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짧은 단어인 ‘아멘’이라는 말의 성경 속에서의 용례에 관한 내 짧은 연구의 동기는 우리 교회들의 예전(liturgy) 변화에 관한 진행되고 있는 토론 때문이다. 최근 베르켈 총회(Synod at Berkel)에서 있었던 토론의 결과로 이 문제는 또한 카트윅(Katwijk) 지역과 발켄부르그(Valkenburg) 지역 회중들에게 논의의 필요성이 있게 되었다. 나는 이 연구에 앞서서 여기 소개된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었다는 점을 고백해야겠다. 또한 나는 이 짧은 글이 반드시 이 문제에 대한 마지막 논의가 아닐 것이라는 사실을 덧붙여야겠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내가 이 문제에 대한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고 믿는다.
‘아멘’의 의미
‘아멘’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부터 왔는데, 다양한 동사형을 가지고 있다: 지지하다(to support), 충성하다(to be loyal), 확신하다(to be certain), 믿음을 나타내다(to place faith in). 같은 의미로 ‘아멘’은 보통 ‘진실로’(truly)로 번역된다.1)
이 단어가 (헬라어) 신약성경에서는 일반적으로 번역되지 않은 채로 나타난다는 것은 주목해 볼 일이다. 헬라어를 말하던 그리스도 이후의 첫 세기의 교회들은 그들이 쉽게 번역할 수 없었던 히브리어 단어들과 맞닥뜨리곤 했다. 물론 ‘아멘’이라는 단어는 분명 새 교회가 단어의 원래 모양을 그대로 사용했던 유일한 히브리어 단어는 아니었다. ‘아바’(=father)라는 단어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비록 이 단어는 언제나 번역이 곧 뒤따르는 방식으로 사용되었지만(막14:36;롬8:15;갈4:6). ‘아멘’이란 단어에 있어서는 이것이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누가는 종종 이 짧은 단어가 주 예수님께 사용될 때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이를 번역한다; 말하자면, 문장의 첫 부분에서 그의 말씀들을 강조하기 위해서 등이다. 그리고 누가는 때때로 그 번역을 사용한다. ‘진실로(truly)’ 혹은 ‘참으로(verily)’ 등(눅4:25;9:27;12:44;21:3). 더 나아가 계시록 1:7과 고후1:20, 그리고 아마도 눅12:5에서 ‘아멘’은 ‘예스(yes)’(=even so : 정확히 그러하다)로 번역되었다. 셉투아진트(주 예수님의 시대에 통용되던 구약의 헬라어 번역본)에서는 외경을 제외하고는 ‘아멘’이라는 단어가 번역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곳은 단지 세 곳 뿐이다(대하16:36;느5:13;8:6)2)
이 단어는 한번 ‘진실로(truly)’로 번역되었고 다른 모든 곳에서는 ‘그렇게 되기를(may it be so)’로 번역되었다.3) 헬라어의 매우 문자적인 번역인 아퀼라본(주후 2세기)은 언제나 ‘아멘’을 ‘진실로(truly)’로 번역한다.4)
‘그렇게 되기를(may it be so)’이라는 번역은 구약성경 자체에서 지지를 얻고 있다. ‘아멘’이 사용된 곳에는 ‘주께서 이같이 하옵소서(may the Lord do so)’ 라는 말이 뒤따르고 있기 때문이다(왕상1:36;렘28:6)
‘아멘’의 의미에 대한 이러한 지시들 뿐 아니라 또한 우리는 이 단어의 용례도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단어가 사용된 본문은 그 의미를 결정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서의 사용
구약성경에서 우리를 놀라게 하는 첫 번째 사실은 “아멘”이라는 말의 제한된 사용이다. 이 말은 단지 30회만 사용되었는데, 다섯 번은 복수 단어로(double word) 사용되었기 때문에 실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스물 다섯번 뿐이다. 이 단어의 사용은 네 표제로 묶을 수 있는데 앞의 두 표제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1. 저주 표현에 대한 수납으로서(16회)
제사장들(또는 다른 공식적인 사자)이 하나님의 편에서 저주문구(curse-formula)를 발할 시에 수신자(들)이 그에 대한 결과를 승복할 때 “아멘”이라는 말이 동반된다. 민5:22;신27:15-26;느5:13;렘11:5를 보라
2. 하나님께 대한 찬양의 표현에 대한 동의로서(10회)
“아멘”은 또한 ‘바룩(찬양하다)’이라는 문구 다음에 그 문구를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 의해서 사용되기도 하였다(시106:48;대상16:36;느8:6). 이 찬양문구의 형태는 표준 구조를 가지고 있고, 언제나 바룩이라는 단어와 함께 시작된다: “축복하라/찬양하라”로 번역된다.
