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로마서

로마8-마음대로 살게 내버려둠 (로마서1:24-31)

새벽지기1 2018. 10. 23. 07:44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설명하면서(1장17절부터 본격적인 설명을 시작함) 제일 먼저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났다’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바울이 이 말로 복음을 설명하기 시작한 것은 창세기 1-3장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복음을 말하면서 제일 먼저 하나님이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신 이야기,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서 사람이 타락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바울도 창세기 저자와 같은 관점에서 세상과 인간을 바라봤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저자와 같이 하나님이 창조한 이야기와 인간이 타락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설명해나갔습니다. 제대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말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하나님의 진노를 말해야 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가 하나님의 진노를 말하지 않은 채로 은혜를 말하는데, 이것은 서울을 말하면서 한강을 말하지 않는 것과 같고, 기독교를 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말하면서 제일 먼저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났다’고 제대로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란 무엇일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어떻게 나타났을까요? 저주와 재앙을 퍼붓는 것으로 나타났을까요? 홍수로 모든 생명을 쓸어버리는 것으로 나타났을까요? 불의한 자들을 지옥에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을까요?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진노가 재앙으로 나타나고, 나쁜 질병으로 나타나고, 전쟁에서 패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나라를 잃고 종살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방식으로 나타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는 것으로(v.24), 부끄러운 욕심을 따라 행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으로(v26), 상실한 마음(합당하지 못한 마음)대로 내버려두는 것(v.28)으로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사람들이 자기 맘대로 온갖 불의를 행하도록 가만 놔두는 것으로, 하나님이 아무런 손을 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잘 이해가 안 됩니다. 하나님의 진노라고 하면 적어도 나쁜 짓하는 족족 목이 꺾이고,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큰 사고가 터지고, 사기 치는 놈들이 폭삭 망해야 할 것 같은데 정반대로 나쁜 짓해도 목이 꺾이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아도 아무 사고 없이 잘 살고, 사기 쳐도 안 망하고 떵떵거리면서 잘 사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이게 무슨 진노인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라고 말합니다. 나쁜 짓하는데 목이 꺾이지 않는 것,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데 아무 사고 없이 잘 사는 것, 사기 쳐도 떵떵거리면서 잘 사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애굽(이집트)에 임한 무시무시한 재앙이나 욥에게 임한 고난 같은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특별한 사건 사고로 나타나지 않는다. 아주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가 뒤틀리는 것으로 나타나고, 사람과 사람 ‧ 사람과 자연 ‧ 사람과 사물의 관계가 뒤틀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는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으로 나타나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남성과 여성의 성적 욕망이 왜곡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자들이 남자와의 관계를 바르지 못한 관계로 바꾸고, 남자들도 여자와의 바른 관계를 버리고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짓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바울은 여기서 성적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말하는데 이 말은 성적 취향이 뒤틀린 몇몇 사람들만을 겨냥해 한 말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변태 성욕자들만을 겨냥해 한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울의 말을 좁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동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고 동성 간에 성적 행위를 하는 몇몇 사람들(게이와 레즈비언)만을 겨냥해 말한 게 아닙니다. 인간의 삶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표지로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비정상적으로 어긋나고 왜곡됐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동성애를 비롯해서 남성 혐오와 여성 혐오 등등 남녀관계가 뒤틀린 것들이 인간의 삶 전체가 고장 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지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서의 삶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한 민족에게, 특별한 재앙이나 사건 사고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납니다. 그 실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 하나님은 몰아내고 하나님 없는 빈 마음에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들어왔습니다. 그 결과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합니다(창6:5). 사람의 마음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됐습니다(렘17:9). 사실입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의 마음보다 더 거짓되고, 더 부패하고, 더 어둡고 무지몽매한 것은 없습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사람의 마음속에는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마음에서 온갖 악행이 나옵니다.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적개심, 수군거림, 비방, 하나님을 미워함, 거만, 오만, 자랑, 악을 도모함, 부모를 거역함, 어리석음, 신의 없음, 무정하고 무자비함 등등 온갖 악행이 나옵니다. 이런 악행들이 상시적으로 일어나지는 않지만 일상에서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저녁 뉴스에 나오는 것들이 거의 이런 일들입니다. 정당 간에도, 청와대 참모들 간에도, 친구들 간에도, 직장 동료들 간에도, 성도들 간에도, 가족들 간에도 이런 일들을 반복하면서 살아갑니다. 서로 미워하고 비방하고 시기하고 자랑하고 속이고 수군수군하고 힘겨루기 하면서 어리석고 오만방자하게 살아갑니다.

