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현수:조직신학

신현수 박사의 조식신학 (27)

새벽지기1 2016. 5. 8. 07:03


하나님 형상이 회복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실현되는 공동체가 되도록 사회를 변혁시켜 가는 구체적 길은 둘째로 이 땅 사람들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실현된 공동체 삶의 원리를 따라 살도록 가르치는 선지자적 사명이다. 이 선지자적 사명에는 사회가 자유와 정의가 강같이 흐르고 모든 사람이 사람다운 품위를 갖고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모든 공동체적 노력이 포함된다. 이 선지자적 사명은 사람이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영역이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의 원리가 실현되는 것을 목표한다.


하나님 형상이 회복된 공동체가 사회에서 해야 할 선지자의 사명을 강조한 한 좋은 역사적 사례는 1934년 독일 고백교회가 나치 정권의 압제에 항거하기 위해 발표한 바르멘(Barmen)선언이다.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패배하자 경제적 위기에 빠졌다. 이 때 독일 사람들은 무엇보다 먼저 안정을 찾고자 하였다. 이러한 기대가 1933년 1월 30일 이른바 나치라고 불리는 일당 독재의 권위적인 정치 체제를 불러왔다.


국가사회주의는 기존의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독일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새로운 세계관을 강요하였다. 그것은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에 호소하여 한 사람의 정치 지도자 곧 히틀러의 뜻을 철저히 따르는 민족 공동체를 주창하였다. 이 전체주의적 사고의 목표는 새로운 피와 땅의 신앙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이 민족적 이데올로기는 기독교 교리를 대체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과 타협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었다. 특히 모든 인류는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기독교 교리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치가 독일 교회를 공개적으로 적대하는 행위는 1934년에 나타났다. 초기의 독일 교회는 국가사회주의를 단호하게 반대하였으나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태도를 바꾸었다. 가령, 1933년 4월 3일 첫 번째로 열린 국가신앙운동대회는 “독일 사람에게 교회는 기독교 나라 독일을 위해 싸워야 할 의무가 있는 신자들의 공동체이다“라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그 후 1934년 1월 복음주의 교회의 지도자들은 제3제국과 그 지도자에 무조건 충성할 것을 서약했다. 1933년 3월 28일 독일 가톨릭교회는 나치 정권을 ”새롭고 강력한“ 권위를 가진 정권이라고 환영했다. 같은 해 7월 교황은 나치와 정교협약을 맺고 이 새로운 체제를 전적으로 지지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지지는 나치가 교묘하게 위장한 계략에 속은 것이다.

 
나치 정권이 독일 교회를 적대하는 행위는 먼저 교회가 사회에 영향력을 갖지 못하게 하고 대중에게 매력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직자가 나치 정권을 반대하면 그것은 정치적인 행위로 단정하고 경찰이 그를 감시하거나 억압하였다. 또한 평신도가 조직 활동을 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조직 활동이 정치적 선동이나 전체주의 주장들을 반대하는데 이용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치 정권은 성직자와 일반 사람들이 서로 접촉하지 못하게 쐐기를 박았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교회 건물 바깥에서 하는 어떠한 공적 활동도 허용되지 않았다. 성직자들이 활동하는 것도 “정치는 교회에 속하지 않는다“는 기치아래 감시를 받았다. 한 걸음 나아가, 1934년 이후로 나치 정권은 교회를 완전히 복속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획책은 다음 세 가지 방침에서 시행되었다.


첫째, 행정적 통제를 통해 개신교와 가톨릭교회를 정부의 권위아래에 두고자 하였다.
둘째, 모든 국민의 마음과 정신을 사로잡는 새로운 종교의식을 확립함으로써 기독교가 갖는 기존의 영향력을 대체하고자 하는 이념적 투쟁이다.
셋째, 테러와 위협이다. 비밀경찰이 제정하는 각종 규제와 금령을 통해 교회가 점차 영향력을 잃어버린 잔류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계속>

출처j...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