3. 예언이나, 다른 사람에 의해 공표된 내용에 대한 동의로서(2회)
렘28:6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냐의 (거짓)예언에 대해 (빈정거리는 투로) 동의를 표할 때 그 단어를 사용한다: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왕상1:36에서 브나야는 솔로몬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을 것이라는 다윗의 공표에 대해 동의를 표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멘! 내 주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오며.” 이 두 본문 모두에서 아멘이라는 단어의 해석은 우리가 예외적인 상황을 다루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4. 하나님의 독특성으로서
사65:16에서 히브리어 본문은 “아멘의 하나님(the God of (the) Amen)”이라는 말을 두 번 사용한다. 어떤 이들은 이 말이 해석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 본문을 “진리의 하나님(the God of turth)”으로 고쳐서 사용한다.5)
동일하게 중요한 것으로서 우리가 “아멘”이라는 단어를 찾는 본문에서는 그 단어가 오히려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가지 점이 주목할 만하다. 첫째, 비록 “아멘”이라는 말이 자주 저주문구를 수납하는 데에 중요하게 사용되었지만, 이 말은 결코 축복을 수납하는 데는 사용되지 않았다! 둘째 “아멘”은 결코 기도를 맺기 위해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신약성경에서의 사용
전술했던 번역된 경우를 별개로 하고 “아멘”이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131회 사용되었다(네슬/알란트 27판에 대한 통계: 신약성경의 여러 헬라어본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 중 하나-역자주). 그러나 이 숫자는 신뢰하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103번이라는 횟수는 대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스스로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사용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주 이 단어로 문장을 시작하시거나 자신이 말씀하신 것에 대한 강조를 둘 때 이 말을 사용하신다(예를 들면 마7:28-29).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아멘”이라는 단어의 구문적인 사용법에 대한 연구에서는 예수님의 화법에 대한 부분까지 다 다룰 수는 없다.6)
앞에서 이 단어가 28번 사용되었다고 한 내용을 따라서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사용했던 것과 같은 카테고리를 적용해 볼 수 있다. 이는 다음과 같다.
1. 저주 표현에 대한 수납으로서
신약성경에는 저주 문구에 대한 수납의 예가 없다. 이 항목은 따라서 적절하지 않다.
2. 하나님께 대한 찬양의 표현에 대한 동의로서(22회)
찬양의 진술은(때때로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닌 것으로서, 구약 성경에서 사용한 것과 동일한 어형으로) 자주 그것을 듣는 사람들(고전14:16;고후1:20;계5:14;7:12;19:4) 뿐 아니라 표현하는 사람에 의해 “아멘”으로 끝난다(롬1:25;9:5;11:36;벧전4:11;5:11;벧후3:18;유1:25;계1:6;7:12). 이미 인용된 본문들에 더해서 마6:13을 포함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본들에 따르면 찬양의 표현(“아멘”이 따르는)들이 주님의 기도를 끝맺는다.
3. 예언이나, 다른 사람에 의해 공표된 내용에 대한 동의로서(2회)
계1:7과 22:20에서 우리는 예언/공표(announcement)가 아멘으로 끝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본문에서 아멘은 공포자 자신인 요한에 의해 표현되고 있다. 두 번째 본문에서 요한은 아멘을 주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사용한다. 계1:7에서 “아멘”이란느 단어는 “예스(yes)”라는 번역이 부가되어 사용되었다. 계22:20에서 요한은 그가 동의하는 내용에 대해 말씀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처럼 여기에서도 역시 이는 “아멘”이라는 단어의 일상용례 이상의 것을 말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4. 하나님의 독특성으로서
위에서 논의했던 이사야 본문에서는 “아멘(the Amen)”이 예수 그리스도의 표제로 사용된(아멘이신 그리스도-역자주) 곳인 계3:14와 같은 방식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부가하여 본 항목에서는 두 가지를 더 더할 수 있다.
5. 축복문구에 대한 확증으로서
축복문구(인사말)는 종종 축복을 전하는 사람에 의해 “아멘”으로 끝나는 것으로 확립되었다(cf. 롬15:33;갈6:18). 많은 사본들 역시 다음의 본문들에 “아멘”을 더하고 있다: 롬16:24;고전16:24;고후13:14;빌4:23;골4:18;살전5:28;살후3:18;딤후4:22;딛3:15;몬1:25;히13:25;벧전5:14;계22:21).
이들 본문들이 모두 편지의 말미에(혹은 끝이 다되어서) 있다는 사실로 인해 그것들이 전술했던 카테고리와 별개의 것이냐는 것을 결정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 어려움은 편지의 서두에서 축복(예를 들면 롬1:7;고전1:3 등)이 결코 “아멘”으로 끝나는 적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 심각해진다!
