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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칼빈주의운동(유해무)

새벽지기1 2015. 11. 11. 08:20

신칼빈주의운동(유해무) 교리 산책 / 신앙과 교리

2011.07.25.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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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칼빈주의 운동

유해무(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교수)

신(新)칼빈주의는 19말에서 20세기 초엽까지 카이퍼(1837-1920)와 바빙크(1854-1921)를 중심으로 화란에서 일어난 운동을 지칭한다. 한국교회 안에서 개혁주의에 대한 관심은 고조되는 반면, 신칼빈주의에 대한 소개는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운동을 소개할 뿐 아니라 현금 한국교회를 위하여 이 운동을 평가하려고 한다. 이를 위하여 두 사람이 살았던 19세기 서구와 화란 신학의 동향을 알아야 하며, 그들의 시도가 지닌 의미를 이 배경에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전통의 전수가 어떤 경로를 통하여 한국교회에 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도 살펴야 할 것이다.

I. 신칼빈주의: 카이퍼와 바빙크의 시대와 신학

우리는 이들의 시대적 배경을 두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로, 이들이 활동을 시작할 때 화란교회는 교리적으로 크게 타락한 상태에 있었다. 당시의 독일에는 관념론의 영향을 받은 기라성같은 신학자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이에 대하여 두 사람은 경계하였다. 특히 관념론 뿐 아니라 슐라이에르마허의 영향을 받은 ‘중재신학’(die Vermittelungstheologie)에 대하여서도 경계하였다. 화란 안에서는 후자의 영향을 받은 ‘윤리신학’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이를 아주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다.

둘째로, 그들은 기독교가 사회와 문화에 영향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였다. 이런 외식적인 교회를 만족하지 못하면서 화란 안에는 경건주의적인 내면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던 소수의 ‘칼빈주의자들’이 있었다. 카이퍼와 바빙크는 이 소수의 신앙적 민초들(de kleine luyden)을 활성화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이들을 세상 속으로 불러내기 위하여 특히 카이퍼는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는 수많은 강연을 하였고 이를 소책자로 출판하였다. 즉 경건주의에 빠져서 세상을 도피하는 성도들을 설득하려고 신앙의 사회성을 부각시키려고 힘을 썼다. 이를 위하여 그들은 비외국적이요 비경건주의적인 화란 고유의 신학을 부흥시키는 방식으로 외적,내적 위기를 극복하려고 시도하였다. 그것은 바로 개혁신학의 전성기였던 17세기 화란 신학의 재발견이었다. 특히 17세기 화란개혁신학자들의 예정론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신학작업을 하였다. 고마루스(A. Gomarus, 1563-1641), 마코비우스(J. Maccovius, 1588-1644), 부티우스(G. Voetius, 1589-1676), 뷔치우스(H. Witsius, 1636-1708) 등이 자주 언급되는 이름들이다. 카이퍼와 바빙크는 이들이 활동했던 그 시대를 개혁파의 번성시대(bloeitijd)라 불렀다. 그들은 개혁파 전통이 루터파뿐 아니라 칼빈보다 더 발전하였음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런데 이것은 묘하게도 당대의 신학을 잘 반영한다. 이런 입장은 카이퍼와 바빙크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였던 스홀튼(1811-1885)을 통하여 보급되었다. 그는 역사적 기독교 곧 16세기와 17세기의 개혁파 신앙고백과 교의학을 그 당대의 사변적 관념론 및 자연과학과 연결시키려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절대 예정론은 하나님의 확고한 주권을 보장하는 원(原)개신교 원리이다. 그는 예정론을 당대의 관념론과 결합시켜서 하나님을 절대적 원인자로 보았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절대 지배를 인정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예정론이 가장 특징적인 교리라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물론 스홀톤은 이미 역사적 칼빈주의를 알고 있었으나, 슈바이쩌(1808-1888)의 저서를 통하여 학문적으로 개혁파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슈바이쩌는 역사적인 사실을 기초로 하여 기독교 내의 다양한 흐름들의 원리를 찾는 19세기 독일어권신학의 경향을 따라서 ‘개혁파의 원리’를 가장 뚜렷하게 주장하였다. 그는 예정론을 개혁파의 가장 독특한 내용적 원리요 따라서 개혁파는 가장 진보된 기독교라고 주장하였다. 즉 개신교와 로마교를 비교하는 가운데서, 개신교는 형식적 원리는 성경의 권위요, 내용적 원리는 이신칭의라는 식의 원리론이 등장한다. 이런 시도는 다시 루터파와 개혁파의 원리를 찾는 운동으로 진전되었다. 슐라이에르마허의 영향을 받은 슈바이쩌는 “루터파 개혁은 내용원리와 더불어 인간론에 머물렀다. 인간 안의 어떤 소여가 구원을 얻게 하는가의 질문에 부정하면서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라고 대답한다. 개혁파에게도 이것이 중요하지만, 궁극적이지는 않다. 그들의 질문은 인간과 구원의 관계가 아니라 누가 구원을 주며 형벌을 주는가의 문제이다. 즉 피조물이냐 하나님이냐의 문제이다”라는 말로 개혁파의 독특성이 인간론적 차원이 아니라 신학적인 차원임을 말한다. 이 발언의 저변에 깔려있는 의도는 개신교는 로마교의 극복이요, 개혁신학은 다시 루터신학보다 높은 발전이라는 것이다.

