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기도할 때가 있다.
1. 하나님께서는 아모스에게 세 가지 환상을 보여주신다(1~9). 첫째는 메뚜기 떼가 막 움이 돋기 시작한 풀을 다 먹어버리는 환상이다(1~3). 아모스 선지자는 즉각적으로 이런 일이 이스라엘에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2).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켜 이것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선지자에게 응답하셨다(3). 두번째는 불이 큰 바다(아마도 지중해)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고 하는 환상이었다(4~6). 선지자는 다시 똑같은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일어나지 않게 하시겠다고 뜻을 돌이키셨다(5~6). 여기서 나오는 메뚜기 떼와 불은 다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들이다. 여기서 선지자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를 생각해보라.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이 기도는 아모스 선지자가 이스라엘을 보는 시각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야곱)은 ‘미약’하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신은 스스로를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를 ‘마음이 든든하고’ 열국 보다 우월한 자들로 여겼다(6:1). 시각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 아모스와 같은 시각을 가진 사람들만이 진정으로 그 사회와 나라와 시대를 품고 기도할 수 있다.
2. 세번째 환상은 다림줄 환상이다(7~9). 하나님께서 다림줄을 손에 잡고 쌓은 담 곁에 서 계셨다. 다림줄은 건축물이 수직으로 제대로 세워졌는지를 측량하는 도구이다. 만일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다면 건축자는 쌓은 담을 다 허물고 다시 세워야 한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번에는 기도하지 않았다. 아니, 기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가지고 계신 다림줄 옆에 분명히 비뚤어진 건축물인 이스라엘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칼이 여로보암의 집 이스라엘을 치실 것을 선언하셨다(9). 기도의 때가 있다. 주님 앞에 서지 못한 사람, 주님 앞에 서지 못한 교회, 주님 앞에 서지 못한 나라와 민족들을 품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는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통해서 심판을 거두시고 은혜를 주신다. 그러나 그것은 다림줄을 드리우시는 때까지만이다. 오늘도 우리는 이 기도로 부르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기도할 때가 있다.
3. 아모스 선지자가 선포한 이 마지막 메시지는 이스라엘의 대제사장 격이었을 아마샤의 마음을 분개하게 만들었다. 그는 즉각 여로보암 2세에게 편지를 보내 아모스가 왕을 모반한다고 전했다(10a). 아마샤는 아모스 선지자의 말을 견딜 수가 없었다(10b). 물론 자기 자신보다는 ‘이 땅’이 견딜 수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아마샤는 선지자 아모스에게 가서 말한다. “네 고향 유대 땅으로 돌아가라. 거기서나 떡을 먹으면서 예언해라. 여기 벧엘에서는 하지 마라(12~13).” 이 말 속에는 가시가 많다. 아모스는 본래 남왕국 유다 사람이었다. 그는 지금 마치 선교사처럼 북왕국 이스라엘에 와서 북왕국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다. 그가 받았을 대접은 뻔했다. 그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에 대제사장 아마샤는 국가의 녹을 먹는 소위 ‘벧엘의 제사장’이었다. 그래서 아마샤는 아모스 선지자에게 고향에 내려가서 밥이나 잘 먹으면서 예언하라고 했을지 모른다.
아모스 선지자의 대답을 보라(14~17). 그는 자신의 신분을 먼저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는 직업적 선지자가 아니다. 요즘 말로 하면 안수 받은 목사가 아니다. 그는 선지자들을 따라다니면서 교육받은 경험도 없다. 그는 신학교를 다닌 경험도 없다. 그는 단지 세속적 직업인 목자로서 살았었고 또 그것으로 수입이 모자랐기 때문인지 아니면 더 많은 수입을 위해서였는지 뽕나무를 재배하기도 했다. 그렇게 사는 그를 부르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고 하셨다(15). 그런데 지금 아마샤는 예언하지 말라고 한다. 선지자 아모스는 지금 ‘아마샤야, 네가 지금 거스르고 있는 대상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임을 아느냐?’고 도전하는 것이다. 아모스 선지자는 아마샤가 이 말과 태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그 아내가 창녀가 되고 자녀들은 칼에 죽을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도 다 포로로 붙잡혀 가게 될 것이라는 무서운 선언을 전한다.
4. 기도할 때가 있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성취될 때, 심판이 임할 때에는 더 이상 기도할 수 없다. 지금이 바로 우리가 연약한 자들, 연약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때다. 아마샤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견딜 수 없어 하는 일은 복음이 신실하게 전해지는 곳에서는 일어나는 일이다. 말씀 때문에 견딜 수 없는 때는 사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시간이다. 그러나 아마샤는 그 은혜를 거절했다. 말씀을 전하지 말라고 아모스 선지자를 몰아붙였다. 중요한 것은 그런 때에 우리가 취하는 태도다. 말씀으로 인하여 괴로움이 오는 것은 축복이다. 그 괴로움을 피해버리는 것은 저주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의 종인 목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말라는 혹은 그런 식으로 전하지 말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이런 일은 일어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가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가 하는 것이다.
5.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관점으로 이 시대와 교회와 사회를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시대를 품고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이 저희에게 괴로움이 되게 하시고 그 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주님께 더욱 깊이 나아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