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자.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이 구절을 주석해보라는 과제를 목사고시 지문으로 내도 좋을 것이다. 이를 주석하려면 창조의 빛이 무엇인지,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에 대한 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통찰이 필요하다. 오늘 우리는 이 지문을 주석하는 게 아니라 성경 이야기 ‘너머’만 짚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는 말은 겉으로 확인될 수 있는 어떤 현상이 아니다. 예수의 얼굴은 당시 삼십대 유대인 남자의 얼굴일 뿐이다. 정신적인 깊이가 대단한 분이니 남달라 보이긴 하겠지만 하나님의 영광 운운하기는 어렵다. 이 진술을 단순화해서 말하면 예수의 운명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것이 누구의 눈에나 다 들어올 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게 아니었다. 알아볼 수 있었다면 예수는 십자가에 처형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을 사칭하는 자로 취급받았다. 그런 인물은 죽어 마땅한 신성모독자다. 예수의 운명에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사실은 드러난 것이 아니라 숨어 있다는 말이 된다.
숨어 있는 이 사실을 인식하려면 빛이 필요하다. 빛은 흑암을 밝힌다. 성경 언어인 흑암이 메타포인 것처럼 빛도 어떤 궁극적인 사실을 가리키는 메타포다. 그 빛을 본문은 창조의 빛이라고 했다. 창조는 생명 사건이다. 창조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상상력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배타적 사건이다. 창조의 빛을 정통 유대인들도 알고 있었지만 예수 사건에는 이르지 못했다. 예수 제자들과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통해서 생명을 경험했기에 예수의 얼굴에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고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서 이야기가 단순히 겉으로 묘사한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그 이면을 손가락으로 지시한다는 사실이다. 지시하기도 하고, 암시하기도 하며, 배경을 삼기도 한다. 위에서 인용한 구절만이 아니라 모든 성경구절이 근본에서는 동일하다. 그것을 한 순간이라도 느껴본 사람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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