이런 개혁파 우월사상이 카이퍼와 바빙크에게도 나타나며, 이 관점에서 이들은 신학작업을 하였다. 그런데 카이퍼는 개혁파라는 용어와 동시에 칼빈주의라는 용어도 사용하였다. 그에 의하면 개혁파라는 이름은 교파적이고 신학적인 반면에 후자는 전반적인 사회 영역에 사용될 수 있는 강점을 가졌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신칼빈주의를 사용하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실상은 그의 반대파들이 붙여준 이름을 그가 자신의 노년기에 비로소 긍정적으로 사용한 셈이다. 카이퍼는 자신의 사상이 칼빈이나 칼빈주의자들의 사상과 너무 동일시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물론 그는 칼빈의 사상을 그 당대의 문제들과 연관시켜 발전시키려 했다. 바로 이런 식의 현대화를 그는 신칼빈주의라 부르기를 제안하였다. 바빙크 카이퍼와 비슷하게 신칼빈주의를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교회와 신학 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 예술과 학문에도 등장하며, 그 칼빈주의의 뿌리와 원리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대한 고백이다”고 했다.

이처럼 신칼빈주의라는 이름은 신학적인 차원을 벗어나서 흔히들 말하는 세계관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본고에서 이런 언급을 하면서 신학적인 측면에 관심을 집중하려고 한다. 카이퍼와 바빙크는 화란의 고유성을 강조하면서 독특한 개혁파신학을 로마교나 루터파와 비교하면서, 개혁파의 탁월성과 동시에 이들에 대한 우월성을 부각시켰다. 이것은 당대의 신학 연구 조류와 맞물려 있으면서 또한 화란의 개혁파 민초들을 활성화시키는 기폭제를 하였다는 것이 본고의 명제이다.

II. 카이퍼

카이퍼는 당대의 신학적 유행을 따라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말하는 예정론을 개혁신학의 특징이라고 믿었다. 그의 반대파들이 그가 모든 문제들을 작정과 예정의 관점에서 본다고 불평할 정도로 그의 신학의 출발점은 예정론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그에 의하면 설교는 본질상 중생자 또는 택자만을 대상으로 삼는다. 중생은 말씀 없이 성령이 직접 행하는 일로서, 택자들에게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는 은혜언약은 오직 택자들과 체결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말씀(설교)은 이미 성령으로 일어난 중생을 택자들에게 의식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예정론의 관점에서 전택설, 영원 칭의, 즉각적 중생, 세례의 근거로서의 중생전제설 등을 주장하였고, 이 때문에 화란교회 안에서는 오랜 세월동안 이런 주제들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었다.