6. 결론으로서
이전 항목에서 본 바와 같이 “아멘”이라는 말은 결론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요한의 첫 두 편지의 많은 사본들에서도 역시 그렇게 사용되었다(전술한 찬양과 축복의 말들 없이). 이런 예는 막16:9와 같이 짧게 끝나는 복음서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아멘이라는 단어의 이러한 사용은 초대기독교회에서 빈번한 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아멘”은 이야기나 편지의 끝을 알리는 역할을 한 것이다.
결 론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아멘”이라는 단어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듣는 이에게 그러할 뿐 아니라 말하는 이에게서도 그러한 것이다.
“아멘”이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결코 스스로에게 축복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사용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7) 모든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신약성경 시대에 축복문구 뒤에 공식적인 표현으로서 “아멘”이 있었다는 증거는 불충분하다. 따라서 바울의 서신들에서의 “아멘”과 관련된 이론은 적합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이러한 주장이 불손하며 온당치 않은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만약 어떤 사람이 너무 친절해서 나에 대해 좋은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아멘, 그것은 진실이며 확실합니다!”라고 반응을 보였다면 그것은 매우 건방진 태도인 것이다. 이는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는 데에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실례로 점점 더 대중화 되어가고 있는 것으로서, 예배시간의 끝에 축복(blessing: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축도’이다-역자주) 후에 전 회중이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절되어야만 한다. 만약 “아멘”이 축복 이후에 말해져야 한다면 그것은 목사/장로에 의해서 위의 카테고리 5에서의 예에서 본 것처럼 일종의 결론으로서 행해져야 한다.
동일하게 주목할만한 사실은 “아멘”이 성경에서는 어떠한 기도의 결론으로서도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기도에서 “아멘”은 기도를 결론짓는 찬양의 표현임에 틀림없다. 나는 기도의 결론으로서 “아멘”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된 것이 어느 세기부터인지 알지 못한다.8) 우리에게 있어 그것은 우리가 기도할 때 눈을 감는 것과 같은 실제적인 유익이 있다. 성경 시대의 사람들은 기도할 때 팔을 뻗은 채로 하늘을 향해 그들의 눈을 들고 기도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기도가 끝났을 때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람들이 기도할 때 언제부터 눈을 감기 시작했는지 알아내기는 힘들다.
초대 기독교회때는 대부분의 기도가 “아멘”을 동반한 찬양의 표현으로 마쳐졌다(주님의 기도가 그 예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도 가능한 좋은 아이디어이다.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찬양의 표현으로서 우리의 기도를 끝맺는 것은 적절할 것이다. “아멘”으로서 맺는 것은 동일하게 부요한 의미를 받게 한다.
또한 나는 우리 예전에 관하여 몇 가지 주목할 점을 말하고자 한다. 만약에 우리를 향한 축복 이후에 “아멘”을 말한다면 그것은 부적절한 것이다. 또한 예배의 부름(votum) 이후에 “아멘”이라고 하는 것 역시 그러하다. 예배의 부름(‘우리의 도움은 야웨의 이름에 있도다....’)은 목사나 장로가 회중의 편에서 표현하는 것이다. 회중은 그의 선하심과 은혜가 우리의 도움이 되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 회중이 예배부름을 소리내어 말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예배의 초반에 인사(greeting) 이후에 나타나는 “아멘”의 표현 역시 지지하는 성경적 예는 없다. 그것이 나타날 때는 5번 항목에서 말한 내용의 결론으로서이다. 확실히, 회중에 의해 표현되는 것은 안된다. 그 인사는 회중 자신을 위해 의도된 축복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예전에서는 주님을 찬양하는 표현을 위한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는 우리가 우리의 예배 속에서 주님을 찬양하는 표현을 발견하지 못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시편찬송이나 기도등을 생각해 보라). 단지 예전에서 할당된 부분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예수님 시대 어귀의 회당예배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그러한 찬양의 표현으로 시작했다. 이러한 기독교적 형식으로서의 찬양문구의 사용은 그들의 편지에서 이런 식으로 종종 시작했던 사도들에게서 가져온 것이다(cf. 고후1:3-5;엡1:3-14;벧전1:3-5). 가장 잘 알려진 신약성경의 바룩(찬양하다) 문구는 아마도 소위 스가랴의 노래(눅1:68-75)의 첫 절반부일 것이다.9)
나는 예전 담당자들에게 찬양 문구(가능하다면 전술한 본문들로부터)가 인사 이후에 따라 나오도록 제안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사도들에 의해 사용되었고, 시편에 자주 언급된 유대 회당 예전의 한 부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예를 들면 시72:18-18; 144:1-2 등). 만약에 이 요소가 예전 속에서 빠진 채로 유지된다면, 찬양의 표현과 함께 설교를 마치게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전 회중이 그와 같은 찬양의 표현으로서 자신들의 “아멘”으로 예배를 마치는 것은 매우 적절할 것이다. 위에 나열된 본문들은 신약에서 뿐만 아니라 구약에서도 전 회중이 공적으로 그들의 “아멘”을 표현하는 데에 보편적인 것들이었다.
