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권인목사

십자가에 농축된 복음의 진수 / 신권인 목사

새벽지기1 2026. 7. 2. 07:45

 

십자가에 농축된 복음의 진수

요한복음 3;16절 말씀은 기독교의 모든 교리와 진리를 총괄하고 포함하는 복음의 진수가 집약되고 농축된 말씀이다. 이 말씀은 기독교의 생명의 젖줄이요, 탯줄이요, 숨줄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예수 믿고 구원 얻는 일, 영생 얻는 길이 여기에 있다. 먹보다도 진한 피와 살로 기록하여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요, 계시요, 향기요, 러브스토리이다. 이 사랑은 영원하고 절대적인 불변의 사랑이다. 이 사랑은 영원한 단수(eternal singular love)이다. 

복음의 위대함은 죄의 크기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에 있다. 죄가 아무리 깊어도 하나님의 은혜는 더 깊고, 죄가 아무리 넓어도 하나님의 사랑은 더 크고, 깊고, 높아서 가히 측량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도 용서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과 생명의 범위를 가늠치 못하는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오직 예수"라는 고백, 그 독점적 해석을 넘어

"오직 예수"라는 표현은 예수 이외의 종교들을 모두 배척하라는 뜻이 아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얼마든지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어느 개인이나 단체의 전유물로만 여길 때, 어느 한 대상을 생각 없이 숭배하는 우상종교화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소중한 신앙유산이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와 공격적 선교로 나타나는, 심각한 부작용과 병폐에 대하여 깊은 우려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우상숭배의 본질은 이기주의에 있다. 자기 자신과 자기가 속한 집단을 절대시하는 것, 자기 가정, 자기 교회, 자기 혈통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이기주의가 기독교인들 중에 너무도 팽배해 있음을 보게 된다. 진리를 소유물로 여길 때, 복음은 폭력적인 선교와 무례한 기독교라는 오명에 갇히게 된다.

교회의 유한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성

'오직 예수'란 표어를 내걸고 정작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가 무엇인가? 인류의 철학과 윤리와 종교의 전량을 한마디로 압축한 말씀이 예수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14:6)이라고 할 때, 그 말씀의 강조점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또한 기독교의 유일성, 탁월성, 독특성, 구원의 확실성을 담보하는 말씀(행4:12)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십자가의 사랑으로 담아내고 녹여낸 다함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사랑과 그 놀라운 복음의 은혜를 오히려 타 종교와의 대화를 단절하고, 평화를 이루고 하나가 되려는 노력을 거부하고, 일체 종교다원주의라고 규정하는 지독한 오만과 독선을 경계해야한다. 교회는 진리를 담는 그릇일 수는 있으나, 진리 그 자체는 아니다.

십자가의 유일성과 사랑의 보편성

교회가 예수를 섬기기 때문에 교회만이 진리라는 논리로 나아가다가 오류에 빠지기 십상이다. 예수가 교회의 전유물은 아니고, 교회는 결코 예수님만큼 완전하지도 않다. 다만 이 말은 아직 역사 속에 존재하는 불완전한 유형교회(visible church), 곧 제도적 교회(Institutional church)를 지칭한다. 이러한 이해는 교회의 유한성과 그리스도의 무한성을 구별하는 정당성을 확보한다. 그분의 사랑은 인간이 만든 조직의 울타리를 넘어 온 인류와 만물 가운데 역사하는 보편적 생명력이다. 당연히 우리는 오직 예수라는 고백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그것은 기독교의 신앙의 중심이며, 구원의 유일한 길에 대한 증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 고백이 우리의 소유 의식과 결합할 때, 그 진리를 왜곡하게 된다. 오직 예수는 배타적 권력의 선언이 아니라 자기 비움과 사랑의 절대성에 대한 고백이어야 한다. 그분은 교회의 주인이시지만, 동시에 세상의 빛이시다. 이 고백 위에서만 교회는 오만을 버리고, 진정으로 복음의 향기를 세상 가운데 흘려보내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붙들어 할 것은 오직 예수라는 말 자체가 아니라, 그 말이 가리키는 십자가의 실제이다. 그 십자가는 유일하다. 그러나 그 사랑은 결코 닫혀 있지 않다. 오히려 모든 담장을 허물고, 모든 경계를 넘어, 죄인과 의인,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흘러가는 하나님의 자기 비움의 사랑이다. 그것은 진리를 독점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진리 앞에 무릎 꿇는 겸손이며, 사랑을 소유하려는 욕망이 아니라, 사랑에 사로잡히는 존재의 변화이다. 십자가는 유일하지만, 그 사랑은 모든 인류를 향해 흘러가는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사랑을 독점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 가운데 흘려보내는 공동체이다. '오직 예수'는 배타적 우월감의 구호가 아니고, 민족과 교회와 종교 집단의 전유물도 아니다. 세상을 향하여 열려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