그가 예정론을 말할 때는 항상 개혁파를 로마교나 루터파와 비교하는 문맥에서 취급된다. 그에 의하면 개혁자들은 성경관에서 중세신학 특히 토마스와 구별된다고 본다. 카이퍼는 당대의 신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언급하면서 개혁파의 탁월성에 대한 자신의 확신을 피력한다. “루터파신학은 보다 인간론적-구원론적 성격을 지니는 반면에, 개혁파고백은 엄격한 의미에서 신학적이다. 이 차이를 슈바이쩌처럼 교의학적으로 보든, 슈네켄부그거처럼 윤리적으로 보든 간에 주안점은 같다. 루터파신학자는 죄인의 구원에 주력한다면, 개혁파는 하나님의 영광을 주목한다. 바로 이 때문에 루터파신학보다는 개혁파신학을 여러면에서 선호하게 된다.” 개혁파는 하나님을 출발점과 목표로 삼으면서 신학작업을 하니까, 보다 고양된 입장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카이퍼는 이런 입장에서 개혁파의 독특성을 파악했으며, 이 독특성을 시위하는데 그의 일생은 헌신했다고 하여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카이퍼는 구원론적이고 인간론적이기에 기독론적인 차원에 머무는 신학을 비판하면서, 신학은 신학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대로 계시를 주신다. 물론 특별계시가 구원론적 성격을 지니지만, 영혼의 구원을 계시의 규칙으로 부과하는 것은 계시의 잣대가 신학적임을 망각한 처사이다. 인간을 중심으로 삼는 계시 이해는 계시를 훼손하며, 계시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목적을 달성한다. 창조도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사역(theologice)을 지시하고, 이차적으로 비로소 만물의 근원(anthropologice)에 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창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한다. 그러므로 섭리도 구원론적으로 접근하여서 죄에 대한 대책이요 은혜를 비상대책으로 보는 것은 위험하다. 섭리는 하나님의 작접의 집행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출발점이요 중간이요 목표점이 된다. 그리스도의 등장은 죄인을 구하려는 비상대책이 아니라 죄로 인하여 손상된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권리를 사수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성육신은 최고조의 하나님의 자기계시이다. 그러므로 신학은 기독론적으로 파악되어서는 안 되며, 기독론이 다른 각론과 마찬가지로 신학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구원론도 역시 신학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여 모든 것이 정향되어 있다. 창조는 종말적 완성에서 그 목적을 달성하는데, 이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다. 바로 이 영광을 추구하는 신학이 개혁신학으로서 모든 것을 신학적으로 보며 인간론적이고 구원론적인 접근을 극복한 고상한 신학이라는 입장이다.

카이퍼의 이런 입장은 일반은혜론에서 잘 나타난다. 이를 위하여 먼저 그의 작정론을 살펴야 한다. 카이퍼는 작정이 만유의 뿌리요 근원이기 때문에 창조 이전에 다루어야 한다고 본다. 우주와 창조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의 작정에 확정되어 있고, 이 작정은 하나님의 본질 속에 있다. 작정의 출발점과 목표점은 하나님 안에 있으며 작정과 작정하는 하나님에게로 소급하여야 한다.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주권과 권세이며, 인간의 구원이 아니다. 창조나 인간은 모두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있으며, 만유는 다만 이를 향한 하나님의 작정의 실현이다.

그의 유명한 일반은혜론도 예정의 관점에서 파악하여야 바로 살피게 된다. 일반은혜론은 그의 생애에서 비교적 후기에 발전되었다. 이것은 그의 일생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삼부작의 마지막 부분이다. 즉 그는 먼저 자신이 당시에 위협받고 있던 바 선택에서 유래하는 특별은혜라는 개혁파 고백과 진리를 1878년부터 사수하였음을 말한다. 이 선택론은 개혁교회가 재림까지 사수할 교회의 심장이다. 그는 일반은혜론을 이처럼 특별은혜와 선택에 기초하여 전개한다. 택자는 결코 개별자가 아니라, 언약공동체의 일원일 수밖에 없으며, 유기체인 교회의 일원이다. 즉 이 특별은혜는 언약 안에서 유기적으로 역사한다. 그러므로 언약론이 없는 선택론은 결함을 가지게 된다. 나아가 이 언약의 배경은 태초의 창조인데, 하나님의 자녀들인 개인이 포함되어 있는 공동체는 인류에 다시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만 은혜의 면에서 특별은혜와 언약은혜는 훼손되고 파괴된 창조를 보살피는 은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 은혜를 카이퍼는 일반은혜라 부른다. 그는 역사에서 유기적 통일체를 파악하려고 한다. 그것은 일방적으로 기독론적이거나 구원론적인 신학을 거부함에서도 나타난다. 이 모든 은혜의 주목적은 죄로 손상된 하나님의 영광의 회복이다. 물론 창조도 하나님의 영광을 겨냥한다. 그러나 완성에서 예정에 의한 창조의 원래 목적이 달성될 것이다. 창조의 계획이 연속되게 하는 은혜가 바로 일반은혜이다. 이와 같이 일반은혜는 개혁신학의 독특성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카이퍼의 주장이다. 그러므로 카이퍼의 일반은혜는 개혁신학의 독특성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개혁신학의 역사를 교정하려는 시도라고도 볼 수 있다.

