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조병수교수

남자의 화 (딤전 2:8c)

새벽지기1 2016. 10. 4. 12:41


가인의 실패는 제물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 성경을 잘 읽어보면 가인의 결정적인 실패는 하나님께서 그의 제물을 열납하지 아니하셨을 때 심히 격분하여 얼굴을 떨구었다는 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물을 열납하지 아니하시면서는 별반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아니셨지만 유독 가인의 분노에 대하여는 꼬집듯이 한 말씀을 주셨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을 어찜이뇨" (창 4:6).

성경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이 화를 내며 억지를 부린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닌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웃시야 왕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웃시야가 하나님께 직접 분향을 드리겠다며 성전에서 들어가면서 자신을 가로막는 제사장들에게 노를 발했을 때 그의 이마에 문둥병이 피어올랐다는 것을 읽어보라 (대하 26:19).

분노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는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말대로 하자면 분노는 기도와 상극이다. 사도 바울은 "분노와 다툼 없이 기도하기를" (딤전 2:8) 권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노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적인 불만과 외적인 자극이 분노의 첫째와 둘째 원인일 것이다. 사실 이 두 가지 원인은 서로 엮여있다. 내적인 불만이 외적인 자극에 민감하게 만들며, 외적인 자극이 내적인 불만을 심화시킨다. 무엇인가 결핍되고 부족하여 마음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분노가 일어난다. 인격을 손상시키는 말을 듣거나 몰지각한 행동에 부딪히면 분노가 일어난다. 분노는 어떤 방식으로든
지 반드시 표현된다.

분노가 표현되는 방식은 주로 얼굴과 언어와 행동 세 가지이다. 화가 나면 얼굴이 찡그려지며, 욕설이 뛰쳐나오고, 폭력이 휘둘러진다. 분노의 결국은 다툼과 범죄이다.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잠 29:22). 분노의 결과가 다툼이라는 증거는 가인에게서 찾을 수 있고, 분노의 결과가 범죄라는 증거는 웃시야에게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분노의 가장 무서운 결과는 마귀로 틈을 타게 만들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엡 4:26-27). 따라서 한 마디로 말해서 노는 기도의 가장 큰 적이다.

특히 사도 바울은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 없이 기도하기를" 요구한다. 이것은 기질적으로 여자보다는 남자들이 훨씬 더 쉽게 분노와 다툼에 말려든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어쨌든 사도 바울은 "분노와 다툼 없이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라고 말함으로써 남자들에게 있어서 분노와 거룩한 손 사이에는 어떤 역학관계가 있다고 말하려는 듯이 보인다.

화를 내는 남자들은 거룩한 손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화는 손을 더럽게 만든다. 공교롭게도 분노로 말미암아 형제를 살해한 가인에게서도 손이 문제가 되었고 (창 4:11), 분노가운데 분향하려던 웃시야에게서도 손이 문제가 되었다 (대하 26:19). 이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사도 바울은 위에서 언급한 분노의 일반적인 결과들을 이렇게 압축하고 있다. 분노는 거룩한 손을 상실시키고, 거룩한 손의 상실은 기도의 길을 막는다. 이 때문에 곳곳에서 사도 바울은 분노를 버려야 한다고 역설했던 것이다 (엡 4:31; 골 3:8).

분노와 기도는 절대로 합치될 수 없는 상극이다. 사실 기도에 열심내는 것과 분노를 제압하는 것도 역학관계를 가진다. 남자들은 기도하기 전에 분노를 진화해야 하며, 분노를 진압하기 위해 기도에 열심내야 한다. 남자들은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자신이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남자들이 분노를 억제하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인식할 때 다른 이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것을 삼갈 수 있으며, 스스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을 억제할 수 있다. 남자들은 기도에 힘쓰기 위해서 자신을 온유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남자들은 기도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더욱더 분노를 억제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기도는 남자들이 분노를 소멸시키는 지름길이다. 분노는 기도를 막고, 기도는 분노를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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