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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월터 마샬, "성화의 신비" 7장 구원을 위해 인간이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8장 복음이 이끄는 거룩

새벽지기1 2015. 12. 22. 08:17

 

일곱 번째 원리

구원을 위해 인간이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자신의 행위를 구원의 근거로 삼으려고 한다!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고 하지는 않아도,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그분이 주시는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스스로 준비하는 일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즉시 그리스도께 나오려고 하지 않는 이유가 아직 그리스도께로 나올 준비가 안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논박하기 위해 다음 사실들을 생각해 보자.


첫째, 이런 오류는 앞 장에서 살펴본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얻기 위한 조건으로 거룩을 생각하는 것이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한 자격 조건으로 거룩을 생각하는 것이나 다 같은 말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거룩을 이룰 능력이 전혀 없다. 왜 그런가?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제와 상관없이 거룩한 삶을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기억하자. 오직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만 거룩한 삶을 살 능력을 받는다. 거룩하게 살고 싶다면 먼저 그분과 연합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을 받기 전에 먼저 죄악된 마음을 거룩하게 바꾸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악한 죄인이 즉시 구원으로 나아오기를 바라시지, 준비를 하고 난 후에 나아오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예를 들어 빌립보 간수(행16:30-33)에게 바울은 즉시 주 예수를 믿으라고 했지 먼저 마음을 준비하라고 하지 않았다. 또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그리스도께로 돌이켜 교회의 일원이 되었던 3천명의 유대인들에게 시간을 갖고 준비하라고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만 했다! 예수님은 병든 자를 위한 의사로 오셨다. 자기에게 나아오기 전에 먼저 건강해지라고 하지 않으신다(마9:12).


예수님은 가장 혐오스럽고 부패한 죄악 가운데 있는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예수님은 피로 값 주고 사신 구원을 얻기 위해 우리가 그분께로 갈 때 우리를 받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타락한 죄인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정의와 거룩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분을 영접하기 전에 스스로를 의롭고 거룩하게 하려고 함으로써 그분의 은혜와 긍휼의 풍성함을 멸시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에 대한 모욕이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의로움과 거룩함을 받기 전에 스스로를 개선하려고 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정의와 거룩하심을 부정하는 것이다.


셋째, 진실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입을 예복이 없을 수가 없다. 죄인들이 가져올 예복으로 믿음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그러나 믿음 자체가 혼인예복은 아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흰옷을 받아 입고 벌거벗은 수치를 가린다(계3:18). 믿음이 있는 사람은 거룩을 사랑하고 열망한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께로 나아오기 전에 새롭고 거룩한 본성을 얻으려고 거룩한 일을 하지 않는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께 용납되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의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로 옷 입고,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과 경건에 관한 모든 것을 취한다.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기 위해 알아야 할 몇 가지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믿음의 열매요 결과라는 것을 먼저 밝혀 두고 싶다.

첫째, 회개는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기 전에 먼저 회개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3). 또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는 말씀에서도 회개를 믿음보다 앞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추구해야 할 목표로서 회개를 먼저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회개에 이르는 수단으로 믿음을 말씀하셨다. 그렇다. 믿음과 회개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은 회개할 수 없다! 그렇다면 회개가 무엇인가? 회개는 마음으로부터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가 그분을 섬기는 것이다. 믿음 말고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길이 어디 있는가? 하나님께로 바르게 돌이키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으로 그리스도께로 나아와야 하기 때문에, 믿음이 회개보다 먼저 올 수밖에 없다. 믿음은 회개에 이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주시는 도구다. 그러면 어떻게 죄인이 회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답이다. 회개에 이르는 참된 길은 복음을 믿음으로 열린다.


둘째, 우리가 알다시피,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요3:3). 그렇다면 중생이란 무엇인가? 중생은 새로운 출생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고전4:15, 엡2:10).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는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본성과는 전혀 다른 신의 성품에 참여한다. 믿음은 신자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는 은혜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신자 안에,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 산다. 그러므로 믿음은 중생을 통해 신자가 누리는 첫 번째 은혜다. 바로 이 믿음을 통해 다른 모든 은혜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진실로 믿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다. 하지만 거듭나기 전까지는 진실로 믿을 수 없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만이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하나님의 자녀들이다(요1:12-13).


