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1 14

금식에 관한 논쟁(마9:14-17) / 리민수 목사

금식에 관한 논쟁(마9:14-17) 본문은 서기관들(3절)과 바리새인들(11절)에 이어 세례 요한의 제자들 역시 예수님을 비난하내용이다. 특히 그들은 금식에 관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은근히 자신들의 경건함을 과시하는 한편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매도했다. 한편 본문은 결코 예수님께서 금식의 불필요성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미 세상에 도래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성도들이 누려야 할 참 된 기쁨의 삶을 역설하신 것이다.

신앙생활에 기쁨이 있는가? / 봉민근

신앙생활에 기쁨이 있는가? 글쓴이/봉민근신앙생활에 기쁨이 있는가?기쁨이 없다면 왜 하는 것일까?억지 춘양이 노롯을 교회에서 하고 있지는 않은가?신앙생활에 기쁨이 없다는 것은 주 안에 있지 않다는 증거다.주를 알고 진리를 알면 참된 기쁨이 넘쳐난다.진정한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참된 진리를 알게 되면 그 진리로 인하여 인생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이 된다.그것이 거듭난자의 삶이다.주님이 항상 기뻐하라 하신 것은 세상적인 기쁨이 아니다.사람은 아무리 주어져도 세상의 것으로 만족하며 항상 기뻐할 수가 없다.세상이 주는 기쁨과 쾌락은 잠시뿐이요 그것이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참된 기쁨에는 참된 안식과 평안이 있다.참된 기쁨과 안식이 없다는 말은 주 안에 온전히 있지 않다는 말..

언제나 당신 편이에요

언제나 당신 편이에요예순이 넘은 내 아내는최근까지도 자꾸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가족 모임은 물론이고 친구들 부부 동반 모임에 가서도다른 사람들이랑 말은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남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곤 합니다.며느리와 사위의 표정이 이상해지고,친구들도 뭔가 잘못 먹은 얼굴로 바라보지만,그럴 때마다 난 미안해하며 물건을그들 곁으로 도로 놔줍니다.나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로써 이야기하지만가끔은 남들이 안 보는 곳에서조용히 눈물을 흘립니다.아내는 원래 늘 남을 배려하던 사람이었습니다.길을 가거나, 문을 열 때도 뒷사람을 위해 양보하고웃음도 많고, 정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그러나 초기 치매 진단을 받은 이후로는늘 산만하고, 때로는 내 것 네 것을 못 가리고만지는 증세가 생겼습니다.치매 때문에 그런 건데도저희..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시94:18-19) / 이금환 목사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시편94:18-19) 만일 우리가 낭떨어지에서 발이 미끄러져 추락하고 있다면 그냥 말하는 정도를 넘어 외마디 소리를 지르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이렇게 외마디 소리를 지를 만큼 위태위태한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마치 발이 미끄러지려고 기우뚱 거릴 때도 있고, 발이 미끄러져 쑤셔박히려고 할 때도 있고, 발이 미끄러져 낭떨어지로 떨어지려고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게 되는데, 믿음의 사람들은 이럴 때 하나님을 부르게 됩니다. 우리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숨겨 주시는 하나님은 이런 때도 우리를 붙..

성도 동원을 넘어 성도 세움으로 / 정병선 목사

우리네 일상은 참과 진실보다는 본말전도(本末顚倒)와 왜곡(歪曲)으로 덧칠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흔히 말하는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만 놓고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살기 위해 먹는 것이지요. 하지만 현실은 먹기 위해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이 공부를 하는 것도 인간과 세상의 진실을 알고, 그 진실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기 위함이라는 건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금의 공부는 최고의 생존무기인 지식과 스펙을 쌓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 되어버렸습니다. 병원 또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병원의 흑자 운영을 위해 환자에게 과다 진료를 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환자를 위해 부름 받은 의사 또한 환자 위에 군림하는 경우가..