이 교정은 예정론의 확장의 시도라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카이퍼는 택자들의 구원에만 급급하는 예정론은 일반은혜의 포괄적인 사역을 도외시하게 된다고 단언한다. 그는 예정론이 오직 특별은혜 및 택자들의 구원과 직결되어 취급되어 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특별은혜가 작용하는 터전인 언약을 고려하지 않고 예정론이 취급되어져 왔다는 것이다. 카이퍼는 이러한 ‘原子論的’인 예정론을 거부한다. 그는 언약의 관점에서 유기체로서의 교회를 선택론에서 다루려고 한다. 하나님은 스스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개별자들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한 백성을 선택하셨고, 한 족속이요, 한 머리의 한 몸이며, 영적 유기체를 택하셨다. 유기체만이 창조의 상태를 보존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은혜란 오직 택자들의 구원이라는 유일한 목표를 향하여 하나님이 사용하는 방편일 뿐이요, 이 유일한 목표를 위하여 성자가 중보자로서 한 방편이 되셨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성적 피조물인 인간과 전체로서의 창조와의 유기적 관계는 아예 무시되고 말것이다. 그러나 카이퍼는 택자만이 주인공이요, 불택자들의 운명은 무시하거나 이차적인 관심사로 전락시키는 개별주의적인 예정론을 거부한다. 그러므로 카이퍼는 특별은혜 뿐만 아니라, 일반은혜도 예정에 포섭시키려는 시도를 한다. 택자들의 구원과 회복 가능성은 바로 인간 창조 자체에 기초하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혁파는 이 입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예정론 안에 일반은혜를 포함시키지는 못했다. 즉 일반은혜는 창조에 근거하여 가능하며, 궁극적으로는 창조 작정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므로 카이퍼는 선택과 예정이라는 성경적인 용어를 통상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작정’이라는 용어를 보다 더 선호한다. 작정이라는 말은 위와 같은 통념적인 이해를 해소하면서도, 동시에 전통적인 개혁신학의 예정론을 능가하는 뛰어난 포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카이퍼에게 있어서 예정론의 관심은 예정의 대상인 인간이 아니라, 한 작정 안에서 선택과 창조가 지닌 관계이다. 즉 인간은 타락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타락으로부터 회복될 가능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타락 이후 계속될 파괴를 제어하는 장치로서 일반은혜도 그 한 작정 속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죄를 제어하는 장치인 일반은혜는 타락 뒤에 비로소 등장한 것이 아니라, 창조가 지닌 가능성에 접목되어 있다. 그의 이 말은 역사적 맥락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 안에 있는 논리적 순서이다. 특별은혜만이 작정의 내용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일반은혜도 하나님이 취하신 하나의 작정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작정은 전체 역사를 포섭하며, 하나님은 작정에서 개인과 교회를 포함하는 창조를 겨냥하신다. 하나님은 전체 역사와 창조로부터 당신의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이와 같이 카이퍼는 일반은혜론을 개혁파의 특징인 예정론에다 포섭하는 천재적 탁월성을 보였다. 그는 이렇게 정초된 “일반은혜론이 개혁신학과 칼빈주의를 다시 흥왕시킬 것이다”라고까지 말한다. 과연 그의 말대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평가할 수 있는 시점에 서있다. 이와는 별도로 우리는 그의 신학이 이처럼 예정론에 철저하게 기초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것도 그가 개혁파를 로마교와 구분하고 나아가 다시 루터파와도 구별하는 기초가 바로 이 예정론이었음을 보았다. 이점에서 그는 당대에 유행하던 독일의 신학조류를 따라서 개혁파의 특징을 따라서 개혁파의 회복을 시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는 일반은혜론에서는 신칼빈주의라는 말을 선호하지만.

