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이 지났을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가서 예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그래서 이레의 첫날 새벽, 해가 막 돋은 때에, 무덤으로 갔다. 그들은 "누가 우리를 위하여 그 돌을 무덤 어귀에서 굴려내 주겠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그런데 눈을 들어서 보니, 그 돌덩이는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 돌은 엄청나게 컸다. 그 여자들은 무덤 안으로 들어가서, 웬 젊은 남자가 흰 옷을 입고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몹시 놀랐다. 그가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놀라지 마시오. 그대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사람 예수를 찾고 있지만, 그는 살아나셨소.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소. 보시오, 그를 안장했던 곳이오. 그러니 그대들은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그는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니,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들은 거기에서 그를 볼 것이라고 하시오." 그들은 뛰쳐나와서, 무덤에서 도망하였다. 그들은 벌벌 떨며 넋을 잃었던 것이다. 그들은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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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덤을 찾아간 사람들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새생명의 기쁨이 교우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올해 봄은 유난히 늦게 찾아왔습니다. 교회화단의 매화는 가장 빨리 폈던 2021년에 비하면 약 한 달이나 늦게 폈습니다. 제가 관찰했던 해 중에는 가장 늦게 핀 것입니다. 그만큼 올해는 꽃샘추위가 심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봄은 왔고, 부활절을 맞게 되었습니다. 지난겨울부터 꽃샘추위까지 우리 사회도 이런저런 고난을 겪었는데 이제는 부활의 계절을 맞아 새롭게 꽃처럼 피어날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부활의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람이 누구였는가는 복음서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마가복음에서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와 살로메가, 누가복음에서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와 요안나와 다른 여인들이, 요한복음에서는 막달라 마리아 한 명이 부활의 첫 증인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4복음서가 공히 증언하고 있는 부활의 첫 증인은 모두 여성이었습니다. 이 여성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모두 도망쳤던 남성 제자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진정 용감한 것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인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는 로마 병사들이나 제사장 무리에 대한 두려움보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훨씬 컸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시신에 발라드릴 향유를 가지고 용감하게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 나아가던 여인들에게는 커다란 걱정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덤을 막아놓은 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시신을 동굴 같은 공간에 안장을 했고 그 입구를 커다란 돌로 막았습니다. 그 돌은 여인 두세 명의 힘으로는 결코 굴려낼 수 없는 돌이었습니다. 그들은 걱정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그 돌을 무덤 어귀에서 굴려내 주겠는가?”
2. 돌을 굴려준 이들
그런데 막상 무덤에 도착해서 보니, 그들의 걱정이 무색하게 무덤 입구를 막아놓았던 커다란 돌이 굴려져 있었습니다. 누군가 그들을 위해 돌을 굴려놓은 것입니다. 여성들은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고 웬 흰 옷 입은 젊은 남자가 예수님의 무덤 오른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놀라지 마시오. 예수는 살아나셨소.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소. 보시오, 그를 안장했던 곳이오.”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발라드리기 위해 갔는데, 무덤을 막았던 돌은 굴려져 있었고, 신비한 존재로부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입니다.
복음서마다 부활의 첫 증인이 조금씩 다른 것처럼, 예수님의 무덤 입구를 막고 있던 돌을 옮겨준 존재도 조금씩 다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한 천사가, 마가복음에서는 흰옷 입은 한 남자가, 누가복음에서는 눈부신 옷을 입은 두 남자가, 요한복음에서는 두 천사가 돌을 옮겨주었습니다. 흰옷을 입은 한 남자, 눈부신 옷을 입은 두 남자도 천사와 같은 천상의 존재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도 살다가 가끔 천사의 도움을 받을 때가 있지요. 사고를 당할 수 있던 순간에 천만다행으로 사고를 모면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천사가 도와주었나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천사가 아니라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았을 때도 그 사람을 ‘천사’로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등장하는 사마리아 사람처럼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을 보고 그의 어려움을 자기의 어려움처럼 여겨 지극정성으로 그를 돌본 사람을 ‘천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천사 같은 존재가 굴려준 돌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무덤에서 나오실 수 있도록 굴려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온 여인들을 위해 굴려진 것이었습니다. 분명 이후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복음서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집안에 있을 때에 문이 잠긴 채로 집안에 들어가 제자들을 만나셨습니다. 그렇다면, 부활의 새벽 때도 예수님께서는 무덤 입구를 막았던 돌이 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밖으로 나오실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오늘의 성경 본문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활의 일꾼으로 초대하시는 말씀처럼 느껴졌습니다. 참생명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데 자기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는 돌덩이로 그 길이 막힌 이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누가 그들을 위해 그 돌덩이를 굴려 주겠는가?’ 물으시는 말씀처럼 들렸습니다.