사랑은 윤리적 결단 이전에, "위로부터 오는 능력"입니다. / 신권인 목사

주영 형제의 질문입니다. 분명,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닌것 같아요. 위에서 내려주시는 능력에 힘입지 않고는 위에서 정의한 '사랑함'에 다가서기에는 한계가 느껴져요. 바울의 '사랑'은 요한복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문답하셨던 사랑과는 결이 다른 건가요? 주영 형제 말씀을 꼭꼭 씹어서 송이 꿀보다 더 단 말씀으로 체화하려하는 그 열정을 기뻐합니다. 질문에 대한 답 글을 올려보겠습니다. 사랑은 윤리적 결단 이전에, "위로부터 오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마치 인간 내면에 잠재된 도덕적 자원인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사랑은 인간이 훈련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 성품의 완성이 아니지요. 왜냐하면 바울은 사랑을 성령의 열매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열매는 뿌리가 건강할 때, ..

사랑은 은사인가? (고전 13장) / 신권인 목사

사랑은 은사인가? (고전 13장) 영적인 세계에서 최고로 위대한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가장 높은 영적인 정상이며, 가장 넓은 영적인 지평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영적인 은혜가 지향하는 가장 높은 목표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보급되는 가장 넓은 경계이다. 마치 정상에 올라서면 끝없이 펼쳐지는 고원처럼, 사랑은 모든 은사를 조망하게 하고, 그 방향과 가치를 결정한다. 사랑은 가장 큰 양보, 가장 큰 신뢰, 가장 큰 소망, 가장 큰 인내와도 같다. 1. 사랑은 모든 은사들의 정점에 놓여 있다. 고린도전서 13장이 12장과 14장의 은사에 관한 문제를 논하는 장 사이에 끼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는 13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31에서 "내가 가장 좋은 길을 보이리라"라고 말한..

예수 사랑 / 정용섭 목사

예수 사랑 어제 묵상의 마지막 질문은 ‘예수와의 일치가 실제로 가능한가.’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질문이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그 답이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되었다는 사실보다 더 큰 비극은 없다. 십자가의 예수는 모든 버림받은 사람을 대표한다. 거기서부터 부활 생명이 시작되었다. 판넨베르크의 표현처럼 예수 십자가 이후 십자가와 같은 운명에 떨어진 어느 누구도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게 되었다. 이걸 실질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구원의 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 치고 이런 답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 답의 실체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대개는 상투적으로만 경험한다. 요한복음 21장 15절 이하에는 부활의 예수에 ..

구원 지향적 삶 / 정용섭 목사

구원 지향적 삶 지난 설교 제목은 ‘심판과 구원’이었다. 이에 해당되는 핵심 구절은 요 3:17절이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은 심판과 구원을 이원론적인 시각으로 대하게 할 염려가 있다. 어떤 이는 심판받고 어떤 이는 구원받는다고 말이다. 이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옳은 것도 아니다. 이런 표현이 애매하게 들리겠지만, 궁극적인 것은 애매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그 누구도 심판과 구원을 결정할 수 없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구원에서 배제된다고 말할 수 없다. 만약 교회 밖의 구원을 완전히 부정하면 기독교 신앙은 자체 모순에 빠진다. 예수의 복음을 들을 수 없는 조건에서 살았던 ..

거듭남 / 정용섭 목사

거듭남 예수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해서 말했다. 거듭난다는 게 눈에 보이는 건 아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으니 이해하기도 어렵고 오해의 소지도 많다. 기독교의 신흥 종파들이 ‘죄 사함과 거듭남의 비밀’을 핵심적으로 주창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통 기독교인들도 이것을 막연하게만 생각할 것이다. 이해하기 어렵거나 오해의 소지가 많은 구절은 가능한 그것 자체에 머물지 말고 전체 기독교 교리와 연관해서 생각해야 한다. 거듭난다는 말과 가장 가까운 기독교 교리는 회심이다. 예수도 회심에 대해서 여러 번 말했다. 회심은 하나님 나라와 한 묶음으로 언급된다.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심은 곧 하나님 향해서 돌아서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거듭남이다. 따라서 거듭남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