셋째,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분의 주되심에 진지하게 굴복하고, 그분의 율법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요 율법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리스도는 그분의 왕 되심과 통치에 복종하는 사람들만 구원하신다. 그러나 먼저 예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지 못하면, 어떤 거룩한 포기나 진지한 순종의 결심도 있을 수 없다. 먼저 구원을 받아야 한다.


넷째, 그리스도를 믿고 죄 용서를 받기 전에도 어느 정도의 선행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천부께서도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또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기도를 가르쳐 주신다(마6:12, 15). 다른 사람에게 부당하게 이득을 취한 것이 있으면 속죄제로 희생을 드리기 전에 그것을 먼저 배상하고 관계를 회복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레6:5-7).


위와 같은 반론에는 이렇게 답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자신이 가진 것으로 피해를 배상하라고 하신 것은 죄 용서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바른 기도를 드리고, 죄사함의 은총을 기리는 성례를 위해서도 아주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죄사함과 구원을 믿기 전에 선행을 하려는 사람은 비굴하고 위선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중심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싶은 사람은, 먼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한다. 그 사랑을 깨달아야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용서하심과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엡4:32). 삭개오가 자신의 잘못을 배상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가 기쁨으로 그리스도를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을 때, 그의 중심에 이미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최초로 가질 수 있는 거룩하고 바른 생각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다. 이런 생각은 오직 믿음의 은혜를 통해서만 가질 수 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생각하게 된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모든 좋은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이뿐 아니라 불평과 불경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하나님을 의롭고 긍휼이 많으신 분으로 알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도 알린다.


죄 때문에 겸손해지는 것은 믿음의 한 부분이기도 하고, 믿음의 열매이기도 하다. 믿음이 생기면 자기가 지은 죄를 아파하게 된다. “그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좋지 못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을 말미암아 스스로 밉게 보리라”(겔36:31). 또한 자기 의를 기꺼이 부정하고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배설물로 여긴다(빌3:7-8). 거지는 더 좋은 옷이 생기기 전까지는 자기가 가진 누더기를 애지중지하는 법이다.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된 사람은 기댈 데가 있기 전까지는 목발을 놓지 않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이 장 전체가 말하는 원리로 돌아가 보자.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묻거나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물어 오는 사람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모든 일 중에 으뜸인 믿음을 가지라는 것뿐이다. 훌륭한 자격과 자질을 바라기 전에 먼저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6:28-29).


여덟 번째 원리

복음이 이끄는 거룩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살펴보고 있다. 이 장에서는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반드시 숙고해야 할 점 세 가지를 제시해 보겠다.


첫째, 구원의 신비에 있어서 거룩한 삶이 자리하는 위치가 어딘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에 따라 거룩을 추구한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신자들로 하나님의 도덕법을 준행할 수 있게 하시는지 요약하면, 하나님은 나무에 붙은 가지처럼 믿음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셔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요15:4-5). 먼저 칭의를 통해 사망의 일에서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셔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하신다(히9:14). 우리를 성령 안에서 살리시고, 성령 안에서 살아가게 하신다(갈5:25). 이것이 바로 복음이 정한 질서다.


복음은 거룩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 질서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용서하셨다. 우리를 은혜로 받으셨고, 우리에게 양자의 영을 주셨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을 값없이 주셨다. 우리를 그만큼 깊이 사랑하신 것이다. 또한 이 사랑을 통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계명을 순종하게 하셨다. 또한 우리는 사탄의 유혹과 우리 자신의 부패함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순종할 마음을 갖게 되고 또 순종할 수 있게 된다. 복음을 통해 거룩한 삶을 향해 항해할 수 있는 바람과 조류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성령과 그분의 의로우심 없이 율법을 지켜보겠다고 나서는 것은 바람과 파도를 모두 거스르는 일이다! 죄로 더럽혀진 양심과 부패한 사망의 본성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려는 모든 시도를 좌절시키고 헛되게 할 것이다. 오, 구원의 신비에 있어서 거룩한 삶이 자리한 위치를 알 수 있기를 바란다! 먼저 복음의 은혜를 발견하고 거룩을 추구하기를 바란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작정 경건에 이르려고 애쓰다가 실패한다.


