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논자가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여 진술했더라면 훨씬 훌륭한 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논자의 개인사정으로 말미암아 이처럼 글의 완성도가 떨어지게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계획과 달리 2:16과 3:19-25에만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참조 2쪽).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더 여유 있게 시간을 들여 귀한 논문으로 완성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다.
본 논문은 갈라디아서에 진술된 바울의 율법 언급 가운데 대표적으로 몇 곳을 선별해서 루터와 칼빈이 어떻게 이해했는지 다루고 있다. 본 논문에 의하면 이 두 종교개혁자의 율법관 차이는, 칼빈이 성경계시의 통일성에 준해서 말하는 반면에 루터는 율법과 복음의 대조를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것은 본 논문이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것(2쪽)이기 때문에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본 논문에서 더 밝혀진 것은 없다.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문제를 토의한 견해들을 참조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실제로 칼빈과 루터의 율법관은 이미 많은 학자들에게 주목을 받아왔다(예를 들면, D. MacLeod, "Luther and Calvin in the Place of the Law"[1974]; E. A. Dowey, "Law in Luther and Calvin"[1984]). 그러나 본 논문에서 이런 견해들은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본 논문과 관련하여 이 외에도 몇 가지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본 논문이 잘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칼빈의 갈라디아서는 분량이 매우 적기 때문에 율법관을 충분하게 서술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칼빈의 율법관을 논할 때는 갈라디아서 주석 외에도 그의 다른 저술들을 더 참조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율법에 대한 견해를 자세히 피력했다(2권 7-11장). 여러 저술들을 상호 비교했더라면 칼빈의 율법관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본 논문은 율법관과 관련하여 칼빈과 루터를 비교함으로써 종교개혁자들의 다양한 견해를 보게 해주었다는 데서 공헌이 있다. 이와 같은 논문을 통해서 현대적인 시각에서 율법관을 이해하기 전에 종교개혁시대의 견해를 접촉하여 눈이 밝아진 효과를 얻는다. 어느 시대(현대 또는 종교개혁시대)가 더 정확하게 성경을 이해하는가는 아무도 쉽게 말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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