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찰스 스펄전

하나님의 말씀의 이름들과 능력들(시 19:7-10) / 찰스 스펄젼

새벽지기1 2016. 7. 15. 07:19


하나님의 말씀의 이름들과 능력들(시 19:7-10)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는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19:7-10)



7-9절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여섯 가지 이름과 특성, 그리고 효과를 선포한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시편 기자는 단순히 모세의 율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총체적인 교훈, 성경에서 전반적으로 가르치는 교훈을 말하고 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교리가 온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성경의 일부분만 보았을 뿐이다.  만일 그 일부분이 온전하다면, 성경 전체는 얼마나 온전하겠는가?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의 은혜를 모두 보여주는 이 성경이야말로  더욱 온전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성경에 계시된 복음은 온전한 것이다. 복음은 죄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주는 은혜로운 구원이다. 은혜에는 무엇인가 빠져서 부족한 것이 없으며, 쓸데없이 남아도는 것도 없다. 복음은 그 부분 부분과 전체가 모두 온전하다. 복음에 무엇을 첨가한다는 것은 죄악이며, 이것을 변형한다는 것은 반역이며, 여기서 무엇을 뺀다는 것은 중죄에 해당한다. 


"영혼을 소성케 하고." 


이것은 사람이 죄를 지어 타락한 모습을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실제적인 효과는 사람으로 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하고, 

하나님께 돌아서게 하며,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은 외적인 현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영혼"이 감동을 받고 새롭게 되는 것을 말한다. 

죄인으로 회개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에 더 가까이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성공적일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말씀에 가까이할수록  우리의 사역은 더욱 성공적으로 될 것이다. 

영혼에 힘있게 전달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설명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람의 타락한 영혼을 철학이나 이성으로 고치려고 해 보라. 

당신의 모든 노력이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에게 다가가면 곧 변화를 가져온다.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하나님은 죄를 대적하시고 의를 위해 증거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타락을 경고하시고, 회복하면 어떤 일이 있을 것인가를 증거하신다. 

이 증거는 명백하고 단호하며 결코 잘못될 수 없어  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여도 좋다.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증거는 너무도 확실하여 이제부터 영원까지 우리는 이 말씀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이 말씀을 무엇으로 공격한다 해도 그 능력을 약하게 할 수는 없다. 

이 불확실한 세상에 살면서 확고히 의지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된 일인가! 

우리는 흘러내리는 모래와 같은 사람의 억측과 공론을 버리고  확실한 하나님의 계시를 의존해야 한다.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겸손하고 솔직한 마음, 배우려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말씀을 받아들이고 지혜를 얻어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지혜로운 자들에게 숨기신 것들을  어린아이에게는 나타내 보이신다.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는 더욱 지혜로워지고,  말씀에 대해 트집을 잡고 거부하는 자들은 

계속해서 어리석은 자로 남아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으로 회개에 이르게 하고, 그 말씀 안에서 교훈을 받게 한다. 

우리가 회심했다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성장해야 한다. 

우리가 진리의 능력을 체험했다면, 또한 그 확실한 것을 증거해 보여야 한다. 

온전한 복음은 우리로 하나님께 돌아서게 하고, 또한 지속적으로 덕을 세우게 한다. 

복음으로 교훈을 받은 자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도 흔들리거나 동요하지 않는다. 

우리가 의심한다면 복음은 우리를 지혜롭게 하지 못한다. 우리가 확신하는 진리만이 우리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여호와의 계명이나 교훈은 의에 기초한 것이다. 

의사가 올바른 약을 주고 상담가가 적절한 권고를 해 주듯이, 하나님의 말씀도 그러하다.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말씀이 무엇을 이루는지 그 진행 과정을 잘 살펴보라. 

하나님께 돌아선 자는 지혜롭게 되고, 이 사람은 또한 행복하게 된다. 

진리는 마음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 바른 마음에 즐거움을 준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거저 주는 은혜는 마음의 기쁨을 가져온다. 

땅에 속한 기쁨은 입을 만족케 하고 온 몸의 힘을 빼앗아 가지만, 하늘의 즐거움은 속사람을 만족시키고 

우리의 정신적, 영적 능력을 충만케 채운다. 

성경의 샘에서 흘러나오는 것과 같은 진실된 위로는  세상에는 없다. 