III. 바빙크

카이퍼와는 달리 바빙크는 4권의 교의학을 저작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모든 면에서 균형이 잡혀있고 편파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입장을 알기 위해서는 때로는 긴장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다루려 하는 주제에 있어서 바빙크는 아주 분명한 필치로 자기 입장을 말한다. 교의학이나 다른 작품들에서 바빙크는 개혁파의 탁월성에 대한 확신을 아주 분명하고 명백하게 표현하고 있다.

바빙크는 루터파와 개혁파의 구별에 관하여 당대에 유행하던 입장을 소개한다. 개혁파는 신학적으로 사고하고, 루터파는 인간론적으로 사고한다고 첫 마디를 시작한다. “개혁파는 역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념 곧 하나님의 작정에까지 추적한다. 루터파는 구원역사에 만족하고서 하나님의 작정에 침투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개혁파에게는 선택론이 교회의 심장이지만, 루터파에게는 이신칭의가 교회의 생사가 달려있는 조항이다. 전자는 하나님의 영광이 처음과 마지막 관심사이지만, 후자에게는 인간의 구원이다. 전자는 이교사상과 우상 숭배를 대항한 투쟁이지만, 후자는 유대교나 행위에 의한 거룩을 투쟁한다.”고 강변한다. 개혁파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작정에까지 소급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반면에, 루터파는 신앙으로 참여하는 구원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원리의 차이는 하나님의 형상론, 원죄론, 그리스도의 인격, 구원의 서정, 성례론, 교회정치, 윤리 등에서 연계적으로 나타난다고 부연한다. 이런 차이를 가져오는 기본적인 차이로서 개혁파는 하나님의 작정과 선택이요 루터파는 칭의론임을 바빙크는 분명하게 밝힌다.

그의 이런 입장은 예정론의 취급방식에서 아주 뚜렷하게 나타난다. 관심의 초점은 예정론의 위치가 어디냐는 문제이다. 그에 의하면 개혁파 안에도 두려움 때문에 예정론을 “후천적으로 아래에서” 다루는 자들이 있어왔다. 즉 신앙과 회개에서 출발하면서 선택에로 소급하고 이로써 위로와 확신을 구하는 방법이었다. 이들은 선택을 구원론에서 다루는 셈이었다. 이런 분석적인 방법은 점차 선택으로부터 모든 구원의 은덕들을 다루는 종합적 방법으로 대치되었다. 그러면 예정은 하나님의 속성론이나 삼위일체론 직후에 취급된다. 바빙크는 이런 개혁파의 방식과는 달리 후천적인 분석적 방법이 루터파, 항변파, 로마교 및 19세기의 교의학자들 사이에서 정착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예정을 하나님의 이념에서 연역하지 않고 인간의 상황에서 이끌어 내었다.” 개혁파에게는 예정이 인간적이 아니라 신학적이기 때문에, 스스로는 종합적이고 선험적인 방법을 택한다. 종합적 방법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종교적 관심을 충분하게 고수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선호하면서 바빙크는 예정론을 신론에서 다룬다.

그리고 이것은 개혁파신학의 우월성과 연관되어 있다. 이런 점은 여러 곳에서 계속 볼 수 있다. 형상론에 있어서 루터파는 주관적이고 구원론적인 성격 때문에 형상을 오직 도덕적인 자질로 파악한다. 첫 인간이 이 자질들을 받았으나, 상실함으로 말미암아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측면에서 인간은 비인간화되었다는 것이다. 즉 형상을 원의와 동일시함으로 타락과 함께 형상은 완전 상실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에 비하여 개혁파는 애초부터 형상을 본질로 파악하였기에 타락으로 협의의 형상 곧 원의는 상실되었지만, 광의의 형상인 인간의 본질은 비록 부패되고 파괴되었으나 그 자체대로 남아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점에서 바빙크는 개혁파의 고백을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거나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런 식으로 타락한 인간이 인간이 아니라는 주장을 막아보려고 하였다. 인간의 본질과 이와 연관된 도덕적 자질들을 구별하여 타락으로 상실된 것과 손상된 것을 개혁파 신학은 루터파보다 더 잘 구별하는 멋진 관점을 가졌다는 것이다.