둘째, 거룩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구원에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다. 믿음을 통해 은혜로 받아 누리는 구원을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성경이 구원은 행위와 상관없이 오직 믿음으로 받는다고 가르친다고 해서 율법에 대한 순종을 도외시한다. 율법을 더 이상 준행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여긴다. 심지어 율법을 전혀 순종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자기를 여전히 구원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반율법주의의 오류에 빠진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율법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면 언제든지 율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왜 사람들은 끊임없이 율법주의 아니면 무율법주의라는 두 극단으로 빠지는 것일까? 왜 어떤 사람들은 천국을 얻기 위해 율법을 준행해야 한다고 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일까? 이는 사람들이 “구원”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구원을 단순히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과 영광을 누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구원을 이 세상에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어떤 일이라고 전혀 생각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전체 구원 계획에서 선행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이런 관점이 가진 문제는 구원을 너무 축소시킨다는 데 있다. 물론 구원은 천국의 영광을 누리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더 포괄적이다. “구원”은 타락한 본성적 상태로부터의 자유는 물론, 구주이신 그리스도로부터 받아 누리는 거룩하고 복된 모든 선물-내생과 이생에서의-을 가리킨다.


“구원”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구원이 대부분 이 세상에서 누리는 은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칭의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선물인 양자됨의 특권은,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리는 구원의 모든 것을 포함한다. 거룩-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마음과 삶이 새롭게 지어져 가는 것-은 또한 이 세상에서 누리는 구원에 없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 삶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해지는 것이 거룩이다(빌1:11).


그리스도는 우리를 지옥에서 건지실 뿐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죄악된 부패함에서 건지신다(겔36:29, 딛3:5). 그리스도를 구주 예수라 부르는 것도 그 분이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기 때문이다(마1:21). 이런 구원은 칭의와 성화를 통해 이 땅에서부터 시작되고, 오는 세상에서 영화로 완성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하신 다른 일도 살펴보자. 이런 일도 다 우리 구원의 한 부분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셔서 하나님을 향해 살도록 하셨다. 타락으로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로운 형상을 우리 안에 회복하신다. 자신의 정욕과 사탄의 악한 종으로 살던 우리를 해방하셔서 하나님의 종으로 삼으셨다. 성령을 주시고, 성령을 따라 살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통해 우리 마음과 삶은 거룩해지는 권세를 갖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을 볼 때, 이 땅에서의 거룩은 구원에 절대 없어서는 안될 요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이 사실에 대해서만큼은 다시 오해가 없도록 하자. 거룩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우리의 선행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거룩은 그 자체로 목적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해 구원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엡2:10, 새번역). 선행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선행은 구원 얻는 믿음이 내는 열매와 결실이다.


구원의 한 부분으로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행위 언약의 결박에서 풀려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더 이상 구원받기 위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이 곧 우리에게 죄를 지을 자유를 주셨다는 뜻은 아니다! 거룩한 삶은 구원에 필연적인 요소다. 거룩으로 인해 우리가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되기 때문이다. 거룩이 없이는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히12:14). 진창에서 뒹구는 돼지가 왕의 궁전에 합당하지 않은 것처럼, 거룩하지 않은 삶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에 전혀 합당하지 않다.


셋째, 믿음으로 마음과 삶의 거룩을 추구해야 한다. 구원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구원에는 항상 거룩한 삶이 따른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죄를 용서받고, 영원한 심판을 면하는 것을 구원으로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거룩한 삶을 위해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참된 구원을 위해서도 그리스도를 의지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해야 한다! 이 땅에 사는 동안 거룩하고 의롭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참된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의지할 수도 없다!


구원받은 사람이 거룩한 삶을 살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 얼마나 희한한 구원인가? 이런 구원을 주려고 그리스도께서 보혈을 흘리신 것이 아니다. 구원은 원하면서 육체적인 삶을 영위하고 육체의 상태에 머물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온전하신 그리스도를 나누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구원의 한 부분만 취하고 다른 한 부분은 내팽개치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나뉠 수 없다(고전1:13). 구원은 이런 식으로 역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통해 정죄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육체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영을 따라” 산다(롬8:1-4).


참된 복음적 믿음을 가진 사람은 타는 목마름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와 생수를 마신다. 생수는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을 가리킨다(요7:37-38). 참된 복음적 믿음을 가진 사람은 구원-지옥으로부터의 구원뿐 아니라 죄로부터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거룩이란 그리스도께서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PBA
글쓴이 : 말씀을사모하는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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