 

적개심만 잠시 들여다봅시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때는 적개심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자기 신경을 거스른다든지,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든지, 손해를 끼친다든지, 상처를 주게 되면 즉각 적개심이 튀어나옵니다. 조금만 마음이 상해도 말이 거칠어지고, 눈초리에 힘이 들어갑니다. 마음의 장벽을 높이 쌓고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겁니다. 부부간이나 부모자식 간에도 사소한 일로 적개심을 품는 경우가 적지 않고,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하다가 적개심이 폭발해 죽이는 일까지도 종종 일어납니다. 며칠 전에 과천 노래방에서 주인과 손님이 말다툼을 하다가 손님을 죽이고 사체를 훼손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마 손님이 노래방에 들어올 때만 해도 웃으면서 친절하게 맞았을 겁니다. 그런데 노래 도우미 교체 문제로 말다툼을 하다가 돌변하여 처참하게 죽인 것입니다.

미움도, 분쟁도, 자랑도, 수군거림도 다 똑같아요. 자기도 모르는 순간에 사소한 일들로 인해 이런저런 흉측한 악들이 툭툭 튀어나옵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적개심이 꿈틀거리고 있어서 자칫하면 살인하고, 분쟁하고, 거짓말하고, 수군거리고, 비방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고, 거만하고, 오만하고, 자랑하고, 악을 도모하고, 부모를 거역하고, 무정하고, 무자비하게 행합니다. 매순간 그러는 건 아니지만 이런저런 엮임 속에서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그렇게 행합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 텔레비전에서 보는 사람들,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들, 함께 일하는 사람들, 함께 예배하는 사람들이 다 그런 사람들이에요. 열정을 다해 설교하고 있는 저 또한 그런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말입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고, 우리의 일상 전체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말입니다. 정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자체가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무섭고 가공할만한 일들이 진노가 아니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대부분이 하나님의 진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을 하나님의 진노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 세상을 잘못 만나서, 경제상황이 안 좋아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서, 인간이 악하고 못돼서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이란 게 본래 힘들고 고단하고 불편하고 아픈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 인간이 악하고 못돼서 그런 것 맞습니다. 인생이란 너 나 할 것이 다 힘들고 고단하고 불편하고 아픈 것 맞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피상적인 진단에 불과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보고 진단한 것에 불과합니다.

바울의 그렇게 진단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사람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해서 그런 거라고 진단합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맘대로 살게 내버려뒀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진단합니다. 맞습니다. 모든 죄악, 모든 악행, 모든 불행, 모든 고통, 모든 질고는 하나님 없이 자기 맘대로 사는 것에서 비롯됐습니다. 온 세상의 왕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신데 왕이신 하나님을 폐위시키고 자기가 왕이 되어 자기 마음이 원하는 것은 하고, 자기 마음이 원치 않는 것은 안 하는데서 비롯됐습니다. 정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죄악, 모든 악행, 모든 불행, 모든 고통, 모든 질고는 인간의 본성이 악해서가 아닙니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해서입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마음이 가는 대로 행하게 내버려뒀기 때문입니다.

 

진노 중에도 기다리시며 자비를 베푸심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가 말하는 것도 그것입니다. 한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둘째 아들이 자기 몫의 유산을 챙겨서 집을 떠났습니다. 아버지의 통치와 간섭이 싫어서 최대한 멀리 떠나 마음껏 자유롭게 살았습니다. 자기가 왕이 돼서 마음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마음껏 호기롭게 살았습니다.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 것 같습니까? 건강하고 의로운 삶을 살았을 것 같습니까? 당연히 모든 재산을 탕진할 때까지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결국은 돼지 농장의 종으로 전락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가 이렇게 전개될 것이라는 걸 훤히 내다보셨습니다. 그런데도 아들이 떠나는 것을 막지 않았습니다. 재산을 갔고 떠나는 걸 내버려뒀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인간의 불의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주와 재앙을 퍼붓는 것이 진노가 아니고 하나님 없는 죽음의 길로 나아가는 걸 내버려두는 것이 진노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인간에게 재앙과 고통을 퍼붓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하나님의 진노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그것을 내버려 둘 뿐이에요.

