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3

생각하기 때문에 멍청해 진다고요?

새벽지기1 2019. 12. 3. 07:32


요즈음 서점가에서 큰 인기를 끄는 책이 있습니다.

이름 하여 생각 버리기 연습입니다. 토쿄 대학을 나온 30대의 일본의 젊은 스님 코이케 류노스케가 쓴 책입니다.

그 스님은 사람은 생각하기 때문에 멍청해 진다. 우리를 지배하는 생각을 멈추고 오감을 사용하라.”고 충고합니다.

 

우리들은 수많은 잡생각에 포위되어 있습니다.

그 생각들은, 우리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가뜩이나 바쁜 삶을 더 복잡하게 만듭니다. 삶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이런 것들을 코이케 스님은 생각병이라 명명하고 여기서 자유로워지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머리 위에 반짝! 의문표가 생깁니다. “생각하기 때문에 멍청해진다고?”

 

워싱턴에서 택시를 운전하고 있는 75세의 흑인 할아버지 카터는 자신을, 단순한 택시 운전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택시 운전사로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손님들을 극진하게 모셨습니다. 어느 날 그는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온 손님을 태우게 되었고, 같은 아프리카계 사람이라 많은 대화가 친밀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를 계기로 1998년 초청을 받아 말라위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카터는 그곳에서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가난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마음이 너무 아파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이 마을에 기쁨을 주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저를 도우소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카터 할아버지는 택시 운전사답게 마을에 도로가 없는 것을 가장 먼저 보았습니다. 좁은 진흙길뿐이었습니다. 마침 가지고 온 돈이 조금 있어서 마을 사람들을 고용하여 도로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대단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1인당 임금은 1달러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카터의 관대한 마음에서 떠오른 생각’, 곧 하나님 나라 정신이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참여로 3일 후에 약 2킬로미터의 도로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카터는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1년 후 카터는 이곳이 자꾸 생각나 다시 방문했습니다. 한 청년이 절도범으로 잘못 기소되어 감옥에 갇힌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카터 할아버지는 가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와 정의를 구했기 때문에 그 사건에 적극 개입해서 그 청년을 석방시켰습니다. 위급한 소년을 만나서는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가서는 자나 깨나 어떻게 하면 그 마을을 도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마을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다음 해에도 또 그 마을에 갔습니다. 이번에는 몇몇 청년들에게 농사개량법을 가르쳐주고 그들에게 씨앗을 사주었습니다. 그 마을 어린이들에게 축구공 26개를 사주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즐거움과 놀이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후에는 그 아이들에게 유니폼도 마련해 주었는데, 하나님 나라에서는 자부심도 중요하다고 늘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을 하는 하나님 나라 택시 운전사 카터에게 하나님께서는 많은 후원자들을 붙여주셨습니다. 그 마을에 갈 때마다 마을에 좀 여유있는 사람들도 달라져 기부금을 내놓았고, 주변 어려운 사람들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학교도 세워졌습니다. 17명이던 학생 수가 곧 85명으로 불어났습니다. 해야 할 일들이 더 많아졌고, 비례해서 카터도 더 바빠졌고 더 즐거워졌습니다. 카터 할아버지의 취미는 그 마을을 잘 돕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생각도 생각 나름입니다. 코이케 스님이 버리라는 생각은 쓸 데 없는 내 생각들이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생각의 능력을 주신 것은 카터처럼 하나님의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리스도인의 또 다른 이름은 새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이란 하나님과 겨루는 자입니다. 이 불경스럽기까지 한 이름에는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어린 손자가 놀이터에서 한 대 맞고 와서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 꼬마에게 할아버지가 내 그 녀석들 나중에 혼내 주마.”하시며 씨름이나 한판 하자고 하십니다. 싫다는 놈을 얼러서 한바탕 뒹굽니다. 어느새 꼬마는 놀이터의 일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깔깔 웃습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기독교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2:10)

 

바로 포이에마를 말합니다. 헬라어 포이에마에서 poem, 즉 시라는 말이 유래하였습니다. 시인을 생각해 보십시오. 시인은 끊임없이 시어를 생각하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시를 창조해 냅니다. 하나님 생각을 많이 하여 각자의 삶을 통해 더 아름다운 시를 창조해냅니다.



'좋은 말씀 > -컬럼3'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갈릴리 호수와 사해死海   (0) 2019.12.13
적은 내 안에 있다   (0) 2019.12.11
예수님의 승천   (0) 2019.12.01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   (0) 2019.11.23
나는 뭘 하러 이 땅에 왔지?  (0) 2019.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