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목사 구원(103) / 정용섭 목사

새벽지기1 2026. 5. 17. 06:32

이사야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는 스랍들의 찬송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반복되는 설명이지만, 이런 구절을 교회당에서 성가대가 부르는 합창을 직접 듣는 거와 같은 것으로 보면 곤란하다. 다른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고 이사야의 귀에만 들린 합창 소리다. 객관적인 실체로서의 합창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에게만 들리는 영혼의 합창 소리다. 오늘 우리도 이사야의 영적인 경험을 이해한다면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거룩하다.’이고, 다른 하나는 영광이다.

 

앞에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경험을 설명할 때 누미노제, 즉 거룩한 두려움을 짚었다. 거기서는 주로 두려움을 중심으로 설명했다. 여기서는 거룩하다는 말을 중심으로 설명하겠다.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거룩한 존재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우리의 존재 방식과 전혀 다르다는 데에 있다. 바르트 식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은 절대타자다. 하나님은 우리와 유사한 존재가 아니라 완전히 다르기에 그 어떤 방식으로도 우리가 그를 규정할 수 없고 범주화할 수 없고 존재유비로 다가갈 수 없다는 말이다. 흔히 말하듯이 사람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만 하나님은 초월한다. 제약받는 자와 초월하는 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심연이 놓여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서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는 한 인간은 새처럼 공중을 날지 못한다. 사람과 새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놓인 셈이다.

 

하나님이 사람과 완전히 구별된 존재라고 한다면 결국 사람은 하나님을 인식할 수도 없고, 경험할 수도 없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이런 문제는 서로의 주장이 얽혀서 따라가기 복잡하니까 길게 끌지 말자. 하나님 인식과 경험에서도 하나님이 주도권을 행사한다는 주장이 기독교 정통의 입장이다. 그 주도권을 가리켜서 계시라거나 은총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우리는 우리와 전적으로 다른 존재인 하나님을 인식하고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이건 일종의 시() 사건과 같아서 들리는 사람에게만 들리고 보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세상 이치를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작업은 진리의 관점에서 가장 수준이 낮은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