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목사 구원(107) / 정용섭 목사

새벽지기1 2026. 5. 19. 06:45

다른 한 가지는 예배. 전업 목사는 눈만 떴다 하면, 그리고 평생에 걸쳐서 밥 먹듯이 예배를 인도하기에 자칫 예배의 매너리즘에 떨어질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예배를 이벤트처럼 진행하는 경우도 제법 된다. 곁길로 빠져드는 것이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 젊은이들이 나와서 율동을 곁들인 찬양을 부르게 하거나 관현악단이 포함된 성가대 역할을 확대하기도 한다. 한국교회에서 대형 빔 프로젝터 사용은 일반화된 것 같다. 예배를 쇼나 대중가요 콘서트처럼 진행하는 교회도 제법 된다. 교회 형편에 따라서 이색적인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을 무조건 배척할 필요는 없다, 다만 문제는 그런 것만으로 예배를 예배답게 드릴 준비가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는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는 게 우선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이런 예배의 본질을 회복할 때만 진정한 의미에서 예배의 기쁨까지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는 데에는 전통적인 예전예배가 현대의 열린예배보다 훨씬 낫다. 문제는 예전예배의 영적인 의미를 실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실감은 예배드리는 순간을 거룩하고 낯설게 경험하는 데서 시작된다.

 

회중 찬송만 해도 그렇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일단 찬송가 가사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는 여기서는 접어두자. 여러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소리를 내어 찬송가를 부른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영혼으로 느끼는 게 중요하다. 소리를 내고 소리를 듣는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다. 사람이 호흡을 하고 성대의 떨림이 일어나고, 거기서 나온 소리가 공기를 타고 예배드리는 공간을 가득 채운다. 혼자 부르는 게 아니라 옆 사람과 함께 부른다. 그 사람이 그 순간에 그 자리에 왔다는 사실도 아주 특별한 일이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면 예배의 영성에 들어갈 수 없다. 우리가 로마에 여행 갔다가 우연히 바티칸 성당의 미사에 참석했거나, 전라도 순천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송광사에서 열리는 정식 예불에 참석한 것과 같은 낯섦이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서도 경험될 수 있어야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