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의 칭의교리가 공격을 받고 있다.
마치 종교개혁자들이 죄인의 값없는 칭의를 강조하고
선행은 구원과 무관한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성화의 추구 없는 값싼 은혜의 종교가 된 것인 양 말이다.
그래서 믿어 칭의를 얻었어도
순종이 온전하지 않으면 구원이 위험하게 된다는
새 관점의 반펠라기우스적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과연 인간은 절망적 죄인으로
칭의의 은혜가 아니면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이 율법의 순종을 약화시키는가?
-서충원 목사의 ′왜 성화가 아니고 칭의인가?′에서-
칭의 교리의 깊은 본질은
죄를 정당화하는 교리가 아니라
자기의 선행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소위
의인들의 교만을 파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며
빈손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게 하는 영적 통찰입니다.
도덕적 악보다 더 위험한 것은
자기의 선으로 하나님 앞에 서려는 교만입니다.
성화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추구여야 하지만
그러나 진정한 성화의 추구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의 깊이와 무능에 대한 칭의 신앙의 바탕에서 가능합니다.
어줍지 않게 종교개혁자들의 칭의 교리를 비판하는 자들은
그들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