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목사 구원(106) / 정용섭 목사

새벽지기1 2026. 5. 18. 06:22

이사야는 성전에서 가장 낯선 것을 경험했다. 그가 한 밤중에 성전 출입한 건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성전에 들어갈 때마다 그가 똑같은 경험을 한 것은 아니다. 이번 경우만 특별했다. 평소에 익숙했던 것이 유독 낯설게 경험되는 순간이 있다. 영성이 깊으면 그런 경험의 순간이 더 많아질 것이며, 영성의 절정에 이르면 삶 전체가 그런 순간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것이 곧 구원의 완성이 아니겠는가. 목사의 업무 특성 상 목사는 예배와 설교를 비롯한 목회 행위 전반에서 이런 순간들을 경험해야 한다. 이것이 실제로 어떻게 경험되는지를 나의 작은 경험에 비추어 두 가지만 예로 들겠다.

 

한 가지는 설교 행위와 관련된 것인데, 성경텍스트에 대한 낯선 경험이다. 다른 목사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평생 성경을 붙들고 살았다. 어떤 성경구절을 택하더라도 즉흥적으로 그 본문을 중심으로 한 시간 이상을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다. 목회 이력이 어느 정도 붙은 목사들은 비슷하다. 목회의 내공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게 오히려 목사들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성경 이야기에 길들여지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가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반복 연습해서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연주한다고 해서 살아있는 연주가 아닌 거와 같다. 성경 이야기에 길들여지면 전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성경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게 되고 결국 전달하는 기술에 치우치게 된다. 한국교회 설교에 유난히 예화가 많고 도덕적인 교훈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경을 새롭게, 낯설게 경험하는 순간들이 많아야만 목사의 영혼은 살아날 것이다.

 

지난 주일의 설교 본문은 요 3:1-13이다. 거듭남을 주제로 하는 니고데모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서 핵심 주제는 거듭남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거듭남에 대한 이야기도 궁핍해진다. 유대교는 표적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여기서 표적 신앙과 예수 신앙이 대립한다. 이런 대립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잘 살펴야만 본문이 새롭게 읽힐 것이다.  3:13절은 이렇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예수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하늘로 올라간 자라는 말은 예수가 생명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이 생명의 근원이 곧 하나님 나라이다. 사람이 생산해낼 수 없고 하나님에 의해서만 가능한 열린 미래의 생명이다. 설교자가 이해하는 생명의 깊이에 따라서 예수가 하나님 나라라는 말의 의미가 달라질 것이다. 성경텍스트에 대한 이런 경험이 나를 설교의 영성에 몰입하게 하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