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학단상

일억 년 후!

새벽지기1 2017. 5. 1. 10:18


일억 년 후!


일억 년 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이건 순전히 공상과학으로만 가능하지 현실로는 아예 말이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1억년이라는 세월 자체가 너무 까마득하다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미래가 우리의 예측을 근본적으로 벗어난다는 사실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이 100만년 쯤 전인지, 또는 그것보다 더 오래 됐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1억년 안쪽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오래된 호모 에렉투스의 출현이 2백만 년 전이니까 현재 인간과 가장 유사한, 그래서 직계라 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이 별로 오래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호모 사피엔스와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네안데르탈 원인은 최후로 찾아온 빙하기에 멸종했다고 한다. 만약 그들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현재 인간과 침팬지의 중간 쯤 되는 종이, 그것보다는 인간에게 훨씬 가깝지만 그래도 구별되는 종이 되었을지 모른다. 이건 별로 정확한 말이 아니라 단지 추측에 불과하니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시라.


일억 년 전에 지구에는 무슨 생명체가 있었을까? 가장 초보적인 생명체가 시작했을 시기였을지 모른다. 1억년 뒤에 인간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1억 년 전과 오늘은 비교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현재와 1억 년 후와도 비교될 수 없다. 그러나 그 때는 분명히 온다. 예수님이 그 전에 재림하지 않으시거나, 또는 지구와 혜성의 충돌로 지구가 파괴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때까지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 있을 가능성은, 또는 그때까지 인간이 지구의 주인으로 행세할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누가 그걸 계산할 수 있으랴.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문명은 지구와 인간 자체의 미래를 완전히 파괴할 가능성과 그것을 지켜낼 가능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게 어느 쪽으로 열릴는지 현재로서는 아무도 모른다. 혹시 태양이 병드는 일은 없을까? 현재 태양 에너지의 10%만 줄어든다고 해도 지구는 결정적인 손상을 받는다. 빙하기가 훨씬 자주, 훨씬 심각하게 찾아오지 않겠는가.


만약 모든 걸 낙관적으로 생각해서 일억년 후에 인간이 모든 생태적인 문제를 극복하고 지구 위에 지속가능한 지상낙원을 건설하게 된다면 그때 예수의 재림과 종말론과 창조론은 어찌되는가? 그런 방식이 바로 하나님의 통치로 자리를 잡는가? 그것이 바로 생명의 완성으로 해석되는가?


지금 당장 먹고 사는 게 급하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교회를 성장시키는 게 급하다 하더라도 기독교 신학과 신앙에서 일억 년 후는 여전히 중요한 질문이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으며, 말해야만 하는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지금부터 우리는 보편적 진리의 차원에서 이 세상에 변증할 줄 아는 방식을 습득해야 한다. 그런 노력을 포기하면 먼 훗날 기독교가 요즘의 무속처럼 현실의 중심으로부터 완전히 따돌림 당하고 말 것이다. 안타깝지만 먼 훗날이 아니라 이미 지금 그런 조짐이 한국 교회 안에서 엿보인다.

'좋은 말씀 > -신학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존재의 신비  (0) 2017.05.04
절대타자(2)  (0) 2017.05.03
인간의 미래  (0) 2017.04.30
은혜 만능주의  (0) 2017.04.29
요한계시록 읽기  (0) 2017.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