원죄론에서도 개혁파는 루터파와는 다른다. 루터는 원죄를 본질적 죄니 인간의 본질이라 하였고, Flacius는 인간의 본체라 하였다. 루터파는 죄를 본체로는 결코 보지 않는다. 죄의 유전을 언약의 머리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머리인 아담에게서 유래한다고 본다. 이에 대하여 개혁파는 루터파의 용어들을 견제하면서 원죄를 의의 결핍이요 본성의 부패로 보면서 아담의 유전된 범과를 그 근원으로 보았다. 물리적으로 본다. 개혁파는 그렇게 보지 않고 윤리적으로 본다. 어거스틴을 따라서 불신자들의 덕성들을 존중하였다. 그리스도의 신인성의 문제에 있어서도 개혁파는 동방교회, 로마교를 따라서 신성의 성육신을 말하는 루터파와는 달리 성자의 인격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했다. “삼위일체론, 하나님의 형상론, 언약론과 마찬가지로 기독론에서도 인격적 삶에 관한 개혁파의 사상은 전면에 크게 부각된다.”

우리는 구원의 서정을 예로 들어서 바빙크가 개혁파와 루터파의 차이를 제시하는 것이 예정론과 어떤 관계를 지니고 있는지를 살펴보겠다. 루터는 초기부터 마지막까지 구원서정에서 절대적인 예정에서 출발하였다. 그런데 멜랑톤은 초기부터 이 절대 예정 고백을 포기하기 신인협동설을 취하였고, 자유의지를 점점 더 강조하였다. 이리하여 구원서정에서 인간, 특히 신앙과 칭의에 강조점을 두게 되었다. 루터파 신자는 은혜의 역사가 영원 선택과 언약에서 나오지 않으며, 이 은혜를 자연, 세계 및 인류와 연관지우지도 못한다. 그는 신앙으로 그리스도와 사귀기를 원하지만, 왕이신 그리스도 통치 아래서 투쟁하려는 의욕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루터파의 입장을 개혁파의 입장과 대비시킨다. 칼빈은 비록 신앙, 중생, 회개 및 기독교인의 삶 뒤에 칭의와 선택을 다루지만, 그의 기조사상은 이 모든 은덕들은 그리스도의 인격과의 연합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다. 이미 영원에서의 선택과 평화언약에서 이미 그리스도와 택자들의 신비적 연합은 이루어졌다. 이 연합으로 인하여 화해, 사죄, 칭의, 성화 및 영화 등은 신앙을 통하여 비로소 형성되지 않고 객관적으로 이미 그리스도 안에 현존한다. 이런 식으로 바빙크는 구원의 서정에 언급되는 은덕들이 이미 객관적으로 먼저 선택작정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마지막으로 복음을 통한 소명에서 교중에게 수여된다고 한다. 바로 이 선택작정에서 이런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개혁파의 관점으로서 그에 의하면 루터파와 구별되는 독특성이다. 여기서 그는 다시 언약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즉 택자들은 개별자들이 아니라 유기체적인 교중으로서 이 은덕들에 참여한다. 택자들은 영원 전에 언약에 포섭되어 그리스도께 주어졌다. 이런 식으로 바빙크는 구원의 서정에서 나타난 개혁파와 루터파의 차이를 예정론과 연관시켜서 설명한다. 이 관점에서 “구원론도 신학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발언은 아주 시사적이다.

교회정치에서도 개혁파는 루터파보다 앞선다. 루터는 비록 로마를 대항하여 만인사제직과 더불어 성도의 교제로서의 교회를 부각시켰지만, 그의 출발점은 이 점에서도 인간론적이어서 그리스도의 왕직에 대한 고백으로부터 교회정치를 이끌어내지 못하였다. 그는 말씀과 성례를 강조하여 목사직은 회복시켰으나, 그리스도의 통치를 교회정치에서는 확립하지 못하고 이를 시민정부에 위임하였다. 그러나 개혁파는 교회 위에 있는 그리스도의 왕권에서 출발하면서 그리스도가 말씀으로 당신의 백성을 모으고 통치하시며 스스로 획득하신 구원으로 보호하신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개혁파는 만인제사장직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가 설교자직, 감독직 및 집사직을 세워서 교회를 직접 다스림을 보이는 교회정치를 확립하였다.

