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16일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대중에게 사랑 받는 젊은 남자 연예인들 중에 ‘꽃 미남’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거기다가 ‘살인미소’라는 말까지 추가되면 거의 그 인기는 절정에 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언뜻 생각해도 ‘꽃’과 ‘미남’ 그리고 ‘살인’과 ‘미소’라는 말들은 함께 어울리기가 쉽지 않은 단어들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단어들을 사용하는 대중들에게나 또 그렇게 불려지는 그 사람들에게는 이런 말들이 전혀 거리낌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꽃’과 ‘미남’, ‘살인’과 ‘미소’ 어우러져
‘목회자’라는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직분이 곧 이런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을 아주 잘 어울리도록 만드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책벌하시는 하나님을 선포하고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죽음의 길을 가신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사역의 본질 때문인지 목회라는 사역은 이런 자연스럽지 못한 단어들을 조합하여 아주 부드럽고 아름다운 단어로 만들어 보여주는 일을 하며, 이런 일의 전문가들이 바로 목회자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한 해를 정리하고 또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면서 우리는 얼마나 조화롭지 못한 사회 속에서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며 살아왔는가를 돌아본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알 수 없는 혼란한 목소리들이 매스컴을 타고 들려오고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길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제는 이런 혼란이 아주 보편화되어서인지 오히려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이 시대를 따라 잡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부조화를 조화롭게 만드는 기술 필요해
성(聖)과 속(俗)을 오가는 생활의 갈등 속에서 부딪히며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그 혼란의 정도가 아예 흘러가는 대로 몸과 생각을 맡기고 살아가는 불신자들에 비해 훨씬 더 강하게 다가 올 것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 부자연스럽고 찌르는 가시가 돋은 소재들 속에서 매우 조화롭고 평안하게 또 아름답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는 것이 목회자의 사명이라고 보여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회자 자신이 먼저 그런 부조화를 조화롭게 만들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본다.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영적 ‘꽃 미남’의 모습과 그 얼굴에 가득한 ‘살인 미소’까지 가져야 하는 것이 두려움과 불확실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힘겹게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성도들 앞에 선 목회자의 얼굴이라 생각한다. 부족한 중에서도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심을 노래하며 풍요로움을 누리는 모습, 수많은 염려와 근심 앞에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전능하신 손을 만지며 나타나는 그 평온한 모습, 불평과 책망의 대상자들을 바라보면서도 얼굴 가득히 넘쳐흐르는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미소가 성도들이 보기 원하는 목회자의 얼굴일 것이다.
단지 몇 발짝 앞서 가는 양인 목회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순진하리만큼 그대로 뒤따르는 성도들을 향하여 사람인 나를 보지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뛰어가라고 외치는 강단에서 그 말들은 어쩌면 책임을 면해보려는 목회자들의 궁색한 변명으로 들려질지 모른다.
조화 속에 아름다움 있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설교하며 외치는 목회자들을 감싸고 있는 수많은 짐들과 감사하기 어려운 여건들은 교회의 규모나 지역에 관계없이 모든 목회자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십자가이다. 다만 어떤 이는 그 말씀을 힘있게 외치면서도 동시에 주어진 짐들을 힘겹게 투덜거리며 지고 가는 두 모습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각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누가 봐도 힘들고 어려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르치는 말씀과 그 모습이 훌륭한 조화를 이루며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언젠가 한 성도가 어느 설교자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던 한 마디가 생각난다. 목사님들이 한 편의 설교를 준비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여 선포하는 일은 분명 엄청난 시간과 체력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잘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준비된 설교를 선포하는 자리에서 이 설교가 이토록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해서 준비되어서 지금 이렇게 선포되는 것이라는 말씀을 종종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물론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하신 말씀일 것으로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듣는 성도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몹시 편치 않습니다. 이는 마치 잔치 집에 손님을 초대해 놓고선 이 음식들을 장만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수고를 했으며 돈이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주인을 보는 듯 합니다.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렸다 해도 그 잔치 음식은 입맛을 잃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물 흐르듯 설교하길 바래
비록 힘들게 피땀을 흘리며 준비한 말씀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그 말씀을 전하는 순간만큼은 아주 편안하게 물 흐르듯 쉽게 설교하는 목회자를 성도들은 보고 싶어한다. 당연히 그 조화의 일은 목회자의 몫이다. 혼란과 불평과 부정적인 사회에서 지친 성도들은 만족한 얼굴과 행복한 미소가 가득한 목회자의 얼굴을 보고 싶어한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얼
짱’, ‘몸짱’은 아니어도 평안과 기쁨의 ‘살인 미소’가 가득한 목회자를 바라보는 성도들은 자신의 목회자를 위해 눈물로 기도할 것이다. 이 신비로운 조화 속에서 출발하는 새해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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