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무소유 (5)(막 6:8,9)

새벽지기1 2022. 11. 30. 06:41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막 6:8,9)

우리 기독교인들은 소유에 집착하지 말하는 주님의 명령과 여전히 소유지향적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기독교인들은 두 가지 극단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한쪽은 철저한 금욕, 더 나아가서 자학입니다. 몸에 관한 모든 것을 부정하는 삶이 그것입니다. 그런 전통은 뿌리가 깊습니다. 이것은 단지 돈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성(性)에도 해당됩니다. 반드시 그 사람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할 어거스틴 이후로 원죄 개념은 성과 깊숙이 연결되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오랫동안 돈과 성 문제로 인해서 죄의식을 느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재물관의 세속화입니다. 신앙은 영적인 차원이기 때문에 물질 문제와 상관없다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약간 성격이 다르지만 직업의 소명의식도 이와 연결됩니다. 모든 직업을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본 칼빈의 가르침에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성실하게 일했으며, 그 결과로 원하든 원하지 않던 자본주의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것이 막스 베버의 지적인 것 같습니다. 기독교인들 중에서 크고 작은 부동산 투기를 한다거나 합법을 가장해서 노동을 착취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겁니다.

 

오늘 자본과 소유, 그리고 노동에 관한 기독교 윤리가 어떤 정확한 방향을 잡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 고민도 별로 없습니다. 생산력을 제고하기 위한 경쟁력을 최고의 가치로 확신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투쟁할만한 힘도, 의지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두 벌 옷을 입지 말하는 주님의 명령은 오늘 우리에게도 심각한 도전입니다. 그것이 도전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책임하거나, 무사려한 사람들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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