각 주
1) 나는 같은 어근으로부터 파생된 다른 단어들의 용례가 단어의 의미를 밝혀주는데 필수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는 점을 주목해주기 바란다. 이러한 관점에 관하여는 J. Barr, Semantics of Biblical Language [OUP, 1961] 100-106. 를 보라
2) 정확히 하자면 “아멘”이라는 단어가 외경들에서는 번역되지 않은 채 6회 사용되었다.
3) 각각 ‘알레뚜스’(렘35:6, MT 28:6)와 ‘게노이토’
4) ‘페피스투메누스’
5) 제시된 교정은 단지 오리지널 본문에는 없었던 모음(원 히브리어 본문에는 모음이 없음-역자주)을 설정할 때만 가능하다. “ameen” 대신 “omen”으로 읽는 것이 주장되었다. 사25:1에서 그 단어 omen(“truth”)이 사용되었지만 그것은 하팍스(이는 성경에서 딱 한번만 사용된 단어를 말함)이다. 게다가 셉투아진트와 아퀼라 모두 사25장에서 omen 대신에 ameen으로 읽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만 한다.
6) 불행히도 이 “아멘”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대부분의 성경번역에서 위장되어 있다. 심지어 우리에게는 “아멘, 아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여기 아멘은 한글성경에서는 ‘진실로 진실로’ 로 번역되어 있다-역자주) 라는 말은 이상하게 들린다. 우리는 복음서의 헬라 독자들에게조차 낯설게 들렸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비록 이 비일상적인 표현이 오직 주 예수님에게서만 사용되었다 하더라도, 예수께서 비유를 말씀하시는 중에 다른 이들의 입에도 그 말을 넣으려 하셨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은 흥미롭다(예를 들어 마25:12를 보라).
7) “아멘”이 사용된 본문들(롬15:33;16:24;갈6:18등)에서 바울은 이 “아멘”을 말한 회중들을 생각하고 있다는 주장들이 때때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편지에서 어떠한 방법으로도 결코 이를 가리키고 있지 않다. 이것은 가설일 뿐이다. 이 가설을 가능하게 만들려면 먼저, 축복이 주어진 후에 “아멘”이 공동적으로 말해졌어야만 한다는 확립된 실례의 존재를 설명해야만 한다. 그것은 쉽지 않다. 우리가 첫 세기에 관하여 가지고 있는 유일한 정보는 고린도전서뿐이다. 14:16은 찬양문구(주를 축복하다/찬양하다...) 이후에 공동적 “아멘”이 말해진 예로서 우리가 알고 있는 본문이다. AD2세기로부터(적어도 로마시대에는 그러했다. 하지만 또한 Dionys.Alex. in Eus. HE. 7.9.4도 보라) 우리는 주의 만찬예식(Just. 1 Apol. 65.3)에서 감사 기도의 끝에 찬양문구 후에 공동적 “아멘”이 말해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예배 중의 “아멘”과 관련된 이 세기로부터의 아무런 정보도 갖고 있지 않다. 축복문구 뒤에 공동적 “아멘”을 말하는 실례는 AD2세기 중엽 경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큰 회당의 예배에서 나타난다(Tosefta, Sukka 4.6). 훨씬 뒤의 자료인 바빌로니안 탈무드(AD8세기)로부터 우리는 “아멘”이 아론적 축복의 세 부분들의 각각 이후에 공동적으로 말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Sota 39b - AD3세기 경의 유대인들은 미쉬나로부터 추론된 것으로 보이는 축복문구 뒤에 “아멘”을 말하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어떠한 반대도 느끼지 않았다, Sota 7.5). BC 3세기 경에 설립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사해 근처의 쿰란 지역에 있었던 작은 금욕적 유대 공동체에서는 또한 공동적 “아멘”을 말한 예가 존재했다. “아멘”과 같은 말은 그들의 언약 의식에서 축복과 저주 후에 말해졌다. 그것은 신명기 27장의 모델에서 따온 것이다(1QS 1.16ff). 이 “아멘”이 단지 예식의 끝에만 말해진 것인지(축복 뒤에 나오는 저주의 이후에) 혹은 축복의 선언 후에도 곧바로 말해진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8)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최초의 예는 사도적 책인 토빗8:8에서이다.
9) 유대적 실제를 위해서는 미쉬나에 관한 Berakoth의 논문을 보라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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