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최고봉
요한복음 3;16절 말씀은 기독교의 모든 교리와 진리를 총괄하고 포함하는 복음의 진수가 집약되어 있고 농축되어 있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기독교의 생명의 젖줄이요, 탯줄이요, 숨 줄이요, 힘줄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예수 믿고 구원 얻는 일, 영생 얻는 길이 여기에 있다. 먹보다도 짙은 피와 살로 기록하여 보낸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요, 계시요, 향기요, 러브스토리이다. 이 사랑은 영원하고 절대적인 불변의 사랑이다. 이 사랑의 수는 영원한 단수(eternal singular love)이다.
이 말씀은 복음의 단순성과 탁월성을 나타내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범위, 구원의 범위, 영생의 부활 생명을 선포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감히 측량할 수 없는 놀라운 복음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흉악한 죄인일지라도 용서되어지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과 생명의 범위를 가늠치 못하는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오직 예수"라는 구호의 전유물을 오해하지 말아야
"오직 예수!" 라는 표현은 예수 이외의 종교들은 모두 배척하라는 뜻은 아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얼마든지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어느 개인이나 단체의 전유물로만 여길 때, 우리는 어느 한 대상을 생각 없이 숭배하는 우상종교화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소중한 신앙유산이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와 공격적 선교로 나타나는 심각한 부작용과 병폐에 대하여 깊은 우려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우상숭배의 본질은 이기주의에 있다. 자기 자신과 자기가 속한 집단을 절대시하는 것, 자기 가정, 자기 교회, 자기 혈통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이기주의가 기독교인들 중에도 너무도 철저하게 팽배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오직 예수'란 표어를 내걸고 정작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가 무엇인가? 인류의 철학과 윤리와 종교의 전량을 한마디 핵처럼 질로 농축된 것이 있다면 예수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란 말씀(요14:6)에 대한 강조점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기독교의 유일성, 탁월성, 독특성, 구원의 확실성과 진리의 유일성을 담보하는 말씀(행4:12)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십자가의 사랑으로 담아내고 녹여낸 다함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사랑과 그 놀라운 복음을 우리는 자주 배타적, 공격적, 폭력적 선교와 전도의 방식으로 무례한 기독교로 인식시키기고 있지는 않은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타 종교와의 대화를 단절하고, 평화를 이루고 하나가 되려는 대화의 노력을 일체 종교다원주의라고 규정하며 모든 대화의 노력을 거부하는 지독한 오만과 독선을 경계해야한다.
교회가 예수를 섬기기 때문에 교회만이 진리라는 논리로 나아가다가 오류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예수가 교회의 전유물은 아니고, 교회는 결코 예수님만큼 완전하지도 않다. 예수님이 교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말에 오해가 없어야 한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느냐(롬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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