성례론에서도 그는 로마교와 루터파에 대항하여 개혁파의 우월성을 가르친다. 문제의 핵심은 표와 표가 지향하는 대상의 성례전적인 합치(unio sacramentalis)이다. 로마교와 루터파는 표는 물리적으로 그것이 지향하는 대상으로 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로마교는 화체설을 주장하였다. 성례 제정의 말씀은 제사를 드리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제가 라틴어로 밀교식으로 발설되어야 한다. 또 루터파는 공재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은덕들이 물리적으로 성례에서 주어진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하여 개혁파는 영적인 전달을 말한다. 말씀 선포와 마찬가지로 성례도 그리스도를 제시한다. 이런 식으로 개혁파는 은혜의 영적 성질을 로마교나 루터파보다 더 잘 파악하고 고수하였다.

윤리에서도 개혁파는 루터파보다 우월하다. 루터파는 회개는 새 생명의 시초를 이루어서 인간의 무능력 고백에서 완전히 피동적으로 파악되거나 아니면 이것을 약화시켜서 신인협동설로 전락되기도 한다. 그러나 칼빈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출발함으로 회개와 중생자를 연관시킨다. 즉 중생자가 하나님의 힘으로 회개하고 죄와 싸우며 율범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완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터파는 율법의 정죄적 기능만을 말함으로 율법의 제삼의 용법을 무시한다. 그러나 칼빈은 윤리적 삶에 대해 율법이 지닌 규범적인 의미를 강조함으로 선행을 권하는 하나님의 뜻을 부각시켰다. 신자의 윤리적 삶의 근원은 신앙이요, 규칙은 율법이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루터파에게서 나타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순종함이란 개혁파에게는 신자의 삶의 의무가 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모든 사역의 마지막 목적이다. 한편으로는 로마교와 루터파 다른 편으로는 개혁파는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지만, 개혁파는 그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영광을 교리와 삶, 교의학과 윤리, 가정, 사회와 국가, 학문과 예술의 원리로 삼았다는 데에 차이가 있다.

IV. 베르카워의 평가

카이퍼와 바빙크 그리고 헤프(V. Hepp, 1879-1950)를 이어서 자유대학교 제 4대 교의학 교수로 오랫동안 가르쳤던 베르카워(G.C. Berkouwer, 1903-1995)는 그의 초기부터 신학적-인간론적/개혁파-루터파/선험적-후천적이라는 대치를 거부한다.

루터파의 ‘오직 은혜’는 하나님의 자비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하며, 개혁파의 ‘Soli Deo gloria’도 하나님의 자비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신학적-구원론적이라는 대치가 많은 요소들의 영향 하에서 오랜 세월동안 너무도 어이 없게 딜레마를 이루었다고 안타까움을 표한다. 그는 슈바이쩌를 인용하면서, 개혁파와 루터파가 성도의 견인과 선택의 문제로 서로 논쟁한 것을 소개한다. 루터파는 개혁파가 성도의 견인과 구원의 확실성을 선택에서 논리적으로 도출하는 선험적인 방법을 쓴다고 비난하였다. 이에 대하여 베르카워는 칼빈과 개혁신학 및 고백들은 구원의 확실성을 은폐된 선택의 지식에 정초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에서 찾으려 했다고 변호한다. 그러면서 그는 ‘선험적-후천적’ 또는 ‘종합적-분석적’이라는 대치로 개혁파와 루터파의 차이를 결코 표현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또 구원론적이라는 말은 단지 인간론적이라거나, 하나님의 영광은 단지 인간의 구원으로 인하여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또 인간중심적이니 하나님중심적이니 하는 대비는 종말의 관점에서 더 이상 고수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즉 하나님 중심은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 베르카워의 입장이다.