기쁨을 얻고 싶으면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라.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말씀에는 오류가 없다. 

사람들의 어떤 죄악도 이 말씀을 오염시킬 수는 없다. 

이것은 순수한 포도주와도 같다. 


"눈을 밝게 하도다." 


성경은, 훌륭한 안과 의사처럼,  슬픔과 죄로 어두워진 눈을 맑고 밝게 해 준다. 

해를 바라보면 눈이 멀게 되지만,  계시의 햇빛을 보면 볼수록 우리는 깨우침을 받는다. 

눈의 깨끗함은 알프스 산맥을 오르는 자에게 설맹을 일으키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깨끗함은 이와 정반대의 효과를 일으키며, 영혼의 어두움을 고친다. 

여기서도 말씀이 하는 일의 진행을 주의해서 보라. 

하나님께 돌아선 자는 제자가 되고,  나아가 영혼의 기쁨을 누리며, 그는 곧 분별하는 눈을 갖게 된다. 

그는 신령한 사람이 되어서  자신은 누구의 판단도 받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분별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진리의 도를 여기서는 그 영적 효과,  즉 내적 경건이나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묘사했다. 

이것은 죄를 사랑하는 마음을 씻어 내고, 마음을 성결케 하는 것을 말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사람의 영혼에 있는 모든 거리와 작은 길, 모든 집과 그 안에 있는 구석구석을 

다 깨끗하게 하기까지는  만족하지 못한다. 


"영원까지 이르고." 


더러움은 사람으로 부패하게 한다.  그러나 정결한 자는 타락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는 때때로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게 될 때도 있지만, 영원히 파괴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주셨다. 

그리고 이 말씀을 마음에 쓰시면서  그분은 빌라도가 말했던 것처럼 "내가 쓸 것을 썼노라"고 말씀하시며 

스스로 쓰신 것을 취소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결코 변함이 없으시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도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기 위해 오셨다. 

종교 의식에 대한 계명도 그 영원한 본질이 변한 것은 아니다. 

이 세상 나라들이 혁명으로 흔들리고,  고대의 나라들이 모두 사라졌지만, 

하나님의 보좌는 흔들리지 않고 그분의 율법은 변함이 없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여호와의 말씀은 모두 다 진실되다. 

그 말씀은 부분 부분이 모두 선한 규례이며,  이 부분들이 합쳐진 말씀은 전체적으로 모두 훌륭하다. 

여기에는 어떤 예외도 없다. 

하나님의 심판은 모두 공정하고,  이것을 변명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율법에 나타난 여호와의 심판, 그리고 역사가 증거하는 그분의 심판은 진리이다. 

그분의 능력을 대적할 자가 없을 뿐 아니라,  그분의 공의를 비난할 자도 없다.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성경의 진리는 영혼을 살찌게 한다. 

시편 기자는 "금", "정금," 그리고 "많은 정금"이라고 하며  말씀의 귀중함을 나타내는 강도를 점진적으로 더해 갔다. 

이것은 좋은 것이고, 더 좋은 것이고, 가장 좋은 것이기에 수전노가 돈을 탐하는 것보다 더 사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적 보물은 물질적 부(富)보다 더 고상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열심히 이것들을 사모하고 추구해야 한다. 

사람들은 순수한 금을 좋아한다. 그러나 순수한 진리처럼 순수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금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쾌락을 포기하고 안일한 삶도 포기하며 생명의 위험도 무릅쓴다. 

우리는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얻기 위해  이보다 더한 희생을 감수해야 하지 않겠는가?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트랩(John Trapp,1601-1669)은 이렇게 말했다.

"나이 든 사람들은 돈을 추구하고, 젊은이들은 쾌락을 추구한다. 나이 든 사람을 위해서 여기에 금이 있다. 

정금이 수없이 많다. 젊은이들을 위해서는 여기에 꿀도 있다.  벌집에서 뚝뚝 흘러 떨어지는 꿀이 있다." 

하나님의 증거를 바로 이해하는 데서 솟아나는 쾌락은  진정 즐거운 것이다. 

이 즐거움과 비교하면  이 세상에서 즐기는 쾌락은 한심하고 경멸스러운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아는 자는 가장 감미로운 즐거움을 누린다. 


 

찰스 스펄젼의 ‘시편 강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