 

어느 때까지 내버려둡니까?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형편없이 무너지고 부서진 자신, 아무 것도 아니고 오직 죄인인 자신의 모습을 보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내버려둡니다. 바울은 로마서 2장에서 하나님의 이 오랜 기다림을 하나님의 인자하심, 용납하심, 길이 참으심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2:4). 예,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올 때까지 진노 중에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취소되는 법이 없습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노 중에 기다리십니다. 길이 참으시며 기다리십니다. 그러다가 완전히 망가진 모습의 아들이 돌아보면 아낌없이 환영하고 축복하십니다. 죽었던 내 아들이 돌아왔다고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며 함께 즐거워합니다.

예, 하나님은 그러세요. 하나님은 진노 중에 기다리십니다. 진노 중에 인자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인자하심은 따로따로 돌아가지 않아요. 진노와 인자하심이 항상 맞물려 돌아갑니다. 두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진노와 인자하심도 맞물려 돌아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다림과 인자하심을 멸시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허랑방탕하게 살면 즉각 목을 꺾어야 하는데 목을 안 꺾고 인자하심으로 기다리시니까, 자기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하면 즉각 박살을 내야 하는데 오래 기다리시면서 내버려두시니까 하나님은 없다고, 하나님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고 업신여기면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오만방자하게 삽니다.

 

이 시대의 캐치프레이즈

 

특히 요즘 사람들이 더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길이고, 인권과 자유를 최대한 누리며 사는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시대의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는 이겁니다. “남의 눈치 볼 것 없어.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 벗고 싶으면 벗고 까고 싶으면 까. 그래도 돼, 아니, 그게 가장 잘 사는 길이야. 그게 멋지게 사는 길이야” 지금 온 세상이 이렇게 외칩니다.

그러다 보니 그리스도인들도 거기에 동화되어 자기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자유롭게 삽니다. 마음이 내키면 하고 마음이 안 내키면 안 하고, 예배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주일예배에 참석하고 예배드리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당당하게 주일예배에 빠집니다. 목사 눈치 안 봐요. 그냥 예배 안 드립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하는 것은 사실상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고, 자기 마음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것인데, 이 시대의 많은 그리스도인이 시대에 동화되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배하면서도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삽니다.

 

한 마디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기준이 자기 마음입니다. 자기 마음이 최고의 법정이에요. 자기 마음 이외에는 어떤 법정도 인정하지 않아요. 사법부의 법정도 인정하지 않고, 양심의 법정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법정도 인정하지 않아요. 부모의 말도 듣지 않고, 선생의 말도 듣지 않고, 목사의 말도 듣지 않고,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아요. 오직 자기 마음의 소리만 듣습니다. 동성에게 마음이 끌리면 그냥 동성연애를 합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냥 죽입니다.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으면 그냥 관계를 끊습니다. 함께 살고 싶지 않으면 그냥 이혼합니다.

사실 인간의 마음은 만물 중에서도 가장 부패하고 거짓되고 어두운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진보적으로 사는 것이고, 잘 사는 것이고, 멋지게 사는 것이라고 이 시대의 캐치프레이즈를 외치면서 그렇게 삽니다. 배알이 꼴리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삽니다.

 

바울은 이런 자들을 향해 말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멸시하며 고집스럽게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사는 자들이여! 그대들의 삶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쌓는 것입니다.”(롬2:4-5). 옳습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일입니다. 여러분, 자기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사는 사람 중에 참 안식과 자유를 얻은 사람 봤습니까? 아름다운 생명살이를 하는 사람 봤습니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아버지의 품을 떠난 둘째 아들처럼 하나 같이 비참한 종살이를 합니다. 잠시 동안은 화려하게 부패한 자유를 구가하겠지만 이내 곧 안식 없는 불안한 삶을 살고, 끝내는 비참한 종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서 어떻게 안식을 누리겠습니까.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서 어떻게 생명살이를 하겠습니까. 전혀 불가능합니다. 화려한 어둠의 종노릇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신뢰합니다. 세상 모든 건 신뢰하지 않아도 자기 마음만은 신뢰합니다. 자기 마음의 소리에는 귀를 기울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이 어떤 물건입니까? 만물 중에서도 가장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우리 마음이고, 세상에서 가장 어둡고 무지몽매한 것이 우리 마음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마음을 신뢰하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서는 진리의 소리가 나올 수 없습니다. 진리의 소리는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의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기 마음을 굴복시키십시오. 자기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이끄는 대로 행하십시오. 그럴 때만 참된 안식이 임합니다. 거짓된 자유 말고 참된 자유가 임합니다. 생명의 풍성함에 거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