14) 오늘 예수님이 마지막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이 처형의 자리에 오기까지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수만 명의 무리들도 있었고 예수님을 만나고 그 사랑에 감격한 인간들도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취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멸시와 욕을 당하시고 일평생 십자가에서 숨 거두실 때까지 자기를 돌보시지 아니하고 불쌍한 이 인생들을 위하여 자신을 헌신하였던 것입니다. 인생 전체는 불쌍한 우리 인간들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다 바쳐 헌신하신 고단한 노역의 연대기였으며 모든 것을 바쳐서 하나님 앞에 최선을 드리는 섬김과 헌신의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해 달라고 소리쳤습니다. 더욱이 유월절이면 한사람씩 특사로 풀어주는 관례가 있었는데, 민란을 일으켜서 자신들의 동족을 죽이고 결박당한 바라바라고 하는 이 끔찍한 죄수는 살려달라고 요구를 했고, 생명을 주기 위해서 자신들에게 오셔서 온갖 섬김을 다해주셨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며 빌라도를 위협하였던 것입니다. 어느 날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에게는 탐욕이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분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죄 가운데서 유리하고 방황하는 영혼을 위해서 자신을 주시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성령을 한없이 받으셨고, 진리의 말씀 자체이셨기 때문에 그분이 입을 열고 진리를 가르쳤을 때 백성들은 전율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두 가지 때문이었는데, 선명한 하나님의 진리와 그 안에 역사하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 때문에 이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 종교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하나님께 인도한다는 미명하에 그들을 착취하고 그들을 타고 다니는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였고 버림 받아 불쌍한 인간들의 이웃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분 곁에는 스스로 의롭다고 믿는 사람들보다 하나님 이외에는 의지할 데가 없다고 생각하는 불쌍하고 상처받은 영혼들로 가득 찼습니다. 사랑으로 돌보셨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예수께로 옮아가기 시작했고 그분에게로부터 진리를 배우며 은혜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궁금한 것은 왜 이 백성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고 마지막에 ‘이 무죄한 자의 피를 나는 당치 않겠노라’하고 빌라도가 세수 대야에 손을 씻으니까 ‘그 피를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돌리십시오. 우리가 책임지겠습니다.’라는 저주를 담보로 하면서까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겠다고 외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너무 이해가 안 되지 않습니까? 유대인들 중에 예수님에게 상처 받은 사람이 있었을지 모른지만, 유대인 중에 예수님에게 상처 받은 사람이 있었을까요? 무엇 때문에 백성들이 원한에 사무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해 달라고 외쳤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 실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슨 실망이었을까요? 이 날이 금요일이었습니다. 정확하게 그 일이 있기 5일 전 주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셨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뛰어나와서 예수님을 환영했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이 겉옷은 존귀의 상징입니다. 겉옷을 벗어서 양탄자처럼 길바닥에 깔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다윗의 자손을 외쳤습니다. 그렇게 열렬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환영했는지 성경은 온 성이 소동하였다고 했습니다. 수많은 백성들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 후 4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하던 이 유대인들이 지금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해 달라고 소리치게 되었을까요? 성경에 보면 종교지도자들이 시기할 정도로 백성들이 예수님을 환영했다고 되어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교회가 나라였고 나라가 교회였습니다. 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개 같은 이방의 나라 로마에게 점령되어 힘이 없어 식민지가 되어 나라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들의 꿈은 메시야가 오셔서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로마를 때려 부수고 사람들과는 견줄 수 없는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이 세상을 통치해 모든 나라가 무릎을 꿇고 이스라엘에게 와서 머리를 숙이고 조공을 바치는 다윗 왕국의 회복을 꿈꾼 것입니다. 그 기대가 한껏 고조된 최고의 정점이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며칠 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4일 동안 보여준 예수님의 행적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로마와 더불어 싸울 놀라운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분명히 자신들의 눈으로 놀라운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보았는데 바로 그 기적을 행하여 로마를 쓸어버려야 할 그 순간에는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예수님께 거는 기대와 예수님이 보여주는 모습이 엇박자가 나는 것입니다. 원수들을 짓밟고 때려 눕혀 하나님의 큰 물질과 번영의 복을 받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나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실망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소리치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마음 안에서 먼저 일어납니다. 마음 안에 일어나는 가장 위험한 일은 구원받은 것이 하찮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구원이 일상적인 것처럼 생각될 때 자신의 모든 삶은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경험할 때는 나를 향한 기도가 별로 없습니다. 은혜가 마음에 깊이 밀려올 때 ‘하나님 나는 기도제목이 없습니다. 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마음을 많이 쓰지 마십시오. 나는 충분합니다. 주님이 내 마음에 계시시므로 저는 더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주님을 깊이 만나고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현재적으로 만나게 되면 욕망을 버리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십시오. 좋은 신자의 눈에는 항상 그리스도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에 대한 눈물이 있습니다. 그 가슴에는 십자가 보혈의 시냇물이 흐릅니다. 좋은 신자입니다. 한때 생애적으로 주님을 만나고 인생의 모든 것을 그분께 드리고 혹은 피나도록 그분을 섬긴 적이 있다고 할지라도 천하에 모든 것이 그분의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들의 마음입니다. 매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무슨 일을 행하셨던가? 핍박자요, 폭행자였으나 죄인들의 우두머리였으나 바로 나같이 더러운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낮고 천한 이 세상에 내려오셨구나...’ 그것이 바로 신앙이고 믿음입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볼 때마다 죄를 버리게 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바깥에서 누려보려고 하던 행복, 하나님 바깥에서 성취해보고자 했던 번영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께 대한 그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꺾인 사람들은 매순간 그분의 인도를 받습니다. 그분이 늘 우리를 이끌어주십니다. 그러나 그분을 꺾어서 나를 섬기게 하고 싶은 사람들은 주님의 인도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것이 바로 우리의 그런 불순종을 버리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고난의 주간에 주님께 드릴 최고의 선물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제사장이면서도 스스로 당신 자신의 몸을 제물로 하여 아버지 앞에 나갔을 때, 성부께서 아들을 온전히 받으셨던 것처럼 이번에는 우리들이 그 피 공로를 의지하여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구속을 받은 제사장들이 되어 우리 자신을 또한 주님 앞에 제물로 드려 그분의 십자가 고난 앞에 온전한 순종의 삶을 살고자 할 때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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