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지혜 신앙 / 정용섭 목사

새벽지기1 2026. 2. 3. 04:55

지혜 신앙

 

어제 인용한 고전 1:22절에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다.’는 말이 나온다. 헬라인들이 볼 때 십자가에 처형당한 예수는 미련한 사람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십자가에 처형당할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청년들을 미혹한 죄, 그리고 그리스 사람들이 믿는 신을 믿지 않고 다른 신을 믿는다는 죄로 사약 형을 받아 죽었다고 한다. 그의 아내를 비롯해서 친구와 제자들도 탈옥을 권유했으나 악법도 법이라는 유명한 말로 탈옥 권유를 거부한다. 그리스인들이 지혜를 찾는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늘 진리에 목말라하는 건 아니라는 게 소크라테스 이야기에서 확인된다. 지혜는 자칫하면 아는 척하는 사람을 만들 뿐이다.

 

유대교에도 지혜 전통이 막강했다. 욥이 대재앙을 만났을 때 세 명의 친구들이 그에게 와서 충고하고 비난한다. 논리는 분명하다. 죄를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그들의 전통에 따르면 재앙은 반드시 죄를 전제한다. 이게 그들의 지혜 전통이다. 욥은 회개를 강요하는 친구들의 요청을 극구 거부한다. 그의 태도는 지혜 신앙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다. 신정론 앞에서 지혜 전통은 무기력하다.

 

신학도 일종의 지혜다. 하나님을 인간의 이성으로 해명하는 작업이니 그렇게 부를만하다. 신학 자체가 진리는 아니다. 영원한 신학도 없다. 신학은 일시적으로 하나님을 말하는 것뿐이다. 시각장애인이 코끼리를 부분적으로 만져보는 것처럼 부분적으로만 경험하고 해명할 수 있을 뿐이다. 신학의 한계는 분명하지만 신앙의 깊이로 들어가는 데에 그것 외에 더 바람직한 길이 없기에 우리는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