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고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 : 5)
Ⅰ. 문맥 안에서의 ‘무례함’
오늘 본문 말씀의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는 “교만하지 아니하며”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교만함은 사랑이 없는 증거이고 무례함은 교만함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Ⅱ. ‘무례히’의 어의(語意): 아스케모네이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뜻은 사랑은 규모, 예법, 도리, 규범, 이런 것들에 어긋나게 행동하지 않게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 안에서 끓어오르는 비이성적인 정염이 아니라 놀라운 질서를 지향하는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과 질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Ⅲ. 사랑과 질서
사랑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의 본질이기도합니다.
A. 아름다움의 본질 : 복수의 어울림
아름다운 것들은 홀로 아름다울 수 없고 다른 것들과 함께 어울림으로써 아름다워지게 됩니다. 자연을 보십시오. 평범한 풀잎 하나도 그 안에 수많은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사물들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밤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의 서로 다른 밝기와 거리, 빛깔들은 어두움과 어우러져서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드러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자연적인 사물들은 이렇게 복수로 어울리면서 아름다움을 연출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세상을 이토록 아름답게 창조하셨고 그 아름다움은 하나님 자신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질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B.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질서
하나님은 당신 자신 안에서 아름다우십니다. 그래서 성부는 성자를 낳으시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출함으로써 삼위로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피조세계를 향해 삼위 안에 있는 사랑을 흘려보내시는데 이것이 삼위 하나님이 보여주신 경륜의 아름다움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 모든 세계를 아름답게 창조셨을 때 그 아름다움은 두 가지로 집약시키셨습니다.
첫 번째는 자연의 아름다움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위로는 하나님을 알고 아래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알며 질서 속에서 어울려 아름답기를 원하신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
그러나 이 세상은 하나님이 원래 창조하셨던 계획으로부터 멀리멀리 이탈하게 되었습니다.
가족으로 사는 것도 싫어 공동체를 뛰쳐나가 제 멋대로 행동하고자 하는 욕구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받았던 유혹인 하나님처럼 되고 행동하고자 하는 교만의 소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끊임없이 은혜를 주시고 그 은혜의 감화를 통해 사랑이 솟아나게 하셔서 한 가족으로 살기 싫은 마음을 뉘우치고 하나님의 질서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보이는 교회 안에서 입증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만약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교회의 질서, 하나님이 주신 세계의 자연적인 질서를 기뻐하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을 명백히 싫어하는 것입니다.
C. 회심 : 신적 질서로 돌아감
죄에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인 회심도 사랑의 질서와 관련시켜 말하자면 신적인 질서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즉 예전에는 질서에 대한 아무런 생각 없이 내가 온 우주의 중심이고 질서의 판단자인 것처럼 살았는데 그 끝은 견디기 힘든 고통과 악일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자기 자신을 섬기는 것의 마지막이 쓰라린 고통이며 커다란 악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질서대로 살면 내가 행복해지리라는 것을 믿고 그 질서를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믿음이며, 그러한 하나님의 질서가 자기 자신, 이웃, 그리고 온 세계 안에서 아름답게 펼쳐져서 질서 안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자신을 바치는 헌신이 바로 순종입니다.
가족으로 사는 것도 싫어 공동체를 뛰쳐나가 제 멋대로 행동하고자 하는 욕구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받았던 유혹인 하나님처럼 되고 행동하고자 하는 교만의 소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끊임없이 은혜를 주시고 그 은혜의 감화를 통해 사랑이 솟아나게 하셔서 한 가족으로 살기 싫은 마음을 뉘우치고 하나님의 질서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보이는 교회 안에서 입증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만약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교회의 질서, 하나님이 주신 세계의 자연적인 질서를 기뻐하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을 명백히 싫어하는 것입니다.
C. 회심 : 신적 질서로 돌아감
죄에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인 회심도 사랑의 질서와 관련시켜 말하자면 신적인 질서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즉 예전에는 질서에 대한 아무런 생각 없이 내가 온 우주의 중심이고 질서의 판단자인 것처럼 살았는데 그 끝은 견디기 힘든 고통과 악일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자기 자신을 섬기는 것의 마지막이 쓰라린 고통이며 커다란 악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질서대로 살면 내가 행복해지리라는 것을 믿고 그 질서를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믿음이며, 그러한 하나님의 질서가 자기 자신, 이웃, 그리고 온 세계 안에서 아름답게 펼쳐져서 질서 안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자신을 바치는 헌신이 바로 순종입니다.
Ⅳ. 사랑 : 그 질서를 즐거워함
사랑과 겸손은 다른 이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를 어울려 아름다움을 만나고 싶어 하지만 교만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파괴하여 자기 홀로 존재하는 것처럼 잘난 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은 사람의 판단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쳐 하나님의 질서보다 자기의 질서를 옳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 안에서 자기는 자유롭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모든 것은 사랑과 한 인격 안에서 전적으로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겸손은 다른 이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를 어울려 아름다움을 만나고 싶어 하지만 교만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파괴하여 자기 홀로 존재하는 것처럼 잘난 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은 사람의 판단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쳐 하나님의 질서보다 자기의 질서를 옳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 안에서 자기는 자유롭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모든 것은 사랑과 한 인격 안에서 전적으로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되면 자연스레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기 무아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은혜를 받고 나면 자기가 얼마나 존귀하고 아름답고 가능성 있는 존재인지를 보게 된다는데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우리에게 자기의 아름다움을 보고 즐거워하도록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떠한 식으로든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 심지어 자기 육체까지도 사랑하지 말도록 경고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요한1서 2: 15). 그러므로 한 사람이 회개하고 그분의 질서로 돌아왔을 때 그의 마음을 가득 메우는 찬란한 아름다움은 이 세계 전체를 품으며 휘돌고 있는 하나님 자신의 아름다움이지 내가 회개하고 나니까 나도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자신의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상일 뿐입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성경은 부분적이거나 조건적으로라도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심지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사랑은 자기 무아의 사랑이고 자기 잊음의 사랑입니다.
Ⅴ. 결론
그러므로 그리스도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은혜를 경험한 후, 모든 좋은 것들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 우리는 결코 사랑의 질서에서 이탈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랑의 질서에서 이탈하는 이유는 물질이나 육욕 등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들이 우리 사랑의 최종적인 목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세상의 명예나 물질의 유익, 사람들에게 받는 좋은 평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새롭게 다가오는 십자가 사랑 때문에 자기의 교만을 접고, 순간의 이탈을 회개하고 믿음의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그 쓸데없어 보이던 시간들이 주님을 섬기며 살았던 날들로 주님의 마음에 기억된 다는 것을 보며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은혜를 경험한 후, 모든 좋은 것들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 우리는 결코 사랑의 질서에서 이탈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랑의 질서에서 이탈하는 이유는 물질이나 육욕 등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들이 우리 사랑의 최종적인 목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세상의 명예나 물질의 유익, 사람들에게 받는 좋은 평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새롭게 다가오는 십자가 사랑 때문에 자기의 교만을 접고, 순간의 이탈을 회개하고 믿음의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그 쓸데없어 보이던 시간들이 주님을 섬기며 살았던 날들로 주님의 마음에 기억된 다는 것을 보며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믿음의 규칙과 생활의 교훈을 따르고, 세워주신 그 자리에서 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십자가에 대한 묵상으로 견디며 주님의 사랑이 다른 사람도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주신 이유입니다.
사랑은 아무렇게나 행하지 아니합니다. 그 질서를 사랑하고 질서 안에서 나 때문에 타인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자신도 아름다워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행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어울리는 것들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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