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도 심판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전통적인 칭의론이 간혹 행함을 따라 심판받는다는 사실을(롬14:10, 고후5:10) 망각한 채 아무렇게나 살아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식으로 방종과 나태를 조장하는 교리로 악용되곤 한다. 그러나 이신칭의의 진리를 굳게 믿는다고 주장하면서 거짓되게 행하는 자들은 그들이 행한 대로 심판 받는다는 말씀을 꼭 기억해야한다.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진정한 회개 없이 버젓이 목사 노릇하는 자, 온갖 비리와 편법과 불의를 행하고도 참된 회심 없이 용서받았다는 자작 위로와 확신으로 충만하여 철면피적인 뻔뻔함을 만면에 머금고 여전히 유명목사로, 신자로 활보하는 자들은 반드시 그들이 행한 대로 심판받을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하여 끊임없이 죄와 옛 자아에 대해 죽는 회개와 거룩함의 열매를 맺는 믿음이다. 자신의 불의와 악행을 분명하고 철저하게 회개하고 돌이켜 거룩하게 살지 않은 자는 아무리 칭의론을 믿는다고 떠들어대도 그의 악함에 따라 심판받을 것이다.
이런 실천적이고 목회적인 측면에서 볼 때 행함을 따라 심판받는다는 말씀은 이신칭의의 교리와 대립되기보다 그 오용의 위험을 막아주는 보완장치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신학적으로도 둘은 상호 배제되기보다 상호 보완되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마지막에 행함으로 심판받는다는 말씀은 칭의의 교리를 허물기보다는 오히려 온전히 세우는 기능을 한다. 칭의의 판결은 행위에 따른 최후 심판 때까지 유보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에게 이미 내려진 것이며 마지막 심판을 통해 최종 확정되고 공개적으로 선언될 것이다.
따라서 칭의에 대한 마지막 확인과 공개적인 재천명은 오직 공적 심판의 절차를 통해서만 온전하게 실행될 수 있다. 심판대 앞에서 많은 사람이 믿노라고 고백할 것이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고(마7:22) 자신의 믿음과 행함을 과시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고백하는 믿음의 진위를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 여기서 심판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심판은 우선적으로 주님이 자주 말씀하신 알곡과 쭉정이, 참 믿음과 거짓된 믿음, 위선자와 참 신자를 가려내 영구히 분리시키는 방편이다. 믿노라고 하면서 거짓되게 행한 위선자는 불신자와 똑같이 그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이다. 그들의 행함 없는 믿음이 그들을 의롭다 하기보다 오히려 더 혹독한 심판을 자초할 것이다. 아무리 거창한 믿음을 고백할지라도 이런 위선자들에게 심판은 칭의를 확증하는 것이 아니라 정죄를 위한 심판이다. 그 때에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33)고 하실 것이다. 그들을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마13:42, 50)고 하셨다.
그러나 이 심판의 긍정적인 면은 정죄가 아니라 칭의의 확증이다. 마지막 심판대에서 주님은 위선자는 정죄하시나 참 신자는 사탄의 고소 앞에서 강력하게 변호하실 것이다. 자신의 피로 그가 이미 정결케 되고 의롭게 되었음을 완벽하게 변호하실 것이다. 이것이 바울이 줄기차게 강조하는 바이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3-34).
따라서 참 신자에게 심판은 칭의와 영생을 확증하는 긍정적인 면을 내포한다. 그런 점에서 믿는 자에게 정죄와 영벌에 이르는 심판은 더 이상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십자가에서 정죄의 심판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하셨다(요5:24).
그러나 지금 성령을 따라 거룩함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이들은 그 믿음으로 심판대를 통과할 것이라고 안심하지 말라. 열매로 믿음의 진정성을 증명하라
지금 쓰고 있는 책의 한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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