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남준목사

골수에 사무친 소원 (롬9:1-3)

새벽지기1 2017. 6. 21. 14:56


I. 본문해설 

 

본문말씀은 견딜 수 없는 고통과 근심을 토로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언급된 구절이다. 그 고통의 내용은 다름 아닌 자신의 가족과 동포들이 주님을 믿지 않는 것이었다. 사도의 그 고통은 아마도 골수에 사무치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골수라 함은 문자 그대로 뼈 사이에 있는 조직들을 말하는 것이나 이는 인간 심경의 가장 깊은 곳, 생명의 근원이 되는 핵심 되는 곳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골육지친을 향한 사도의 고통이 잠시 잠간 지나가는 근심도 아니요, 피할 수 없고 의식 속에서 사라질 수도 없는, 오랫동안 자신의 영혼에 찌르듯 남아서 자신에게 아픔을 주는 고통임을 표현한 것이다.

 

II. 골수에 사무친 근심

 

A. 골육의 구원

: 본문 말씀은 롬 8장의 놀라운 선포에 이어지는 장이다. 롬 8장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감격이 피력된 곳이며, 하나님의 놀라운 그 사랑은 세상의 그 무엇이라도 끊을 수 없다고 결론짓고 있는 장이다. 이처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을 이야기 하면서 사도가 고통 중에 고백하고 있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골육지친들을 위한 안타까움이었다. 다메섹에서 일생일대의 변화를 받은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 뿐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코자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이방인들을 위한 전도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었고, 그러한 역사가 거셀수록 그에게는 사무치는 고통이 몰려왔는데 그것이 바로 본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구원받지 못한 동포, 가족들에 대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B. 하나님 사랑을 앎

: 이 고통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게 됨으로써 밀려온 고통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깨닫게 되면 우리 영혼에는 기쁨이 넘치게 된다, 그러나 그 기쁨은 반드시 고통과 함께 우리 마음에 자리 잡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근심어린 고통이 그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긍휼히 여김인데, 특별히 가족들에 대해서는 더 간절할 것이며, 그들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 깊은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의 구원이 지연되는 것은 가족들의 강퍅함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구원을 위해 부름 받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감화되어 있지 못하기에 그러하며, 그들을 향한 열렬한 구령의 열정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몇 주에 걸쳐 가정 시리즈를 들어왔다. 우리는 가정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부부 관계, 형제관계 등- 안에서 헌신하도록 부름 받은 자임을 배웠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기중심적이며 죄 많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은 회복된 듯하나 언젠가는 또 다시 깨어질 수 있는 불완전함을 가지고 있기에 나 한 사람만 구원받아 하나님께 붙어 있는 것으로서는 성경이 말하는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기가 힘들다. 가족 모두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 앞에 깊이 깨어지는 역사가 일어나야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진정으로 하나 된 가정을 만들 수 있다. 참된 신앙으로 일치되고 화합된 가정만이 성경이 이야기 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이 가정을 향해 우리가 해야 할 궁극적인 일인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는 지순의 사랑으로 영혼을 사랑해야 한다.

 

III. 지순의 사랑으로 영혼을 사랑함: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지라도

 

‘그리스도 예수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내가 원하는 바로라’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음은 골육지친을 향한 그 사랑의 애절함을 드러내고자 함인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은 영혼 자체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사랑을 깨달음으로써 느낀 사랑이다. 디베랴 바닷가에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의 영혼을 사랑하겠느냐고 물으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이다. 이는 영혼을 향한 사랑이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면 영혼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영혼을 사랑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일 수밖에 없다.

 

영혼을 향한 간절한 사랑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 향한 사랑은 보이는 영혼을 향한 사랑으로 나타난다. 바울은 그래서 그들을 향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가족을 향한 사랑이 없다면 그리스도를 진실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지 행함과 진실함이 없는 사랑인 것이다.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었던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는 영혼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 그렇게 그분의 사랑을 깨닫기 전 까지는 진리를 찾아갈 수도 없었고,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자였으며, 이방인들을 쓰레기처럼 취급하던 자였다.

 

그러나 하나님 만난 그는 자신이 가진 수많은 자랑거리들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오히려 쓰레기처럼 취급했던 이방인을 향해 사랑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 속에서 언급된 것처럼 골육지친을 향한 진실한 사랑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살던 우리, 고통과 번민 가운데 헤매던 우리, 어둠과 허무 가운데 있었던 우리를 하나님이 만나주셨고,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체험한 우리는 빛 가운데 살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불신 가족은 그러한 고통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누군가가 그분의 사랑을 전해주지 않았기에 우리가 예전에 실패했던 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몇 번 교회 나오도록 권고할 수는 있지만 사도처럼 뼈에 사무치도록 간절함을 가지고 섬긴 적이 있는가?

 

우리를 먼저 예수 믿게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믿은 자는 영혼을 향한 깊은 고통과 희생을 감당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보이신 영혼을 향한 그분의 사랑을 기억하라. 심한 통곡과 눈물로 섬긴 그분의 사랑을 기억하라. 이것이 영혼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방법인 것이다. 그 기도의 응답으로 기적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밀려온 것이다. 눈물로 이 세상의 인간들을 섬긴 그분의 사랑, 섬김, 희생 때문이었다. 그뿐 아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섬기고, 우리를 위해 간구하였다. 믿음의 사람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수많은 사람들을 사용하시어 우리를 만지시며, 빚어 가신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자신을 섬겼던 많은 사람들을 기억해보라. 모든 영혼의 아름다운 성장은 영혼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희생과 눈물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IV. 결론과 적용

 

사랑이 가져다 준 근심. 우리는 가족을 향해 냉담할 수 없다. 먼저 믿은 자된 우리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자신들을 위해 기도할 수 없기에 우리가 대신 기도해야 하고, 그들 스스로 회개할 수 없기에 우리가 대신하여 회개해야 한다. 회심치 못한 채로 교회 마당만 밟고 다니는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저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눈물로 그를 섬기는 가족들의 그 마음을 동일하게 갖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모든 신앙의 첫 걸음은 하나님의 마음, 우리를 향해 갖고 계신 애달픈 사랑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정이 이 땅의 가족으로 사는 데에만 만족하지 않으시고, 저 하늘 가족이 되길 원하신다. 불신 가족을 향한 깊은 부담감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섬기는 것이라 말할 수 없다. 뼈에 사무친 희생의 섬김, 사랑으로의 섬김이 필요하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불신가족에 대한 긍휼함보다 그 영혼을 위해 울어줄 수 없는 강퍅한 자신의 마음이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올 것이다. 구원받지 못한 가족이 있습니까? 그들은 결코 포기 되어질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나의 행복과 필연적으로 연결된 자들이며,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자들이고, 진심으로 기도하기 위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지금 당신의 눈물어린 사랑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