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에게 임한 두 번째 현상은 두려움이었다(창 15:12). 이 현상은 루돌프 오토 용어로 ‘누미노제’, 즉 거룩한 두려움이다. 두려움은 부정적인 의미이지만 누미노제는 오히려 긍정적인 의미다. 누미노제가 종교의 가장 원초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두려움과 거룩한 두려움이 구분되기는 하지만 그게 늘 선명하게 구분되지는 않는다. 아주 낯선 경험이라서 두려움을 느끼는 건 비슷하다. 밤중에 공동묘지에 가서 느끼는 섬뜩한 공포나 가까운 가족을 잃고 느끼는 충격은 보통 말하는 두려움이지만 절대 타자인 신 앞에서 느끼는 외경은 거룩한 두려움이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오토의 『성스러움의 의미』(분도출판사)를 참조할 것.
우리가 알고 있는 아브라함의 삶은 고향 상실이라는 특징으로 나타난다. 갈대아 우르를 떠났고, 중간 기착지인 하란을 떠났으며, 가나안 땅도 몇 번 떠났다. 생활력은 강해서 지역 맹주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고향을 떠난 사람은 배고픈 사람처럼 존재의 근거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늙어서까지 자식을 낳지 못했다. 자신의 미래를 확신할 수 없었다. 평생 하나님을 의식했지만 존재의 불안은 떨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현실의 불확실성과 하나님 말씀 사이의 간격을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었다. 그것이 그에게 거룩한 두려움으로 다가온 게 아닐까 생각한다. 성경은 이에 관해서 자세하게 말하지 않는다. 성경을 읽는 사람 스스로 추정하고 예감하고, 해석하고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오늘 우리의 삶에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아브라함의 거룩한 두려움은 ‘큰 흑암’과 직결된다. 그는 자신의 인생 경험과 지식으로 다 파악할 수 없는 세계를 대면했다. 그 세계는 인간 인식을 초월하는 것이기에 흑암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런 흑암 앞에서 그는 거룩한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삶과 인간과 세상을 흑암으로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룩한 두려움도 경험하지 못한다. 이런 경험이 하나님 경험의 원초적인 차원이며, 따라서 목사 구원의 실질적인 내용이기도 하다. 이런 경험이 없다면 구원 받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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