이렇게 그는 카이퍼와 바빙크가 개혁신학의 우월성을 논증하기 위하여 즐겨 썼던 용어들을 거부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는 누가 이런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본문이나 각주에서 전혀 언급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전 정보가 없는 독자들은 베르카워가 카이퍼와 바빙크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없다. 특히 예정론을 개혁신학의 주요한 원리로 보는 입장은 그에 의하여 주장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예정이나 선택에서 논리적으로 창조와 구원을 연역하는 신학을 그는 크게 비판하였다. 그의 이런 태도는 카이퍼와 바빙크로 대변되는 舊자유대학교의 전통의 단절로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의 한 제자는 루터신학을 주제로 삼은 박사학위 논문에서 ‘내가 어찌 은혜의 하나님을 대할까’라는 루터의 질문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루터에게는 인간이 중심에 서 있다는 식으로 그의 신학을 인간론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즉 “루터가 이 씨름에서 간 길은 사실상 인간이 하나님에게로 향함이요, 인간론적 관심에서 신학적 관심에로의 전향이다.” 그러면서 그는 ‘신학적-인간론적’ 딜레마는 주장될 수 없다고 강변한다. 이들은 루터를 루터파의 눈으로 읽은 것이 아니라 직접 루터를 읽었다. 카이퍼가 개혁파 번성시대라 불렀던 개혁파 정통주의 시대가 이들에게는 빠져있다.

V. 맺는말

이처럼 개혁신학의 특징을 예정론,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영광으로 꼽는 일반적인 경향의 배경에는 19세기 독일과 화란 신학이 있다. 그러므로 칼빈과 카이퍼 사이에 신학적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트뢸취는 카이퍼가 칼빈에게서 떠났다고 말했다. 물론 이것은 악의적인 비평이지만, 일리있는 지적이라 하겠다. 바빙크는 칼빈을 보다 직접적으로 많이 인용한다. 그러나 그 역시 카이퍼와 마찬가지로 루터파와 개혁파를 대비시켰다. 영원칭의 등과 같은 몇가지 주제에 있어서는 확연하게 다른 입장을 취하지만, 바빙크는 대체로 카이퍼와 같은 입장을 취하였다.

그리고 이런 식의 개혁파 원리 고수는 벌코프(L. Berkhof; 1873-1957)를 통하여 우리 한국에 전달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개혁신학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면서 하나님의 작정을 강조하는 개혁신학만이 신학적이라고 부각시킨다. “루터신학은 덜 신학적이며 보다 더 인간론적이다. 루터신학은 일관성 있게 하나님을 출발점으로 삼지는 않으며, 비록 만물이 신적으로 예정되었다고는 하지만 만물을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본다.” 또 루터파는 개혁파와는 달리 구원의 서정에 있어서 하나님 편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 편에서 이루어진 것을 주목한다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신비적 연합에 있어서 루터파는 신앙으로 파악되는 대로 인간론적으로 보지만, 개혁파는 구원언약에서 성도와 그리스도의 연합을 신학적으로 파악한다.

이처럼 우리는 개혁파의 원리를 추구하는 신학 전통을 알게 모르게 전수받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루터나 칼빈 그리고 루터파와 개혁파의 내용적 원리를 추적하려는 19세기식 신학방법은 이미 지나간 유물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이런 신학적 전제 위에서 우리가 친근하게 알고 있는 신칼빈주의로 알려진 화란신학이 형성, 발전되었고 한 시대동안 화란과 화란교회 주도하였다. 그들은 숫적으로 소수였던 칼빈주의자들을 활성화시켰다. 잘못된 예정론 신앙으로 세상도피적이었던 그들을 세상으로 불러내었다. 이를 위하여 그들은 세상성을 인정해야만 하였다. 또 선동을 위하여 어떤 계기가 필요하였다면 너무 노골적이고 지나친 표현일까. 개혁파는 다른 종파들보다 우월하다는 말이 주효하였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그들은 이 관점에서 16세기의 제네바의 칼빈의 사역에 비견될 만큼, 한 세대를 풍미하고 한국교회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신학적 작업을 하였다. 그들이 개혁 신학은 항상 무궁무진한 일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고, 동시에 신학하는 진지한 모습을 우리에게 남겼다. 베르카워의 신학이 비록 루터-칼빈의 관계와 루터파-개혁파의 관계에 대하여 그의 선임자들보다는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서술하였지만, 그의 신학이 우리에게 주는 느낌은 그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의 신학은 개혁파 성도들을 활성화시키지는 못하였다. 우리는 어쩌다 이런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개혁파라는 이름 하에서 교인들을 활성화시키면서도 신학적 독특성을 지닌 신학 작업은 이루어질 수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