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글이다. 아니, 글이어야 한다. 글은 문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글을 완성하는 것은 문자가 아니라 문장 부호다. 마침표가 없으면 문장이 완성되지 않고, 쉼표가 없으면 글이 뒤섞이고, 물음표가 없으면 독백이 되고, 느낌표가 없으면 밋밋하고, 따옴표가 없으면 옹색하기 쉽다. 인생도 그렇다. 여러 가지 삶의 부호를 적절히 사용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인생이 다듬어지고 깊은 맛이 난다.
그럼 문장 부호를 통해 인생을 살펴보자.
마침표(.) : 글에서 꽤 많이 사용되는 부호는 마침표다. 하나의 문장이 끝날 때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마침표다. 마침표가 없으면 문장은 완성되지 않으며, 다른 문장과 뒤섞여 독해하기가 어렵다. 인생의 마침표는 많이 필요치 않다. 삶이란 중단 없는 흐름이기에 자주 등장할 이유가 없다. 죽을 때 한 번이면 족하다. 그것도 내가 찍으면 안 된다. 인생의 마침표는 하늘이 찍어줘야 한다. 하늘이 마침표를 찍어 줄 때까지 우직하게 묵묵히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다.
쉼표(,) : 글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부호는 쉼표다. 마침표는 한 문장에 한 번 등장하지만(그것도 물음표나 느낌표 때문에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쉼표는 두 번 이상 등장할 때가 많다. 쉼표는 글의 흐름을 끊어주고, 해석이 뒤섞이지 않도록 구획지어 줄 뿐만 아니라 읽는 이에게 한 숨 돌릴 여유를 준다.
인생에도 쉼표가 필요하다. 삶이 중단 없는 흐름이긴 하나 적당한 멈춤이 필요하다. 생활을 멈추어야 성찰과 묵상을 할 수 있고, 삶을 섬세하게 음미할 수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깊이 응시할 수 있으니까. 또 성찰과 묵상, 음미와 응시와 없는 세상살이는 생활의 표피만을 바쁘게 핥고 지나가는 것일 뿐 진정한 의미의 인생이 될 수는 없으니까. 사실 쉼표가 없는 인생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쉼표가 없는 인생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다. 언제 어디서 대형사고가 터질지 모른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멈추셨다. 멈추어야만 창조한 세계를 깊이 응시하시며 음미하실 수 있고, 멈춤을 통해서만 창조는 완성되니까. 하물며 인생이랴!
물음표(?) : 물음표는 글을 단순 서술이 아닌 사색과 대화의 장으로 전환시키는 연금술이다. 읽는이를 3인칭 ‘그’에서 2인칭 ‘너’로 초대하는 아름다운 초청이다. 물음표가 없는 글은 글쓴이의 독백이기 쉽고, 단순 서술로 끝나기 십상이다. 읽는이의 생각을 자극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읽는이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물음표가 있을 때 읽는이는 멈추어 생각하게 되고, 글쓴이와 대등한 대화의 파트너가 된다.
인생에도 물음표가 필요하다. 물음표가 없는 인생처럼 무덤덤하고 매가리 없는 인생은 없다.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물음의 존재이고, 물음을 통해 성장한다. 어린 아이를 보라. 어린 아이의 생기발랄함은 물음에 있다. 묻고 또 묻기에 아이의 영혼은 맑다. 보이는 것마다 쉬지 않고 묻기에 마음과 영혼이 자란다. 물음이 아이의 성장 영양소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 또한 깊고 오묘하고 신비롭기 그지없다. 쉬지 않고 묻고 찾고 관찰하고 파헤쳐도 그 속살을 들여다보기 힘들만큼 세상과 삶은 한없이 복잡하고 현묘하다. 세상과 삶은 정말 호기심 천국이다. 그런 세상을 어찌 묻지 않고 살 수 있으리? 생각하고 묻고 두드리면서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 그것이 인생의 알짬이다.
느낌표(!) : 느낌표는 글에 살아있는 감정을 불어넣는 숨이다. 글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끌어내리는 견인이다.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복잡 미묘함을 느낌표 하나가 말없이 전한다. 느낌표에는 수많은 말과 생각과 감정이 녹아 있다.
인생에도 느낌표가 필요하다. 나는 지금 내가 만들지 않은 땅에서, 내가 만들지 않은 공기를 호흡하며, 내가 만들지 않은 빛에 휩싸인 채, 내가 만들지 않은 산과 하늘과 나무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내가 만들지 않은 온갖 생명들의 수고를 힘입어 살아가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내가 만들지 않은 쌀로 밥을 지어 먹었고, 내가 만들지 않은 옷으로 치장을 했다. 진실로 삶은 선물이다. 모든 것이 온통 선물이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리. 어찌 행복을 노래하지 않을 수 있으리. 눈을 뜨고 귀를 열면 언제고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에 휘감기게 되는데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으리.
인생의 느낌표는 물음표의 아들이다. 묻는 자만이 해답을 발견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고, 물음이 깊을수록 감동도 깊은 법이다. 물음표와 느낌표는 인생의 짝꿍이다. 성찰이 물음표라면 음미는 느낌표다. 생활은 성찰을 할 때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고, 삶은 음미를 할 때 메마르지 않을 수 있다. 삶이란 본시 느낌이요 음미이다. 섬세한 느낌이 삶을 살아나게 하고, 그윽한 음미가 삶을 풍성케 한다.
따옴표(“”) : 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부호는 따옴표다. 모든 글은 이전의 글에 빚진 결과물이다. 대부분의 글은 이전의 글을 오늘의 상황에서 재해석한 것일 때가 많고, 이전의 글을 부정하는 글이라 해도 이전의 글이 숨 쉬고 있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는 면에서 따옴표가 없는 글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사실이다. 모든 글 속에는 이전의 글들이 숨 쉬고 있다.
인생에도 따옴표가 필요하다. 인생의 따옴표는 한 마디로 배움이다. 공자는 세 명이 함께 길을 가면 그 중에 적어도 한 사람은 나의 스승으로 모실 수 있는 분이 있다(三人行 必有我師焉)고 했다. 공자가 배우기를 얼마나 힘썼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사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거대한 드라마다. 각각의 이야기와 가르침이 들어 있는 최상의 대하드라마다. 특별한 이야기와 가르침이 들어 있지 않은 인생이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실로 그렇다. 인생보다 더 큰 인생의 스승은 없다. 인생은 끝없는 배움의 과정이어야 한다.
반대로 나의 인생도 누군가에게 따옴표가 되어야 한다. 내 인생의 한 토막이라도 누군가에게 가르침이 되어야 하고, 누군가를 자라게 하는 삶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가진 게 부족하고, 배운 게 없어도 괜찮다. 누군가가 내 삶을 통해 배울 수 있다면, 내 삶이 누군가를 자라게 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무에게도 따옴표가 되지 않는 인생처럼 가난하고 비루한 인생은 아마 없을 것이다. 모든 인생에는 따옴표가 필요하고, 모든 인생은 따옴표가 되어야 한다.
진실로 인생은 글이다. 생활이 문자라면 인생은 글이다. 문자가 글을 이루는 요소이긴 하나 문자를 나열하는 것으로 글이 되는 게 아니듯, 생활도 인생을 이루는 필수 요소인긴 하나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인생이 되는 건 아니다. 쉼표, 물음표, 느낌표, 따옴표가 생활 속에 적절히 자리 잡고 있어야 멋진 마침표를 짝을 수 있다. 생활이 인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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