3. 누가 돌을 굴려줄까?
도저히 혼자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짓눌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경상도 산불이나 미얀마 지진 같은 재해로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처럼 전쟁으로 지옥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 제주 4.3처럼 국가에 의해 가족을 잃고도 오랜 세월 슬픔조차 드러낼 수 없었던 사람들, 4.16 세월호 참사처럼 자식을 잃은 참혹한 고통 중에도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직접 거리로 나서야 했던 유족들. 그뿐 아니지요. 자신의 인간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힘겹게 살아가는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 또 우리 주변에서 질병과 깨어진 인간관계와 오래 공들인 일의 실패 등으로 몸과 마음이 무너진 이들 모두가, 커다란 돌에 막혀 참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이 막힌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을 치워주는 자로 사셨습니다. 부활의 첫 증인인 막달라 마리아는 막달라 지방에 살았습니다. 막달라는 염색업과 직물업이 발달해 돈과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며 도덕적으로 타락했던 곳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일곱 귀신이 들어가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그 귀신들을 모두 쫓아주셨습니다. 마리아는 그것이 감사하여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일곱 귀신이 들렸다는 말은 일곱 귀신이 들어가 있었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마리아의 마음과 삶이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때 마리아의 상황은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이 마리아가 가진 힘의 일곱 배의 힘을 써도 밀어낼 수 없는 커다란 돌덩이로 막혀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돌을 치워주셨고 마리아는 생명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그렇게 만나주셨습니다. 그와 생명이신 하나님 사이를 가로 막고 있던 돌덩이, 그 혼자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었던 돌덩이를 옮겨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사람들을 참된 생명의 세계로, 새로운 세계로, 부활의 세계로 나아가게 해주셨습니다.
우리교회에서 후원하는 단체 중에 개척자들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분쟁 및 재해지역에서 평화활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2005년 파키스탄 지진 때부터 인연을 맺었으니 벌써 20년이나 된 친구 같은 단체입니다. 분단의 아픔이 있는 티모르, 쓰나미 피해가 있었던 반다아체, 지진 피해가 있었던 아이티 등 아주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긴급구호 및 평화교육에 힘쓰는 단체입니다. 개척자들이 다른 구호단체들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는데, 다른 구호단체들은 안전이 확보된 곳에만 주로 가지만 개척자들은 다른 구호단체들이 놓친 곳 사각지대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다른 구호단체들은 구호단체들을 위한 별도의 시설에서 머물지만 개척자들은 난민들과 같은 곳에서 자고 같은 음식을 먹습니다. 개척자들의 집은 양평 국수리에 있습니다. 개척자들의 활동가들은 자기들이 직접 나무로 지은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이 지난 2011년 겨울에 화재로 전소했습니다. 다른 이들의 집이 되어 주던 이들의 집이 불타버린 것입니다. 개척자들은 재정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청파교회 청년들과 함께 가서 재를 치우는 일부터 도왔습니다. 그때부터 2017년 건물을 완공하기까지 6년 동안 수련회를 건축봉사로 진행했고,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마다 건축을 도우러 갔습니다. 바닥부터 1층, 2층, 3층, 4층, 지붕까지 모든 공정을 함께 작업했습니다. 목재를 나르고, 톱질을 하고, 못을 박고, 자갈을 나르고, 시멘을 바르고. 어렵고 고된 작업이었지만 많은 청년들이 함께 해 주었습니다. 한 주간 힘겹게 직장생활하고 토요일 이른 아침 작업복을 챙겨 교회로 오던 청년들을 보면서 ‘목사 잘못 만나 고생 많이 한다’라는 생각과 더불어,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첫 부활절 새벽에 “누가 우리를 위해서 돌을 굴려줄까” 걱정하고 염려하던 여인들을 위해 그 커다란 돌을 굴려주었던 이들, 그들은 억지로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그 일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 세계 곳곳과 피조 세계 곳곳에 사람들과 피조물이 참 생명과 부활의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돌덩이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그리고 첫 부활절 새벽의 천사들처럼 돌덩이를 옮겨주는 사람이 되어 살아갑시다. 그리고 그 돌덩이를 옮겨주는 기쁨을 맛보며 살아갑시다. 죽음의 기운 가득한 세상 속에 참 생명과 부활의 세상을 열어가는 청파교회 교우들과 이 시대 믿음의 백성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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