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형익목사

메시지(message)와 메신저(messenger) 김형익목사

새벽지기1 2016. 5. 27. 06:24


메시지(message)와 메신저(messenger)


좋은 설교는 그리스도를 드러냅니다. 나쁜 설교는 설교자 자신이 청중에게 깊이 인식되게 합니다. 설교를 들은 후에 회중의 반응이 설교자 자신에 대한 매력, 칭송이나 궁금증으로 향하는지, 아니면 그 설교가 가르키는 그리스도께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향하는지는 좋은 설교와 나쁜 설교를 가르는 시금석입니다.


물론 오늘날 기독교 대중이 이 중요한 기준을 인식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쁜 설교일수록 더 많이 호응하고, 나쁜 설교자에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경우를 봅니다. 그래서 설교하는 목사들이 마치 연예인과 같은 인기몰이를 하는 기현상도 일어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전해주어서 하나님을 만나게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과는 다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로부터 오는 인기를 합당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과 칭찬을 구하는 겸손한 심령으로 자기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적습니다. 헤롯이 사람들로부터 받는 영예를 즐거이 받아 누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을 우리는(특히 목사들은) 너무 자주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행 12:23).


설교자 자신에게 이 유혹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내가 오늘 설교를 잘 해서 사람들의 심령에 선한 영향을 끼쳐야겠다는 생각이 왜 나쁘겠습니까? 이것이 나쁘지 않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고 함정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전하는 그리스도, 내가 드러내는 성 삼위 하나님의 영광이 먼저 자신에게 전해지지 않는다면 한시라도 그런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고 넘어지지 않을 길이 없습니다.


저는 자신이 설교를 잘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분만의 생각이 아니라 저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는 그 능력을 가져가셨습니다. 언변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현저하게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인생들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반면 그 설교자 자신에게 마음이 쏠리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졌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이것은 설교자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인 성도들도 조심해야 할 문제입니다. 종종 목사/설교자를 치켜세우는 상황이 있습니다. 저 역시 경험을 해본 일입니다. 목사도 사람이기에 성도들의 격려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는 조건에서입니다. 그 이상의 빈말 칭찬은 사람을 넘어지게 할 뿐입니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참된 격려는 사람을 넘어지게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것은 빈말의 아첨입니다. 성도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설교자/목사를 효력있게 격려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설교자나 성도들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메시지와 메신저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메신저는 심부름꾼입니다. 메시지의 중심인 그리스도를 전해야지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아 자기가 초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난 목요일(미국시간) 한국교회의 어른이신 방지일 목사님께서 본향으로 부름을 받아 떠나셨습니다. 1911년 생이시니 우리 나이로 104세로 귀향하셨습니다. 이분은 뭇사람들로부터 많은 존경과 칭찬을 받으신 분임에도 자신을 지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을 아셨고 자신을 겸비한 종으로 낮추셨던 분의 모범입니다. 메시지와 메신저를 구분하실 줄 아셨던 분입니다. 그분을 존경하는 한국교회가 귀향하신 목사님을 떠올리면서 이것을 깨달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